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 살면서 한국영화와 영화계 소식을 접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기회다. 하물며 현지 개봉관에 한국영화가 당당히 걸리고 그 영화를 프랑스 관객과 같은 공간에서 불어자막과 함께 감상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때로는 자긍심도 느껴지고, 그 영화를 본 프랑스 지인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평소보다 더 열성적으로 이야기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최근 <왕의 남자>가 다시 한번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난감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지난해 5월 프랑스에서 개봉한 <태극기 휘날리며>를 영화 스탭으로 일하는 프랑스 친구와 함께 보러 간 적이 있다. 극장에 들어가기 전 그 친구가 “정말 이 영화가 한국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느냐”라고 내게 물어왔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 그 친구는 내게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을 건네왔다. 한국 인구가 몇명이냐고. 질문의 의도가 궁금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대화는 한편의 영화가 인구 4800만명의 한 나라에서(자국영화라 하더라도)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이 과연 발전적인 모습인지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영화라 하더라도 인구 4800만명의 나라에서 1천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결론이었다.
역사적으로 다원성, 다름, 문화적 다양성을 누려온 프랑스인들에게 한국영화의 흥행신화는 오히려 한국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 내 영화 개봉편수의 빈약함 내지는 한국사회의 획일성을 보여줄 뿐 그 어떤 순기능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에서 중국, 일본영화에 비해 상대적 열세를 보이던 한국영화가 이제는 연간 5∼6편이 개봉될 정도로 증가추세에 있는 것은 사실이며,‘한류’와 ‘1천만 관객 시대’는 최근 한국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된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성장만이 아닐 것이다. 최근 황우석 사건을 둘러싼 현지 언론의 문구가 떠오른다. “한국의 치명적인 함정은 스타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