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불거진 ‘과대·오인 광고’ 논란
2006-04-13
글 : 김수경

#1 1439명이 참여한 네이버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대한 네티즌 평점은 2.23점이다. 현재 상영작 중 최저 평점이며, 네이버 영화부문에 등재된 역대 상영작 중 2.10점을 기록한 <긴급조치 19호> 다음으로 최저 평점 2위에 해당한다. 최악의 평점을 받은 다섯편의 하위권 영화 중 유독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관람 전 평점 6.45점과 관람 뒤 평점 2.23점 사이에 현격한 격차가 발생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다.

#2 영진위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개봉 첫주 금·토·일 3일 동안 동원한 관객은 28만141명. 둘쨋주에는 9만6982명, 셋쨋주에는 8128명이다.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5위, 11위로 수직 강하했다. 첫주 동원한 관객 수가 비슷한 다른 영화에 비해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기록한 2, 3주차의 급격한 낙폭은 이례적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홈페이지, 각종 인터넷 포털의 영화 게시판을 맹폭격한 네티즌들의 리뷰나 악플은 대부분 ‘포스터와 예고편에 속았다’라는 이야기로 수렴된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내용과 마케팅이 암시하는 방향이 전혀 다르다는 일명 ‘오인(誤認) 광고’의 논란이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이 지닌 관객을 배반하는 내용과 스타일도 관객의 분노를 돋우는 데 한몫했다. 영화평론가 남다은은 “이 영화의 좀더 솔직한 제목은 ‘부르주아(남성)의 은밀한 매력(욕망)’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남성의 욕망을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으로 감춘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중적인 건 여교수 조은숙이 아니라, 이 영화의 전략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지식인을 풍자하는 수준을 넘어 그것을 지켜보는 행위 자체를 불편하게 만드는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이중적인 이야기구조와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 화면 구성은 관객 사이에 극단적인 찬반론을 불러일으켰다. 여배우의 에로틱한 정사장면을 기대했던 일부 관객에게 이것은 견딜 수 없는 배신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는 마케팅에 속았다”는 감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

“마케팅에 속았다” vs “영화대로만 보여줘야 하나”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마케팅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취재를 거부했다. “현 시점에서 마케팅의 적절성 여부를 묻는 질문은 창작자에게 영화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라고 말하며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오인 광고 논란은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장르의 색깔이 명확한 작품이나 스펙터클 중심의 대작영화는 마케팅 방향이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경우가 잦다. 상대적으로 자기 색깔이 강하거나 ‘B무비’ 성격이 짙은 영화들은 이러한 오인 광고 논란에 자주 휘말려왔다. 코미디영화처럼 마케팅된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가슴 만지기 게임이 논란이 됐던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가 그랬다. 하지만 이 논란의 핵심은 마케팅의 성패보다는 현재 한국에서 영화가 소비되는 배급과 상영 구조에 있다.

마술피리 박혜경 실장은 “마케터끼리 자주 하는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마케팅의 몫은 개봉 첫주 스코어까지다. 그 다음은 영화의 힘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자면 마케터들에게 ‘개봉 첫주의 흥행성적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관객을 극대화해야 하는 절대구간’이다. 논란이 된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의 마케팅에 대해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그런 마케팅은 외려 성공적이었던 건 아닐까. 그나마 현재의 마케팅이 없었다면 더 큰 흥행 참패로 인해 영화 자체에 대한 온전한 평가조차 어려웠을 지 모른다. 어느 마케터라도 상업영화를 작업하는 입장에서 영화의 본질 여부만을 잣대로 해서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영화가, 광고가 관객에게 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다”라는 견해도 제기됐다. 대부분의 마케팅 관계자들은 “본질적으로 관객의 요구보다는 프로덕션이나 감독의 성격이 강한 영화는 마케팅하기 어려운 프로젝트가 되게 마련이다. 관객과의 상업적인 합일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경우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처럼 한 가지 코드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거의 유일한 대책”이라고 밝혔다.

거의 모든 영화가 개봉 첫주에 운명이 결정되는 현실은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도나 관점을 포기하고, 영화를 판매하는 사람들은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싸이더스 FNH 김선아 PD는 “마케팅의 속성상 대부분의 영화는 유머러스하고 밝은 톤으로 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영화 자체의 어둡고 센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관객에게 각인되는데 성공한 영화들은 대단히 희귀한 사례”라고 평했다. 흥행에 성공한 영화 중에도 오인 광고나 과도한 마케팅 논란에 휩싸인 작품들은 많다. 하지만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영화 전반에 대한 모든 논란은 사라진다. <싱글즈>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도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과 비슷한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단지 <싱글즈>의 트렌디한 분위기와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멜로적 요소에 대한 관객의 호응 때문에 초반에 비난이 사그라들었을 뿐이다. 대한민국 역대 흥행 1위를 달성한 <왕의 남자>의 제목과 카피를 만들었던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는 “흥행이 잘 안 됐으면 제목이 그게 뭐냐는 지적부터 동성애영화는 역시 안 된다는 견해까지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인 광고의 논란도 결국 해당 영화의 흥행 성패에 따라 그 운명이 결정된다.

논란의 핵심은 배급과 상영 구조에 있다

“모든 영화를 영화의 내적인 면만으로 마케팅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한 발상이다. 마케팅에서 일상성이나 진정성만을 강조하는 관객의 태도는 편파적”이라고 한 마케터는 말했다. 모든 영화를 영화 내용에 따라 배치하는 방법만으로 마케팅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영화에 따라 영화 내적인 성격을 정공법으로 알리는 방식이 적절할 수도 있지만, 영화의 특정적인 면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적합한 영화도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문제는 영화의 특정한 성격을 확대하거나 강조해서 마케팅의 방향을 잡는 경우 ‘과대 광고, 오인 광고’의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생겨난다. 관객에게도 인식의 전환은 필요하다. 마케터들이 특이하고 센 영화를 장르적으로 포장하는 행동은 “독특한 영화라고 한번 입소문이 나면 관객이 보기도 전에 외면한다”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배우들의 지명도가 부족한 영화는 매체 인지도를 올리기도 어렵다. 이런 영화에 대해 대다수의 관객은 보지도 않고 등을 돌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판국에 ‘광고에 속았다’는 비난은 감정적이며 미디어 포화상태인 현실을 도외시한 의견이라는 것이다. 영화사 아침 정승혜 대표는 “포스터와 예고편에 속았다는 반응은 말이 안 된다. 현재는 광고나 마케팅 외에도 얼마든지 영화를 판단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존재한다. 공중파의 영화프로그램과 인터넷만 해도 그러하다. 현재 광고나 마케팅은 작품을 선택하는 가이드라인의 역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싸이더스FNH 김무령 PD는 “광고들이 예전에 비해 세련되고 질이 많이 높아졌다. 한편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작업하면서 기존의 광고와 유사해지는 측면이 있다. 영화광고는 광고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상품광고와 다르다. 상품 자체보다는 감정에 더 소구해야 하는 게 영화광고이기 때문에 그런 면에 좀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오인 광고 논란은 한국영화의 산업화가 가속화할수록 더욱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관객에게 과감하고 독특한 영화를 외면하는 것과 과대 광고, 오인 광고 논란은 어찌보면 동전의 양면이다. 따지고보면 이벤트 무비라 불리는 대다수 블록버스터 역시 과대 광고, 오인 광고로 관객을 불러모으는 것 아니었던가.

마케팅 성공 사례 <살인의 추억>

누구나 아는 실화라서 정공법을 택했다

현장 마케터들은 작품 내용을 철저히 활용하면서 마케팅에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영화로 <살인의 추억>을 첫손에 꼽았다. <살인의 추억> 김무령 PD는 “사람들이 너무 잘 알고 있는 실화라서 정공법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경우였다. <살인의 추억>이라고 제목을 지은 행위 자체가 정공법으로 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 <날 보러와요>를 원작으로 삼은 <살인의 추억>은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날 보러와요’를 사용하기도 했다. 김 PD는 “워낙 무거운 이야기니까 사람들이 보기도 전에 질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가볍게 풀면 많은 피해자의 존재나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오해를 부를 수도 있어서 균형을 잡으려고 주의했다”고 밝혔다. <살인의 추억>은 영화 자체도 해프닝 중심의 전반부는 가벼운 느낌이 묻어나고 후반부는 긴장감이 주조를 이룬다. 광고에도 이러한 요소가 적절히 반영됐다. 두 형사가 똑바로 서서 환하게 웃고 있는 포스터에는 ‘미치도록 잡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묵직한 카피가 대조적이다. 박해일의 등 너머로 비에 젖은 송강호와 김상경의 얼굴이 보이는 포스터는 ‘미치도록 잡고 싶었다.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카피로 긴장감을 더했다. <살인의 추억>팀이 “영화를 영화대로 보여주려 했던” 원론적인 방식은 가장 평이하지만 가장 어려운 방법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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