<메종 드 히미코>가 작은 기적을 이뤄냈다. 단관에서 다섯개 사이의 스크린을 오가며 상영된 <메종 드 히미코>는 현재 8만5천명을 동원했다. 스폰지하우스 단관에서 두달 동안 불러들인 관객만 3만4천명.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아직 좌석점유율은 꾸준하다. 현재 추세라면 10만명을 넘길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장담할 수 없지만 앞으로 일본영화는 가급적 대규모로 개봉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은 물 밑에서> <자토이치> <도쿄타워>를 와이드 릴리즈하며 일본영화에 대한 관객의 문화적 이질감을 실감했다. “지금도 문화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일본영화에 대한 선입견은 그대로”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일본영화를 본 관객은 좋은 반응을 보인다. 다만 선입견으로 인해 애초에 보지 않겠다는 풍토가 근본적인 문제”라고 동아수출공사 김용진 실장은 말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배틀로얄>의 수입 업무를 담당했던 김 실장은 마케팅에서도 당혹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배틀로얄>의 TV 스폿광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방송사는 “일본어 대사와 일본어 노래를 삽입할 수 없다”고 제한했다. 광고에 대사가 필요하면 “더빙을 하라는 것”이었다. 법적인 제약은 없었지만 방송사는 시청자들의 심리적 반감을 우려했다.
100만명 동원한 <러브레터> 이후 3차 개방하면서 고전
영화제가 아닌 일반 극장을 통해 처음 한국에 상륙한 일본영화는 <하나비>였다. 1998년 10월에 이뤄진 일본문화 1차 개방의 결과다. 4대 영화제 수상작과 공동제작 영화로 한정됐던 작품의 문호는 1999년 9월의 2차 개방을 통해 전체 관람가 작품, 공인된 국제영화제(70개 이상)의 수상작으로 넓어졌다. 1999년 11월, 대학가와 통신망을 떠돌던 문제작 <러브레터>가 개봉했다. 스튜디오2.0(옛 튜브엔터테인먼트) 김승범 대표는 “불법비디오로 영화를 본 관객이 20만명이라는 풍문 때문에 극장 개봉 당시에는 걱정도 많았다”고 술회했다. <러브레터>는 서울관객 64만명, 전국관객 100만명 이상을 동원하며 일본영화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에 물꼬를 텄다. <러브레터>의 수입 과정에는 약간의 비화가 있다. 김 대표는 <러브레터>만 구입하기를 원했지만 일본쪽은 패키지로 네편의 영화를 판매하려 했다. 당시 <러브레터> 때문에 김 대표가 사들인 나머지 영화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4월 이야기> <포스트맨 블루스>였다. 결과적으로 세편도 손해를 끼치지는 않았다. ‘국내 개봉 일본영화 역대 흥행 톱10’ 항목에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듯이 2000년 초반은 일본영화가 순항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3차 개방을 통해 성인영화를 제외한 모든 일본영화는 수입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미지’의 일본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의 호기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김 대표는 “2차 개방 때만 해도 당시 일본영화 중 좋은 작품을 엄선했다. 오랜 기간 화제에 올랐거나 검증된 영화들만 선택됐다. 그런데 이후 선택 범위가 넓어지면서 시장에서의 고전은 불가피했다. 개방 초기 시장에서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7월에는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가 불거지면서 3차 개방 일정이 미루어졌다. 개방이 늦춰지면서 개봉 시기를 놓치는 영화들이 생겨났다. 스튜디오2.0도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등 이와이 순지 감독의 전작을 4∼5년 뒤에야 개봉하는 고통을 겪는다. 한 충무로 관계자는 “국민감정도 있었지만, 정부가 일본영화가 잘되는 과정을 접하면서 전면 개방을 차일피일 미룬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감정의 역학은 최근에도 반복해서 드러났다. 2005년 3월 말 박스오피스 2위로 선보인 <지금…>은 개봉 일주일 뒤 ‘다케시마 망언’이 불거지면서 빠르게 종영됐다. <지금…>을 상영한 어떤 극장에서는 종영과 함께 독도 사진전을 개최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흥행 사례는 애니메이션, 공포영화 정도에 불과
일본영화 국내 개봉작 중 흥행 성공사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애니메이션과 공포영화 정도에 불과하다. <착신아리>와 <주온2>를 수입했던 한맥영화사 김형준 대표는 “한국영화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두 장르를 제외하면, 카메라워킹이 적고 드라마가 굴곡이 심하지 않은 일본영화는 성격이 급한 한국 관객에게 지루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지적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대성공을 거둔 대원 C&A홀딩스 박소현 대리는 “지속적으로 인지도를 높인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제외하면 다른 작품들은 계속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노센스> <스팀보이>처럼 메커닉이나 SF 요소가 짙은 애니메이션은 일반인은 물론 아이들에게도 선호도가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세상의…> <지금…> 같은 일본 내 흥행작이 국내에서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은 국내의 전반적인 ‘외화 약세’ 현상과 맞물린다. 더불어 그 영화들을 관객이 관람하는 조건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승범 대표는 “드라마 시리즈, 책, 영화의 인지도와 후광이 철저히 동반되는 일본과 달리 한국은 영화만 덜렁 던져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춤추는 대수사선> <세상의…> 같은 영화는 “동명드라마를 연계하여 관람하면 훨씬 풍부한 텍스트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단관 개봉, 합작을 통한 흥행 가능성 엿보여
와이드 릴리즈를 통해 국내에서 수년간 실패를 맛본 일본영화는 두 가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첫째는 영화수입이 아닌 원작의 판권 판매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접근하는 일이다. 현재 일본영화, 드라마,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에 돌입한 한국영화는 10여편을 상회한다. 김용진 실장은 “일본영화의 작품성이나 문화적 측면이 일정 부분 인정받은 증거다. 결국 이것은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의미”라고 표현했다. 합작영화 <첫눈>을 준비 중인 김형준 대표는 “결국은 합작 형태로 진행해서 양쪽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종 드 히미코>의 성공에 가려졌지만 <토니 타키타니>와 <박치기!>는 단관 개봉으로 1만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았다. 그 배경에는 스폰지하우스와 CQN명동이라는 극장이 존재한다. 특히 CQN명동은 모회사 시네콰논에 의해 안정적인 일본영화의 프로그램 수급이 가능하고 기획전도 준비 중이다. 스폰지하우스를 운영하는 조성규 대표는 “CGV가 인디관을 만들면서 멀티플렉스에 예술영화의 숨통을 틔웠고, CQN명동이나 스폰지의 단관 상영이 성과를 내기 시작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안정적인 장기상영은 관객에게 새롭게 접근하는 일본영화의 통로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상업영화와 단관영화의 구분이 뚜렷한 일본에서 작은 영화들이 생존하는 방식이다. 현재의 움직임은 코아아트홀과 호암아트홀에 예술영화 관객이 몰리던 과거사를 상기시킨다. 김승범 대표는 “한국 영화계 전체를 위해 일본영화를 비롯한 비할리우드영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관객층은 과거에도 존재했기 때문에 상업적인 가능성은 충분하다”라고 평했다. 김형준 대표는 “단관 개봉의 성공은 일본영화의 재발견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과거 호기심으로만 일본영화를 보다가 문화적으로 이해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관객층이 생기는 단초”라고 전망했다. 업계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지적하듯이 “극심해진 와이드 릴리즈, 한국영화와 할리우드영화에 편중된 관객의 선호도, 지방관객 확보의 어려움”이라는 삼중고에도 일본영화는 한국시장에서 재도약을 위해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밀고 있다.
국내 개봉 일본영화 역대 흥행 톱10
(서울관객 기준)
1. <하울의 움직이는 성> 98만1221명 | 2004년 12월 개봉
2.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93만7459명 | 2002년 6월 개봉
3. <러브레터> 64만5615명 | 1999년 11월 개봉
4. <주온> 34만5769명 | 2003년 6월 개봉
5. <춤추는 대수사선> 30만767명 | 2000년 7월 개봉
6. <쉘 위 댄스> 30만169명 | 2000년 5월 개봉
7. <사무라이 픽션> 22만4256명 | 2000년 2월 개봉
8. <철도원> 21만9327명 | 2000년 2월 개봉
9.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8만2607명 | 2004년 10월 개봉
10. <4월 이야기> 16만1423명 | 2000년 4월 개봉
자료출처: 상기 연도 영화연감
일본영화 국내 개봉 편수
2005년 | 24편
2004년 | 43편
2003년 | 20편
2002년 | 12편
2001년 | 36편
2000년 | 39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