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김태용 감독이 7년만에 내놓은 신작 <가족의 탄생> 기자 시사 (+전문가 100자평)
2006-05-10
글 : 오정연

데뷔작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통해 섬세한 여성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던 김태용 감독이 7년만에 내놓은 신작 <가족의 탄생>이 언론시사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소중한 사람을 충분히 아끼지 못하고, 마음은 그게 아닌데 진심을 몰라주는 듯한 상대의 모습에 발끈하여 막말을 내뱉고, 나의 불안함을 이유로 사랑하는 이가 달라져야 한다고 믿어버린 뒤 후회하는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가족을 얻고, 가족의 잃고, 가족을 꿈꾸는 과정을 다룬 이 영화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홀로 분식집을 운영하던 미라(문소리)가 몇년 만에 찾아온 말썽쟁이 남동생 형철(엄태웅)을 설레며 맞이하면서 시작한다. 반가움도 잠시, 형철이 자신의 부인이라며 소개한 무신(고두심)은 그의 어머니라 해도 믿을 지경이다. 그리고 무신의 전남편의 전 부인의 딸 채현이 찾아온다. 첫번째 에피소드가 가족의 기묘한 확장을 그린다면, 평생동안 키워온 애증의 고삐를 늦추지 못한 채 이별을 맞이하는 모녀가 주인공인 두 번째 에피소드는 가족의 어떤 상실을 이야기한다. 가장된 명랑함 속에 칼을 감춘 선경(공효진)은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태도로 자식을 방관한 줄 알았던 어머니 매자(김혜옥)의 사랑을 뒤늦게 발견한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은 아버지가 다른 남동생 경석이다. 깜찍한 로맨틱 코미디의 외양을 지닌 마지막 에피소드는 무신과 형철을 찾아왔던 꼬마 채현과 “고집세고 단순한” 꼬마 경석이 자라 연인이 된 상황을 그린다.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순진무구한 친절함으로 이겨냈을 채현(정유미)은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그토록 증오했던 엄마를 닮아가는 누나의 모습이 왠지 안쓰러운 경석(봉태규)은 그런 채현 옆에서 항상 외롭다.

씩씩하다 못해 투박하기까지 만 한 제목과 달리 <가족의 탄생>의 곳곳에는 섬세한 감독의 손길이 느껴진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저마다 다른 매력으로 관객을 자극한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인물들은 어디서도 본적없는 독특함과 이웃같은 친근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내공을 지녔고, 통속적이고 전형적이어서 드라마 주인공같은 인물이 포진한 두번째 에피소드의 미덕은 내밀한 묘사력이다. 젊은 커플의 사랑스런 투닥거림이 무기인 마지막 에피소드는 외로운 마지막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미라, 선경의 행복한 미소까지 덤으로 선물한다.

하나같이 범상찮은 영화 속 주인공들은 혈연이나 당위, 의무가 아닌 솔직함과 소중함, 세월 속에 깊어진 정으로 관계를 맺는다. 김태용 감독이 자신의 첫번째 장편 단독 연출작으로 완성한 <가족의 탄생>은 가족이라기보다는 관계, 그것도 가까운 관계에 대한 영화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 같은 여성들의, 여성적인 감성의 단면을 포착하는 세밀한 영화에 속하는 이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은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니?”라며 항변한다. 김태용 감독은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이루 말못할 복잡한 속내를 지닌 이 대사에 담긴 저마다의 특별한 사연을 끝내 설명해낸다. 어떤 장르로도, 어떤 시놉시스로도 설명하기 힘든 독특함을 지닌 이 영화의 사랑스러움은 그 고집스런 친절함에서 비롯된다.

<가족의 탄생> 100자평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등등으로 진행되는 상식적인 가족의 역사를 기발한 풍자와 유머, 그리고 연민으로 재구성하여, 전혀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이끌어낸다. 서로 빗겨가는 감정의 흐름을 절묘하게 잡아낸, 일종의 가족 판타지. 모계 가족의 건강함을 전망으로 제시하는 것도 도발적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엄마, 아빠, 아이들의 지지고 볶는 이야기? 지지고 볶아 봤자 그것은 화목한 정상가족 판타지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판타지가 아닌 리얼한 이야기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정상가족의 해체나 결손가족의 결핍 등이 연상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 역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변주일 뿐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벗어난 가족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까? <가족의 탄생> 이 보여주는 가족 이야기는 (<다섯은 너무 많아>도 그러했듯이) 결핍성에 울지 않고 대안성에 웃는다. 그녀들은 배타적 이성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 따로 또 같이, 거두고 보듬고 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이 된다 하지 않던가. 이 관계의 마술이 어찌 남녀사이에만 통용되는 말이겠는가? -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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