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사라지는 게 두렵지 않은 남자, <라스트 데이즈>의 마이클 피트
2006-04-29
글 : 김도훈

마이클 피트에 따르면 <라스트 데이즈>는 “커트 코베인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그를 위한 영화”다. 그는 많은 인터뷰에서 코베인과의 유사점을 거부하며 “사람들은 내가 코베인과 똑같은 걸음걸이로 걷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다만 마약중독자처럼 걸었을 뿐”이라고 불평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25살 배우에게 영원히 젊은 채로 존재하는 신화의 이미지를 뒤집어쓰라는 것은 그렇게도 부담스러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피트가 코베인이 생전에 걸쳤던 것과 똑 닮은 선글라스와 셔츠를 입고 스크린에 등장하는 순간, 그것이 코베인의 은밀한 재림처럼 보이는 것은 도무지 피할 길이 없다. 세트장을 종종 방문한 그룹 ‘소닉유스’의 멤버이자 코베인의 친우였던 서스턴 무어는 무엇이 피트를 코베인처럼 보이게 만드는지 잘 설명해준다. “피트는 코베인을 흉내내지 않으면서 코베인을 연기한다. 코베인의 어떤 무의식을 그대로 가져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를 볼 때마다 정말로 커트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혼비백산했다.”

사실 “닮지 않아서 캐스팅했다”는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말에 반기를 들 수 없을 만큼 코베인과 피트의 얼굴은 닮은 데가 없다. 피트의 얼굴은 아름답다, 탄성을 내려다가도 몇초간 망설이게 만드는 기이한 조형미를 갖고 있다. 아이 같은 얼굴과 붉은 입술은 남자배우로서는 드물 만치 퇴폐적이다. 모든 남자배우들에 대한 관음증적 시선을 가진 반 산트가 피트의 가녀린 퇴폐미에 같은 욕구를 느끼지 아니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피트의 이미지를 관음한 감독은 반 산트만은 아니다. 피트는 “베르톨루치는 배우를 방 안에 던져넣고 문을 잠근 다음 불을 지르고는 그것을 촬영하는 감독”이라고 불평하며 “지금이라면 절대로 <몽상가들>에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어른이 되기위한 제의를 못내 거부하는 예민한 소년으로만 캐스팅되었고, 이는 바벳 슈로더의 <머더 바이 넘버>(2002)나 래리 클라크의 <불리>(2001)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성장의 제의를 거부하고 사라진 인물에 대한 영화 <라스트 데이즈>를 선택한 뒤 “손을 등 뒤로 묶고 유기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리는 작업”이라고 힘겨워하는 것은 거의 자기학대처럼 보일 지경이다.

프로이트라면 피트의 현재를 지난 성장과정에서 읽어내려 애썼을 것이다. 1994년, 코베인이 스스로의 머리에 탄환을 쑤셔넣었을 때 피트는 13살이었다. 그는 뉴저지 백인 하층계급 출신이었고, 누구 하나 보살펴주는 이 없었기에 일찌감치 자유의 무거움을 등에 업고 살아가던 아이였다. 16살이 되는 해에 고등학교를 때려치우고 뉴욕으로 건너온 그는 오프 브로드웨이의 연극 무대에 올라 가까스로 입에 풀칠을 했다. 메소드 연기가 무엇인지 몰랐고, 글을 읽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던 그는 아예 대사를 모조리 외워 무대에 올랐고, 곧 연극 무대의 천재소년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티 홈즈와 미셸 윌리엄스가 출연한 인기 드라마 <도슨의 청춘일기>의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그들이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는 나를 불렀다. 3년 동안 계약하자. 너를 백만장자로 만들어줄게. 나는 거절했다. 그런데 45분 뒤에 그들이 나를 다시 불러서 내게 원하는 게 뭐냐고 물었다. 나는 15개의 에피소드에만 출연하겠다고 했다. 돈은 살 만큼만 벌면 되니까.” 그는 당시 일을 떠올리며 “그냥 어렸고 멍청했다”고 되뇌지만 “차마 제목을 말할 수 없다”는 블록버스터 출연 제의를 줄줄이 거절한 것으로 보아 그는, 할리우드의 관점에서 여전히 어리고 멍청하다.

마이클 피트는 25살이 되었고, 커트 코베인이 자살한 나이까지 2년이 남았다. 사람들의 욕망은 양면적이다. 그들은 “서서히 사라지느니 한번에 타버리겠다”는 유서를 남긴 코베인을 보며 이상한 안도감을 가진다. 코베인이 천천히 늙어서 돈 많은 록스타가 되는 걸 보느니 그렇게 불타버린 것을 슬퍼하는 동시에 찬양하기를 원한다. 피트를 보면서 드는 걱정이라면, 그에게서 (죽음은 아닐지라도)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그다지 두려워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는 키아누 리브스나 조니 뎁 같은 배우들이 저마다 밴드를 조직했던 90년대처럼, 지금도 뉴저지에 처박혀 자신의 밴드 ‘파고다’와 작업하는 데 몰두한다. 그리고 거대 스튜디오의 돈봉투를 뿌리치고 브래드 피트를 90년대 인디영화의 별로 만들었던 <자니 수에드>의 톰 디칠로와의 작업을 선택한다. 피트는 젊은이들이 다 해진 남방을 걸치고 노이즈 낀 기타를 쟁글거리며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연민하던 미국의 90년대를 다시 살아가고 있다. 누구는 그의 행보를 보며 조금 늦게 태어난 예술가의 여정이라 부를 것이고, 누구는 그것을 철없는 반항아의 모험이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배우라는 일을 그저 “돈벌기 위한 직업”이라고 부를 뿐이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연기를 그만둔다면, 그것은 밴드를 계속할 만한 돈을 충분히 벌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진제공 Lamoine Photo Group/Europhoto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