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오염과 소비의 세계에서 희망을 꿈꾼다, 제3회 서울환경영화제
2006-05-03
글 : 김수경
5월4일부터 10일까지 열려, 28개국 109편의 영화 상영

신록의 계절 오월에 환경영화 축제가 펼쳐진다. 세 번째 서울환경영화제는 어린이날부터 본격적인 상영을 시작하며 가족영화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영화를 대거 준비했다. ‘지구의 아이들’ 섹션을 통해 어린이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는 스물다섯편의 전체 관람가 영화를 별도로 편성한 것이 이채롭다. 이번 환경영화제는 5월4일 개막해서 10일까지 일주일간 28개국, 109편의 영화를 선보인다.

50편의 장·단편이 포함된 ‘널리 보는 세상’ 섹션에는 고도성장에 의한 무절제한 개발과 환경 파괴, 그로 인한 자연재해의 발생,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다양한 영화가 존재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 중인 중국사회를 개인이 겪는 박탈감이나 빈부의 격차에 포커스를 맞춘 <메이드 인 차이나>와 <상하이, 상하이>가 눈에 띈다. 푸저우에서 소녀들에 의해 만들어진 액세서리가 미국에서 소비되는 과정을 따라잡는 데이비드 레드먼의 <메이드 인 차이나>는 세계화의 중심에는 인류, 국경, 민족은 중요치 않으며 오로지 자본만이 존재하는 점을 부각시킨다. 미켈란젤로 간돌피의 다큐멘터리 <상하이, 상하이>도 무절제한 도시개발로 상하이 사람들이 맞이하는 미래는 안락한 삶이 아니라 자본에 따른 빈부 격차의 심화라는 것을 시사한다. 에르긴 바겐호퍼의 <먹을거리의 위기> 역시 자본으로 인한 식량 불균형의 문제를 지적한다. 인류의 25%가 기아에 허덕이는 동안, 선진국에서는 넘쳐나는 먹을거리가 폐기처분되고 가축을 위해 농작물을 양산하는 행동이 반복된다. 이 밖에도 쓰레기폐기장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공동체의 삶을 다룬 <달라스 지구>, 카트리나 참사를 목격한 노부부의 경험담 <로버트, 메리 그리고 카타리나>, 어린아이의 맹목적인 행동이 동물에 주는 공포를 풍자하는 <오리 이야기> 등도 ‘널리 보는 세상’에서 만날 수 있다.

‘지구의 아이들’은 어린이를 위한 부문이다. 이곳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 성격이 강한 영화들과 여러 가지 애니메이션이 자리잡고 있다. 기디 판 리엠트의 <곤충 나라의 에릭>은 주인공 에릭이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곤충세계의 모험을 그려낸 판타지물이다. <심슨 가족> 시리즈와 <인크레더블>을 만든 브래드 버드의 <아이언 자이언트>도 상영된다. <아이언 자이언트>는 탐험을 떠난 어린 소년 휴가스와 로봇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다. 국내 어린이들이 직접 만든 <가재, 가래 그리고 삼각김밥>, 스티븐 소토와 트레이스 게이너라는 두 중학생이 핵폭탄을 소재로 연출한 다큐멘터리 <병 속의 지니>도 흥미롭다. 중국 기예단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성장담을 다룬 왕동동의 <꼬마 기예단>이나 축구를 좋아하는 소년을 통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을 그려낸 다니엘 시반의 <오프사이드>도 추천할 만한 영화들이다. <얼룩소 이야기> <핑구: 쓰레기 대소동> <쉘> 등의 애니메이션은 짧은 분량이지만 기발한 상상력으로 가족 나들이에 나선 관객을 사로잡을 것이다.

서울환경영화제의 경쟁부문, 국제경선에는 14개국에서 만들어진 20편의 영화가 참여했다.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환경문제와 그로 인해 신음하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은 영화들이 주축을 이뤘다. 새만금 간척사업의 추진으로 사라질 서해 갯벌과 공동체의 문제를 제기하는 오종환의 <계화갯벌 여전사전1>, 핵폐기물 처리로 빚어지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조애나 라이트의 <데쓰 밸리>, 체르노빌 사건 이후 국가와 언론의 침묵으로 이중고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의 삶을 다룬 훌리오 소토의 <체르노빌, 그후>가 그러하다. 우크라이나의 작은 산촌마을에서 발생하는 벌목문제를 그린 <로코푸코 사람들>, 멕시코에 설립된 다국적기업과 사람들의 투쟁을 다룬 <마킬라폴리스>, 이스라엘 가자 지구의 분쟁과 상관없이 서로 돕고 살던 두 이웃의 모습을 그린 <잃어버린 바다>는 정치적 상황과 환경파괴가 맞물리는 현실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에코스포츠를 주제로 한 테마전과 서울을 배경으로 한 회고전이 마련됐고, 지난 2년간 사전제작을 지원했던 네편의 독립영화도 관객을 찾아간다. 매년 서울환경영화제의 문을 열었던 환경옴니버스영화 프로젝트는 올해도 차질없이 준비됐다. 황병기, 이계벽, 박수영·박재영 감독이 만든 개막작 <9시 5분>은 불임, 유해 폐기물, 애견 유기라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제로 만들어졌다. <9시 5분>은 5월4일 연세대백주년기념관에서 상영되어 제3회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을 알린다.

초강추! 놓치지 말아야 할 Best of Best

<별이 된 소년> 가와케 슌사쿠/지구의 아이들/ 113분
오가와 테츠무(야기라 유야)는 “동물 냄새가 난다”고 놀림받을 만큼 동물과 친근한 중학생이다. 왜냐하면 그는 오가와 동물 프로덕션에서 자라났기 때문이다. 코끼리 조련사 아저씨에게, 타이에는 코끼리와 대화하는 조련사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테츠무는 가족을 설득해 타이 코끼리학교로 유학을 떠난다. 성큼 소년으로 자란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는 연기력도 더욱 성숙한 모습이다. 타이의 울창한 산림에서 그가 코끼리와 거니는 장면은 눈부시다. 승부나 해프닝 중심의 할리우드 동물영화와는 달리 인간과 동물의 교감이나 문화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연출도 훌륭하다. 토키와 다카코와 야오이 유우처럼 국내에 친숙한 얼굴들이 조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사선에서> 사샤 스노우/국제 경선/ 61분
영화가 시작되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울창한 삼림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한 남자가 숲을 헤매고 있다. 밀렵꾼인 그 남자는 ‘잠자는 호랑이’의 신경을 건드려 그가 인간 사냥에 나서도록 만든다. <사선에서>는 자연과 공존하기를 거부하는 인간사회가 맹수를 ‘괴물’로 포장하여 마녀사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선에서>는 멋진 풍광에 스릴러영화를 연상시키는 긴장감이 넘치는 화면구성을 연출한다. 절제된 사운드의 활용과 극적 구성도 인상적이다. 첫 번째 장편 연출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주제를 풀어가는 화법도 매끄럽다.

지구의 아이들, 환경을 들여다보다

미이케 다카시의 모험영화부터 서커스 소년들 이야기까지, 추천작 7選

제3회 서울환경영화제 109편의 상영작 중에서 개성이 두드러지는 일곱편의 영화를 골랐다. <요괴대전쟁> <쓰나미 소녀, 아일라> <꼬마 기예단> <에트나>는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가족영화에 가깝다. 나머지 <메타도니아: 또 다른 중독> <꿈의 호텔> <마킬라폴리스>는 세계 각국에서 발생하는 현장들을 레이더처럼 포착한 정통파 환경다큐멘터리들이다. 강력한 메시지만큼 강력한 재미가 담긴 환경영화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한다.

<메타도니아: 또다른 중독> 마이클 네그로폰테/ 널리 보는 세상/ 88분
<메타도니아: 또다른 중독>은 뉴욕센터 마약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중독자들을 다룬다. 그들은 대부분 헤로인 중독자였으며 현재는 메타돈에 의존해서 생활을 이어간다.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 에디의 말처럼 문제는 “메타돈이 또 다른 중독을 낳는다”는 점이다. <메타도니아…>는 메타돈 투여가 중독자 치료와 사회적 복귀보다는 방어나 격리를 위한 유보적인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요괴대전쟁> 미이케 다카시/ 널리 보는 세상/ 124분
미이케 다카시 감독이 만든 소년모험영화. 가도카와 창립 60주년 기념작 <요괴대전쟁>은 미이케 다케시의 기괴한 상상력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실사판을 연상시키는 다양한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다소 미숙한 분장과 특수효과는 거슬리지만 주인공 타다시가 괴물 스네코스리와 벌이는 격투 장면이나 전체적인 구성은 충분히 흥미롭다.

<쓰나미 소녀, 아일라> 빌마 리크타르트/ 널리 보는 세상/ 15분
알리샤 키스의 <If I ain’t got you>가 울려퍼지며 세 아이가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그들은 바다에 도착하지만 소녀 아일라는 두려움 때문에 물에 다가서지 못한다. 네덜란드 소녀 아일라는 쓰나미가 닥쳤을 때 스리랑카에서 가족과 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당시 사진, 아일라가 그린 그림을 넘나드는 <쓰나미 소녀, 아일라>는 그녀의 목소리로 대참사를 담담히 되짚어본다.

<꼬마 기예단> 왕동동/ 지구의 아이들/ 52분
베이징 차오양공원에는 서커스 극장이 있다. 이곳에서 허이룽장 서커스 그룹이 기예단을 운영한다. 서커스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보통 4∼5년의 수련이 필요하다. <꼬마 기예단>은 그 과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생을 배워가는 아이들을 포착한다. 엄격한 연습과 체벌을 견디며 상상할 수 없는 동작과 기술을 연마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이보다는 운동선수와 닮아 있다.

<꿈의 호텔> 헬레 토프트 옌센/ 널리 보는 세상/ 59분
주인공 제노는 파리에서의 오랜 외유를 마치고 고향 세네갈 포펜긴에 금의환향하여 호텔을 건설한다. 그는 개인적 소망을 이루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경제적인 발전 앞에 혼란스러워한다. 조용한 해변마을은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으로 변모한다. <꿈의 호텔>은 개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개발 자체의 이해관계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사적 다큐멘터리로 풀어냈다.

<마킬라폴리스> 비키 푸나리, 세르지오 델 라 토레/ 국제 경선/ 70분
<마킬라폴리스>는 멕시코 지역의 다국적기업 밀집지역인 티후아나의 지역 명칭이다. <마킬라폴리스>는 세계 전역에서 발생하는 다국적기업의 환경오염, 노동착취의 문제를 노동자의 눈으로 포착한다. 지역노동자 카르멘과 루데스는 기업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가면서 운동가로 변신한다. 국내의 위험업종에 종사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에트나> 잔 더 블룸, 멜스 판 주펜/ 널리 보는 세상/ 42분
<에트나>는 어려운 자연환경을 일상으로 즐겁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에트나 화산 분출에도 동요하지 않고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는 <에트나>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크로키를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적절히 혼용한 형식도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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