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곽원갑>의 이연걸과 <원초적 본능2>의 샤론 스톤을 비교해 생각해보려한다.
둘 다 영화에서 몸을 많이 써야 하는 사람들인데, 통상적인 의미로 젊은 몸을 가진 사람들은 아니다. 나이 들어가는 무술의 고수와 더이상 젊지 않은 원초적 본능의 상징, 이 두 사람은 대규모 제작비가 든 블록버스터에서 가장 스펙터클한 신체로 영화의 중앙에 놓인다. 무엇이 이들을 그 중앙 무대에 서게 하며, 또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들을 보게 만드는가?
1. 이연걸의 몸 - 과거에 대한 강력한 향수
우선 이연걸. <무인 곽원갑>에서 중국 무도 정무문을 창시한 훠위안자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20세기 초, 당시 반식민지였던 상하이에서의 일이다. 영화는 곽원갑의 어린 시절, 19세기 후반 톈진에서 시작한다. 알다시피 톈진은 북부 최대의 항구 도시로, 중국 근대사에서 강제 개방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현재도 만국 건축물의 박람회장으로 불린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국인들이 거느리고 온 인도계 군사들을 포함, 각국 군사들이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서구는 중국을 ‘아시아의 병자’로 부르며 조롱한다. 곽원갑의 아버지는 무술의 고수이나 아들이 무술을 배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곽원갑은 책을 보며 스스로 깨쳐 아버지가 근심한 대로 호전적 무예가로 자란다. 중국을 노리는 외국 상인들과 군인들, 선교사들이 들끓는 와중에 곽원갑은 높은 무대에서 무예를 겨뤄 톈진의 영웅이 된다. 그러나 비극적 우여곡절 끝에 그는 저장성의 소수 민족 마을에 가 무예를 버리고 농사를 짓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속세로 나와 세계 각국의 무예 고수들과 무예를 겨뤄 ‘아시아의 병자’인 중국인들의 자긍심을 세워준다. 그리고 상하이에 정무체조학교를 세운다. 중국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곽원갑이 국민 영웅으로 등극하는 과정은 비국민적인 적들과 겨뤄 승리하는 것이며, 저장성의 소수 민족과 어울리는 예에서 보듯 중국 내부의 소수 민족을 껴안는 것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영화는 국민 영웅의 최후의 한판 승부, 승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곽원갑은 피를 토하며 죽는다. 그리고 영화가 가르치는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무’(武)라는 글자가 싸움을 멈춘다는 뜻이라는 점이다. 복수를 위해 싸우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곽원갑 아버지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곽원갑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체화하고 그것을 정무문으로 조직해 반식민시대, 중국의 무술로 키워낸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좀더 뒤얽혀 있다. 아버지는 사실 그를 가르치길 거부했으며, 곽원갑이 정의로운 승부를 가릴 수 있는 상하이의 ‘세계무대’는 서양과 일본의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투기자본이 득실대는 곳이며, 그 자본이 결국 그를 독살하게 된다. 곽원갑은 개인적 복수를 위해 싸움하는 것은 멈추었으나, 결국 그를 멈추게 하는 것은 외국 자본이다. 그리고 여기서 잠깐 이소룡 주연의 <정무문>에 대한 분석 글을 소개해 이 영화가 빚어내는 결정적 오해가 무엇인지 지적하려고 한다.
’중화주의적 트랜스 아시아’의 육체
“영화 <정무문>(1972)은 이소룡 영화 중 가장 민족주의적 색채를 가진 영화다. 이 영화는 1908년 반식민 상태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정무문’이라는 도장의 사부가 죽은 실제 사건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소룡은 경쟁 상대인 일본의 가라테 고수가 사부를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복수를 위해 무예를 사용하지 말하는 도장의 규율을 깨뜨린다. 일본인은 중국을 ‘동아병부’(동아시아의 병들고 약한 나라)라고 조롱하지만 이소룡은 이 글이 적힌 액자와 ‘개나 중국인 금지’가 걸린 공원의 안내문을 부숴버린다. 영화는 이소룡과 일본인이 고용한 러시아인의 대결장면에서 절정에 이르고, 모든 복수를 마친 뒤 경찰이 체포하려고 할 때 이소룡은 그들을 비추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덤벼든다. 이소룡의 기합소리와 경찰의 총소리가 들리고 영화는 반쯤 뛰어오른 이소룡을 프리즈 프레임으로 잡으며 끝난다.”(크리스 베리, “스타의 횡단: 초국적 프레임에서 본 리샤오룽의 몸 혹은 중화주의적 남성성”, <트랜스: 아시아 영상문화>, 현실문화연구 중)
예컨대 <정무문>은 <무인 곽원갑>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셈이다. 영화 <정무문>과 <무인 곽원갑>의 차이는 <정무문>의 이소룡이 적으로 지목한 일본 가라테 고수 안노 다나카(나카무라 시도)가 <무인 곽원갑>에서는 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는 공정한 경쟁 상대로 변화한 데 있다. 즉, 곽원갑을 독살하는 일본 자본가는 악당이지만 그와 공정하게 무예를 겨루는 안노 다나카는 일본 혼을 지닌 진정한 일본 무인으로 그려진다. 이연걸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고 하지만 <무인 곽원갑>의 프로듀서는 빌콩으로 그는 <와호장룡> <영웅> 등의 초국적, 트랜스 아시아적 영화를 제작해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위의 글에서 크리스 베리는 위와 같은 이소룡의 몸에서 중화주의적 남성성을 표현하는 신무(新武)와 함께 글로벌화된 미국적 남성성(근육질인 몸의 전시가 평가되는 미국식 남성성)의 혼합을 읽었는데, 영화 <무인 곽원갑>은 마지막 대결에서 서구 각지에서 온 백인 근육질 육체들과 단신으로 경합한다. 그들을 모두 물리치고 곽원갑은 안노 다나카와 싸우는데, 독약을 먹인 것을 눈치챈 안노 다나카는 곽원갑의 손을 들어 그가 승리했음을 선언한다. 2000년대 트랜스 아시아적 관객과 캐스팅, 자본의 동원으로 바꿔진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결론은 한편으로는 80년대 이후 경제적 의미에서의 ‘아시아의 부상’ 이후 최근에 와 범아시아 공동 제작이 유행을 이루면서 70년대 <정무문> 이소룡의 신무적 중화주의 플러스 미국식 남성성이던 육체의 이미지(중국 무사들은 이소룡의 벗은 근육질 에로틱 몸매와 달리 물결치는 듯한 옷으로 몸을 감싼다)에서 미국식 남성성이 삭제된 것이다. 즉 할리우드에 가서 이연걸이 망했다는 일부 네티즌의 진단과 달리 <무사 곽원갑>에서 이연걸은 “중화주의적 트랜스 아시아”의 육체로 돌아온 것이다. 영화를 본 여성 네티즌이 이연걸뿐만 아니라 안노 다나카에 환호하는 이유도 영화의 이러한 “트랜스 아시아”적 횡단 때문이다.
<황비홍>보다 현실적인, 이소룡보다는 약삭빠른
그러나 이러한 방향이 역사적으로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이소룡의 신체가 보여주는 글로벌화된 미국에서 일본, 아시아로의 이런 매끄러운 전환, 연대는 과거사로 따져보나 현재로 살펴보나 약삭빠른 데가 있다. 아시아 연대라기보다는 트랜스 아시아 자본이 말하는 방식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이연걸의 스타 이미지로 보자면 <황비홍>에서보다는 현실적이다. <무인 곽원갑>과 비슷한 1875년이 시대적 배경인 <황비홍>에서 청년단의 무술사범이었던 그는 중국 수호는 물론 서양까지 접수하겠다는 야심에 불탔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패배하는 승리자 내지 승리하는 패배자의 양가성을 가진 존재로 등장하며 서양을 다스리기보다는 중국 소수 민족을 감싸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영화가 이연걸의 액션 은퇴작이 될 것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홍보 주안점 중 하나였듯이, 공격적인 중국의 세계화, 현대화 시기 실제 고수인 전통 무인인 이연걸의 스타성은 그 효력을 다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왕우, 이소룡, 성룡, 이연걸의 뒤를 잇는 무협 스타가 궁금하다.
‘무’의 진정한 의미가 싸움을 멈춘다는 것이라면, 홍콩과 중국은 이제 전통적 싸움을 멈추고 일본을 포함하는 아시아와 중국 내 마이너리티를 끌어안고 세계화의 도정에 올라와 있는가? 이연결의 노쇠해가는 몸은 그래서 전 시대에 대한 강력한 향수이며 자기 연민이다. ‘전통적’ 싸움이 ‘무’한 시대, 세계화와의 싸움이라는 멈출 수 없는 길에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이다.
2. 샤론 스톤 - 신자유주의 팜므파탈
“누가 <원초적 본능2>를 보기 원하랴?” <원초적 본능2>에 대한 넘쳐나는 악평 중 하나다. 그러고보니 맞는 이야기다. <스타워즈> 시리즈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얽혀드는 이야기도 아니고, 반지를 내다버리러 멀리 가야 하는 대모험극도 아니며, 심지어 속편마다 성큼성큼 자라나고 있는 마술 소년, 소녀도 없다. 2편을 가장 원했던 사람은 샤론 스톤 자신처럼 보이는데, 49살인 그녀는 1992년 <원초적 본능>이 나온 이후 10여년이 흘렀건만 얼굴이나 몸이나 주름 하나 없다. <원초적 본능> 속편을 찍기 위해 중년을 헌신한 사람처럼 보인다. 보톡스의 세상이니 뭐,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사실 보톡스를 훨씬 넘어선다. 그래서 마이클 더글러스가 있던 자리에 엇비슷하게 놓인 마이클 글라스(데이비드 모리시)는 긴장감 넘치는 잠재적 섹스 파트너라기보다는 고양이 앞의 쥐, 호랑이 앞의 토끼로 보인다. 불쌍한 쥐와 토끼의 입장은 잠시 보류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49살의 샤론 스톤이 고양이와 호랑이로 등장하는 것이 좋다. 여자의 젊음과 성적 매력의 등가를 깨버리는 것이 탈신화적 몸짓으로 보인다. 이 영화가 샤론 스톤에 부여한 명백한 코드는 마돈나와 프로이트의 그 유명한 여성 환자 ‘도라’다. 마돈나에게서는 성적 매력을 팔아 남(대부분 남자들) 좋은 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육체 이미지로 얻어지는 부가 수입을 가져가는 자기 경영자적 전략을 가져온다. 캐서린 트러멜(샤론 스톤)은 모든 ‘원초적 본능’에서 발생하는 것들을 계획하고 추수해 자신의 소설로 탄생시킨다. 도라에게서는 정신분석 치료를 자원했다가 돌연 그만둬 정신분석의를 결정적 혼란에 빠트리는 시나리오를 가져온다. 하드 트레이닝으로 잘 만들어진 몸과 얼굴과 달리 그녀의 동선은 중년 여자의 움직임을 갖고 있어 의도하지 않은 이화효과가 매번 나타난다. 얼굴과 정적인 몸의 기호적 방출과 동적인 몸의 움직임, 그 기호성이 완전히 어긋나는 것이다. 여배우 연기 기호학의 흥미로운 사례다.
성형과 헬스클럽과 웰빙을 위한 ‘소비의 장’으로서의 육체
여하간 마돈나와 도라 전략을 가져오고, 모든 권위있는 남자들을 함정에 빠트리건만 캐서린 트러멜은 능동적 여성 주체라기보다는 영국에 가 미국식 연쇄살인사건을 전파하는 미국산 신자유적 여성으로 보인다. 샤론 스톤의 실제 나이 때문에 성적 매력이 젊은 여성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무언의 선언은 있지만, 영화 안에서 그녀는 품위있게 나이 들어가는 정신분석의인 밀레나 가도쉬(샬롯 램플링)의 직업윤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마이클 글라스의 전처를 죽게 만들고, 모든 것을 자신의 베스트셀러 인세로 수렴시킨다. 그녀의 육체는 성형과 헬스클럽과 자신의 “웰빙”을 위해 타자의 윤리를 짓밟는 신자유주의적 소비의 장에 다름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유일한 원초적 본능이 환기되는 순간은 나이를 극복한 여성의 몸이 가질 수 있는 성적 역동성이 아니라, 베스트셀러 재료를 모으고 또 구성하고자 하는 캐서린 트러멜의 악착같은 플로팅(plotting)에서 온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이가 들었는데도 섹스 심벌로 나온다고 샤론 스톤을 험담하는 일부 남성 팬들로부터 이 영화를 옹호할 수 없어서. 그녀가 다음엔 좀더 나은 영화를 고르길 바랄 수밖에…. <퀵 앤 데드> 같은 영화는 괜찮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