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45>를 한동안 보다가, 최근엔 뜸해졌다. 식민지 시절에서 시작하여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그린 <서울 1945>의 시작은 흥미로웠다. 1회에서 보여준 한국전쟁이 발발한 순간의 서울 풍경도 나름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아역배우들이 성인배우로 바뀌고, 이야기가 작위적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차츰 재미가 없어졌다. 이야기가 느슨해지면 배우들이라도 뒷받침을 해야 하지만, 그것조차 없었다. 캐릭터의 개연성이 없기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역을 맡은 소유진과 한은정이 대하드라마의 주역을 맡기에는 아직 미숙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 무겁고 진중한 시대에 비하자면, 소유진과 한은정의 존재감은 너무 약하다. 남자배우들도 그렇다.
개인적으로, 소유진과 한은정은 비교적 호감을 가진 배우들이었다. 소유진이 출연한 <내 인생의 콩깍지>를 즐겁게 봤고,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맹한 캐릭터도 좋았다. 한은정의 도회적인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예쁘장한 얼굴과 매력적인 스타일로 일단 어필했지만, 그들은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예쁘고 매력적인 배우들이 제자리에서만 맴도는 모습을 보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한번 구축한 이미지만으로도 한몫 챙긴다면, 그것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꽤 가치있는 일이다. 최소의 노력으로 높은 이익을 끌어냈으니까.
하지만 배우에게는 발전의 흔적을 보는 게 더욱 즐겁다. <불량가족>을 보게 되는 큰 이유는 남상미다. 남상미가 얼짱 출신이라며 데뷔했을 때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순수한 매력은 있지만 끼가 너무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었다. 오락프로그램에 나올 때도, 참 애쓰는구나, 라는 정도였다. <잠복근무>에 나왔을 때도 인상적이진 않았다. 하지만 <달콤한 스파이>를 보면서, 남상미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달콤한 스파이>에서 남상미의 캐릭터는 순박하고 성실한, 결코 포기하지 않는 억척스러운 여인네였다. 딱히 신세대라고 하기도 힘든, 전통적인 한국 여인상에 가까운 캐릭터였다. 어딘가 좀 맹하면서도 귀여운, 이웃집 누나나 동생 같은 이미지로 남상미는 자신의 이미지를 발전시켜갔다.
<달콤한 스파이>의 스토리가 지지부진 꼬이는 순간에도, 남상미의 연기는 안정적이었다. 순수한 얼굴만으로 밀고 나갔으면 금방 식상했겠지만, 남상미는 가리는 게 없었다. 코피도 흘리고, 공중 발차기도 하고, 하여튼 온갖 것들을 다 했다. 굳이 예쁜 척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불량가족>에서의 캐릭터도, 크게 보면 <달콤한 스파이>와 다르지 않다. 억척스럽고, 조금 맹해 보이면서도 따질 거 따지고, 가끔 폭력도 쓰는 여인네다. 그건 남상미에게 원래 있었다기보다는, 조금씩 발전시켜가면서 얻어낸 이미지다. 남상미를 응원하는 것은, 그런 노력이 가상해서다. 재능이란 건 정말 중요하고 가끔 눈이 멀게도 하지만, 진짜 박수를 치고 싶은 건 한 걸음 한 걸음 꾸준히 걸어와서 어느덧 올려다보게 되는 순간이다. 그런 배우들을 보는 게, 잠깐 눈부심으로 끝나는 배우들의 경연보다 훨씬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