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용서하면, 깨닫게 될지니, <포도나무를 베어라> 촬영현장
2006-04-17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이혜정

지난 3월27일 화창한 봄날 오후. 썰렁해야 할 과천국립현대미술관 휴관일에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민병훈의 세 번째 장편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막바지 촬영이 한창이다. 휴관일이라지만 고가의 미술품들이 즐비한 국립미술관을 대여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민 감독의 인맥이 한몫을 한 거라고 프로듀서가 귀띔한다. 여하간에 조명기 하나라도 넘어져 작품을 손상시키지나 않을까 싶어, 수억원이 넘는 조각상 앞에서 그것만 지키고 서 있는 전담 스탭이 있을 정도다. 여기에 단출한 회색 유니폼을 입고 힘없는 모습으로 앉아 커다란 사진을 보고 있는 여자가 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의 여주인공 수아(이민정). 오늘은 남자친구 수현(서장원)이 수아가 근무하고 있는 이 미술관에 와서 마지막 이별을 고한 날이다. 민병훈 감독은 상처받은 수아의 뒷모습을 세심하게 체크한다. “수아야, 네 뒷모습 보면 꼭 아픈 사람 같아”라며 좀더 다른 느낌을 주문하기도 한다. 수현과 수아의 마지막 만남 장면은 더 늦은 오후에 촬영됐다. 민 감독은 배우들에게 헤어지는 연인의 서먹한 감정에 대해 상세하게 일러준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민병훈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전작 <벌이 날다> <괜찮아 울지마>에 이어지는 삼부작의 의미를 갖고 있다. “<벌이 날다>가 파고들어가는 영화였다면, <괜찮아 울지마>는 산으로 올라가는 영화이고, <포도나무를 베어라>는 하늘과 교감하는 영화”라고 민 감독은 설명한다. 견실한 가톨릭 신학생 수현은 자신의 신앙을 키우기 위해 여자친구 수아에게 이별을 선언한다. 그러고는 학장의 조언을 따라 문 신부(기주봉)가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수아와 닮은 헬레나 수녀(이민정이 1인2역을 한다)를 만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민 감독은 “주교님께도 보여드렸는데 싫어하시더라. (웃음) 그래서 더 잘된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이 성실한 신학도라는 걸 종교적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회개와 용서가 가능해졌을 때 자기 깨달음을 찾는 것.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직면하게 되는 것”에 관한 영화라고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설명한다. 여자를 버리고 신앙을 선택한 남자의 이야기로만 보이고 싶지 않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교리 강독 같은 영화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존재론적인 질문이 던져지고, 그걸 찾으려 애쓰고, 그러다가 언뜻 거기에 직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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