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주먹>은 1970년대의 마감인가 아니면 1980년대의 포문을 연 작품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현재 할리우드영화 혹은 미국 작가주의영화의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과 같다. <분노의 주먹>은 분명 <대부> <내슈빌> <애니 홀>을 잇는 1970년대의 적자이며, 이후에 만들어진 어떤 할리우드영화도 이들 작품의 명예를 되살리지 못했다. 권투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마틴 스코시즈를 부추겨 <분노의 주먹>을 연출하게 만든 사람은 라모타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로버트 드 니로였으며, <록키>로 재미를 본 어윈 윙클러와 로버트 차토프는 색다른 권투영화에 주사위를 던졌다. 영화광 스코시즈가 존경하는 선배들이 영화를 발명했다면 <분노의 주먹>은 그 모든 기술과 영감, 관습, 기교를 한꺼번에 몰아넣은 결과물 즉 퇴층 같은 작품이다. <분노의 주먹>은 손 때문에 흥하고 손 때문에 몰락한 남자의 이야기다. 영화 초반, 주인공 제이크 라모타는 자신의 손이 작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그는 그 손으로 링의 적들을 눕히고 아내와 동생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감옥에 갇힌 그는 벽을 치다 부서진 손을 움켜쥐며 후회한다.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나쁜 놈이 아니야.” <분노의 주먹>은 1941년부터 1964년까지 ‘성난 황소’라 불린 남자의 비극과 그 자신과 가족이 파멸하는 과정을 다루면서 한치의 연민에도 빠지지 않는다(근래 만들어진 <신데렐라 맨>과 비교해보라). 그러나 말미에 나오는 요한복음의 한 구절처럼 ‘한때 눈이 멀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게 된’ 자의 심경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사실 한 인간이 겪는 영욕의 세월은 관객의 마음을 쉽게 뭉클하게 만드는 소재다. 그런 소재를 완벽한 영화문법으로 완성한 <분노의 주먹>이 <시민 케인>을 넘어선 작품이라고 말하기란 쉽지 않지만, 드라마가 주는 감동은 <시민 케인>을 넘어선다. 오프닝부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시처럼 음악처럼 흘러가는 영상(믿을 수 없으나 마이클 채프먼이 스케이트를 타고 찍은 장면도 있다 한다)은 한편의 무용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데, DVD는 스크린의 느낌과 별개로 만족스러운 재현을 보여준다. 거친 자막과 삭제된 음성해설이 다소 아쉽긴 해도 뒤늦은 출시 자체가 반가운 DVD인데, 부록도 필견이다. 로렌트 부제로가 연출한 4부작 다큐멘터리(사진, 84분)는 영화에 참여한 사람들의 알찬 증언을 제작 단계·분야별로 수록하고 있다. 그외 별도 제작된 다큐멘터리(28분), 영화와 실제 권투장면 비교(4분), 라모타의 방어전 모습(1분), 예고편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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