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소영 영상원 교수가 만난 <내 곁에 있어줘>의 에릭 쿠 감독
2006-05-19
사진 : 오계옥

영화보다 감독이 더 좋다. 텍스트보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더 괜찮다는 이야기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야말로 영화는 별론데 그걸 만든 사람은 영화보다 좀 낫다는 평가일 수 있으니 말이다. 에릭 쿠의 영화들을 보고 그를 만난 뒤의 느낌은 틀림없이 영화보다 감독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유는 위와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그가 가진 잠재력이나 에너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들이 이제까지의 영화들을 완성태라기보다는 미래에 놓인 단단한 디딤돌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선 그는 자산이 많다. 부유한 집안에서 예술적 취향을 가진 어머니의 지원을 받고 자라 마음 깊숙이 기댈 곳이 있다. 또 네명의 아들이 있다. 이런 경우 사람들이 흔히 맹세하듯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사랑하는 포메라니안 강아지도 있다. 또 광고회사도 경영하고 있기 때문에 죽어라 하고 상업영화를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다. 게다가 유머 감각도 뛰어나고, 친화력은 A플러스다.

한옥 미장 센느에 들어선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처음 에릭 쿠 감독을 만났을 때 그는 재떨이부터 찾았다. “신선하네요. 싱가포르 사람이 담배를 피우니까.” 나의 첫마디였다. 껌도 찾기 힘든 싱가포르(미니 마트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구강 ‘위안’ 용품이 껌을 대신해 진열되어 있다)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러나 영국 식민지의 계급 전통이 깊숙이 남아 있는 싱가포르의 여느 다른 지배층처럼 에릭 쿠 역시 대화에서 직접적인 충돌을 피한다. 예를 들어 “이제 좀 거스르는 이야기를 하겠다. 누가 당신의 영화를 이렇게 비판하더라”라고 말을 꺼내도, 에릭 쿠 감독은 그 이야기만 쏙 빼고 무지 흥미진진한 다른 이야기로 아무렇지도 않게 건너뛴다. 싱가포르 사람들이 다 에릭 쿠 감독이 부자라고 떠들어도, 본인은 저예산영화만 찍으면서 예술적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다년간 유지하고 있다. 소신있는 사람이다. 가장 기대되는 것은 그의 다음 프로젝트다. 김홍준 감독이 집행위원장으로 있던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쇼브러더스 회고전을 하기도 했으나, 쇼브러더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에릭 쿠의 다음 영화는 정말 궁금하다. 거기다가 쇼브러더스가 상하이, 싱가포르 그리고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각각 다른 형식, 장르로 영화를 만들겠다니. 그의 문화적 자산이 부럽기만 한다. 타이의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싱가포르의 에릭 쿠 그리고 한국의 김기덕 감독, 이 세 사람이 함께 만든 영화를 보았으면 좋겠다. 예의 그 쇼브러더스 영화를 이 세 사람이 만들면 안 되나?

-지난주 <씨네21>에 당신에 대한 글을 썼다. 여기 내 손에 들고 있는 원고가 그것이다.
=아, 나의 영화에 대한 글을 썼다니 반갑다. (CJ에서 나온 관계자에게) 복사해줄 수 있겠는가?

-정성일 선생님이 부산영화제 때 소개한, 이번 전주영화제 ‘삼인삼색’ 프로젝트 참여작이었던 <노 데이 오프>(No Day Off)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런데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지역이 배경인 이유는?
=관객 반응은 좋았다. 인도네시아 자바 지역 중에서도 저개발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술라웨시 출신의 한 여성이 싱가포르로 이주하여 여러 가정의 가정부가 되는 모습을 다룬, 내 단편을 본 관객은 인도네시아나 싱가포르의 경제적 상황이나 계급적 차이, 구조 등에 대해 많은 질문을 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학대, 영화로 다뤄

-최근 싱가포르 다큐멘터리영화인 <싱가포르 가가>(Singapore Gaga, 탄핀핀, 2005)에서는 거리의 탭댄서, 피아니스트, 복화술사 등 다양한 계층의 싱가포르인들과 베이징어를 모르는 화교들을 위해 중국 각 지역의 방언으로 싱가포르의 뉴스를 전하는 노년의 라디오 DJ, 시민 대피방송의 멘트를 녹음한 중년의 성우 등 여러 방언들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당신의 영화 또한 싱가포르 구성원들의 각기 다른 언어와 계층을 영화의 소재로 사용하곤 하는데, 이번 단편에서 이주여성 노동자를 다룬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우선 그 배경을 살펴보자면, 싱가포르에는 최근 그러한 이주노동자 가정부들에 대한 학대가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끓는 물이나 기름을 끼얹는 테러 등 극단적 예까지 있는데, 그러한 사례들을 사회복지국 직원과 함께 리서치하게 되었다. 싱가포르에서 그들이 가정부로 일하기 위해서는 가정부 전문교육학교에 다니며 필요한 기술과 단어들을 배우고, 빚을 져가며 싱가포르로 이주해와서 한 가정에서 일하게 된다. 이렇게 일자리를 잡게 되면, 다른 가정으로 옮겨다니기도 하는데, 대개 생활형편이 좋지 않은 가정으로 옮겨가게 되고, 끝내는 성매매 여성이 되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내가 이 영화에서 택한 시점은 주인쪽이다. 주인의 시점으로 가정부를 바라보는데, 주인의 얼굴은 비추지 않았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단편은 버니라는 이름의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장편데뷔작 <면로>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면로>에서 <노 데이 오프>로 옮겨가는 과정이다. 즉 <면로>에서 여성주인공 버니에 대해 시체애호증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는 감정적 투자가 엿보인다면, 이번 영화 <노 데이 오프>에서는 앞서 당신이 말한 것처럼 시점을 매우 제한함으로써 유사-다큐적 효과를 낸다. 어느 정도 동일한 차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문제에 대해 다른 접근방식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는가?
=그 대답에 앞서 내 이전 영화들에 대한 얘기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우선 1994년 난 <고통>( Pain)이라는 단편을 구상할 때 <One Last Cold Kiss>라는 작품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는데,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사도마조히즘적 고통에 대한 영화이다. 사람을 납치해서 고문하고, 그러다가 죽이고, 또 다른 사람을 납치해서 같은 과정을 즐기는 사람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로 싱가포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지만, 1998년까지 상영 금지되었다. 이 영화 덕분에 장편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데뷔작인 <면로>는 단편 정도의 예산으로 만든 장편이었다. 필름도, 시간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하루에 18시간씩 촬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작업해서 17일 동안 촬영을 끝냈다. 이 영화를 촬영했던 친구는 이 작업이 처음 장편 작업이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남자 미폭 맨의 연기 동작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친구는 ‘파드레스’(Padres)라는 록밴드의 보컬이기도 하다. 이전에 다른 단편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다”고 설득했다. 여주인공인 버니를 찾기 위해서는 실제 성매매 여성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버니를 만난 것은 나이트클럽에서였다. 같이 간 사람들이 춤추고 있는 그녀를 보더니 기가 막히게 아름답다고 탄성을 질렀다. 두달 정도 리허설을 하면서 프리 프로덕션 기간을 보냈다.

모든 B급영화를 좋아한다

-TV시리즈, 코믹스 등 하위문화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8살 때 어머니의 슈퍼8mm 카메라를 만지며 애니메이션 비슷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 자주 보았던 잡지로 <영화나라의 유명 괴물>(Famous Monsters of Film Land)이 있었고, 관절이 움직이는 GI조의 피겨를 좋아했다. 그 영향 관계를 보자면 쓰카모토 신야나 쿠엔틴 타란티노와 비슷한 세계일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바비 딕스 조>(Barbie Digs Joe, 1990)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어떤 계기로 영화제에 영화를 출품하게 되었는가?
=그렇게 단편 작업을 하던 중·한 잡지에 ‘콘돔 보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코믹스를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려줄 수 있는지?
=(갑자기 종이를 찾더니 펜을 꺼내들고서 슥슥 뭔가를 그리기 시작한다) 바로 이 캐릭터다.

-콘돔 맨인데 콘돔 위에 헤어가 보인다.
=엇, 원래 위에만 있는데…. 하여간 내가 영화 작업도 한다는 것을 듣고 싱가포르영화제 디렉터인 필립이 단편영화들을 보여달라고 졸랐다. 그래서 보여주었고, 그해 시작한 싱가포르단편영화제에 출품하게 되었다. 이해에 170여편이 출품되었는데, 우연찮게 내 단편 <바비 딕스 조>가 5개 부문에서 수상하게 되었고, 싱가포르에서 만든 단편영화로는 처음으로 해외영화제에까지 초청받게 되었다. 다음 단편 <어거스트>(August)는 낮은 시점에서 카메라를 잡을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 개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였다. 내용은 남편을 살해하려는 부인과 남편을 주인으로 생각하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 내내 강아지는 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고, 시점만 제공한다.

-그렇게 스스로 단편영화들을 작업했고, 또 장편 작업 이후에도 <홈비디오>(Home VDO) 같은 단편을 계속 작업하고 있다. 또 단편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신인들을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심사위원의 입장에서 한해 생산된 여러 편의 단편들을 보고, 그중 재능있어 보이는 감독들을 찾아내 그들의 다음 작품을 직접 제작하기도 하고, 또 다른 영화제작사와 연결되도록 후원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싱가포르의 다른 젊은 감독들을 지원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갑작스레 든 호기심에서 하는 질문이다. 자신의 영화 작업에서 참고하는 영화적 참조틀이 있는가?
=모든 B급영화를 좋아하는 편이다. 굳이 꼽자면 1970년대 이탈리아영화들을 좋아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싱가포르에서는 검열당해 잘려나갔거나, 아예 상영 금지가 된 여러 영화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기억에 남는 영화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미드나이트 카우보이>로 사운드디자인, 촬영 등이 마음에 들었다. 학생 시절 이후에는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바로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어서 영화제라는 장이 좋다. 그외에 스파게티 웨스턴도 좋아했고, 오즈 야스지로 또한 좋아한다.

(이 때 쯤 진행을 맡고 있던 스탭이 에릭 쿠 에게 커피를 마시겠느냐고 물었고 그는 블랙 커피를 마시겠다고 했다. 나도 그러겠다고 했는데 도착한 것은 인스탄트 다방 커피였다. 인터뷰 장소는 찾기 힘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불가능한 한옥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 이탈리안식 커피 대신 다방 커피를 마셨다.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공통요소는 테니스와 바나나 정도

-오즈 야스지로라고 하니 당신의 영화와는 꽤 거리가 있는 듯한데, 그의 영화에서 어떤 면을 보는가?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서 보이는 가족관계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이건 개인적인 변화이기도 한데, 나이 들면서 간단한 구조의 내러티브를 선호하게 된다. 숏 또한 정적인 숏이 더 좋다.

-지금 한국의 스크린에서도 상영되고 있는 당신의 최신작 <내 곁에 있어줘>(Be with Me)를 비롯해서 다른 영화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몇 개월 동안 싱가포르에 있으면서 당신 영화가 DVD 박스세트로 묶여 나온 것을 구입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곁에 있어줘>를 보고 나서 싱가포르에서 사온 DVD 박스세트를 보게 된 것이라 필모그래피상 거꾸로 보게 되었다.
=아, 내 DVD 박스세트를 구했나. 지금 싱가포르에서는 초기 물량 3천 세트가 매진된 상태다. (웃음)

-나도 그 3천명 중 하나다. 지난번 <씨네21>에 쓴 글에도 나오는 내용이지만, DVD 살 때 점원이 “에릭 쿠 감독이 부자인 건 아시죠?”라고 친절히 설명까지 해주더라. (웃음) 자국의 한 감독에 대한 그런 관심과 열정이 보기 좋았다. 다시 영화 얘기로 돌아오면 <12층>에서 보면 남자 유령이 계속 등장하는데, 그는 <베를린 천사의 시>에 나오는 그런 천사의 역할을 하는 유령은 아니다. 그가 하는 역할은 어떤 것인가?
=천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는 수호천사(guardiance angel)이다. 사실 그는 <내 곁에 있어줘>에서도 등장한다.

-아… 그런가. 다시 한번 봐야겠다. 이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도 찾아보려고 애쓸 것이다. 당신 영화에는 <12층>과 <내 곁에 있어줘>의 수호천사처럼 시네필적인 인용이랄까, 당신의 영화적 세계에 공통된 요소 같은 것이 있는가?
=글쎄. 테니스와 바나나 정도가 그렇지 않을까? 특히 바나나는 내가 만드는 영화만이 아니라 내가 제작하는 다른 감독의 영화들에도 꼭 넣도록 설득한다. (웃음)

-콘돔 맨으로 데뷔했다고 했는데 바나나도 뭐 너무 잘 알려진 그쪽 상징이라 별로 설명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다.
=아니 그냥 바나나 먹는 걸 좋아해서…. (웃음)

-<12층>을 보면 딸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하는 할머니가 있는데, 이 영화의 다른 숏들은 프레이밍이 상당히 잘되어 있는 데 비해 그 할머니만 아마추어 작품에서처럼 잡고 있다. 이렇게 다른 프레이밍 방식을 택한 이유가 있는가?
=사실 그 할머니는 전문배우가 아니고, 글을 읽을 줄 몰랐다. <12층>을 찍기 훨씬 전, 10년 전쯤 노인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은 적이 있었다. <12층>을 준비하던 중, 그때 기억이 떠올라 그때 그 장소로 가보았더니 놀랍게도 할머니가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렇게 해서 캐스팅하게 되었다. 얘기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자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잭 네오는 실제 코미디언이기도 하지만, 그 영화에서는 훨씬 더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잭 네오를 캐스팅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사실 그 스스로 더 못생기게 보일 수도 있다며, 적극적이었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치인의 사랑>에서 등장하는 나오미라는 캐릭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여기에 1996년에 실제 벌어졌던 장애 성매매 여성의 살인사건을 한데 합쳐 시나리오로 만드는 데 6개월 정도 걸렸다.

철저한 리허설로 예산 절약

-<12층>은 28만달러 정도의 저예산으로 장편을 완성시켰는데, 제작 방식은 어떠한가?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인데, 제작비가 여유있지 않은 편이라 모든 준비를 반복해서 철저히 한다. 우선 모든 장면을 그림 콘티로 하나하나 만들고, 스크립을 배우에게 읽혀보며 리허설을 한다. 리허설 과정은 모두 비디오로 찍어 다시 확인하기 때문에 실제 촬영 때 소요될 시간 낭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필름 값을 아끼기 위해서다. 이렇게 리허설을 거듭하다보니, 테이크를 반복해서 가는 일은 거의 없다. 그리고 캐릭터의 설정에서는 주변의 아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조합과 가능한 여러 이야기들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마지막에 중국에서 온 아구의 아내가 마오쩌둥 상 앞에서 자신의 연인과 찍은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내내 그녀는 좀 성가신 존재로 그려지는데, 마지막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우리는 그녀에게 다른 연민의 시선을 보내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계급 차이 등으로 고통받고, 결국 그 갈등과 모순은 언제고 드러난다. 사실 그녀 또한 엑스터시 1알을 복용한 대가로 1년 동안 감옥에 있어야 했다.

-당신은 싱가포르의 사람과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싱가포르 사회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왔다. 싱가포르 외부의 시선으로 볼 때, 당신은 싱가포르영화의 대표자와도 같은 인물이 되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게까지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12층> 이후 영화감독을 그만두려고 했었다. 나는 미신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믿는 편이다. 또 초자연적인 현상, 존재 또한 믿다. 전에 어디선가 이후 영화 작업을 하게 된다면 다른 일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촬영감독과 사찰에 가서 크랭크인하기에 좋은 날을 받아 촬영을 시작했다. 그것이 2004년 10월12일이었다. 사실 내 아이들 가운데 두 아이가 12일에 태어났다. 그래서 더욱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모든 일은 때가 있는 법이다.

-<내 곁에 있어줘>에서 특히 아름다웠던 장면은 테레사가 부엌에서 일할 때와 수영장에서 노년기의 두명의 장애 여성이 수영하는 장면이었다.
=사실은 슬픈 장면이다. 그 수영장은 테레사에게 수영을 가르쳤던 다른 장애 여성 엘리자베스가 어린 시절 일본군에 고문당했던 바로 그 건물에 위치한 것이다. 그곳에 유일한 무료 수영장이 있기 때문에 간 것인데, 사실은 그런 상처가 있었던 것이다.

-수영장 장면이 유난히 감동적이었는데 그런 공간의 역사가 있어서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테레사의 삶은 그것을 모두 표현하지는 않지만, 비극적이면서도 훨씬 다채롭다. 나중에 자기와 뮤지컬을 같이하자고 하더라. (웃음) 테레사는 매우 유머러스한 사람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뒷모습이 풀로 잡힐 것을 알고서는 그렇게 잡으면 자신의 엉덩이가 크게 보일 거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그리고 왜 자신의 애인으로 주름이 쭈글쭈글한 할아버지를 캐스팅했느냐고 불평했다. (웃음)

-나이든 남자가 정성껏 요리하는 장면도 아름다웠다. 특히 좋았던 것이 그가 음식 재료를 사러 시장에 가서 고르는 장면부터 음식하는 것 그리고 아내에게 먹이는 일련의 과정이 다 나와 있는 것이다.
=그 배우는 매우 재미있는 사람이다. 그는 내게 <12명의 성난 사람들>(시드니 루멧, 1957)을 본 적 있느냐고 묻는 등 촬영기간 내내 스탭들에게 영화감독, 프로듀서에 대한 얘기를 그치지 않았다. 사실 어릴 적부터 그는 내겐 영화선생님이었다. 그래서 스탭들은 선생님 같은 그에게 오비완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쇼브러더스에 관한 영화 기획중

-<내 곁에 있어줘>에는 레즈비언 하위문화, 쇼핑, 아케이드, 휴대폰 메시지 등 동시대적 아이콘뿐만 아니라, 전통적 장소도 동시에 등장한다.
=그 장소와 아이콘들은 캐릭터의 특성을 고려해 연결한 것이다. 촬영감독에게 그러한 장소를 찍게 하는 데 꽤나 애를 먹었다. 사실 그는 샴푸광고 등 광고쪽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그러다보니 이번 영화처럼 템포도 느리고 대사도 거의 없는 영화를 준비한다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를 데려다놓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를 억지로 보게 했다. 그러다보니 결국 촬영감독이 손을 들더라. (웃음)

-상업광고를 제작하는 동시에 저예산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스스로 감독도 하는데, 그 사이에서 균형은 어떻게 유지하는가?
=싱가포르은 매우 작은 나라이다.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일은 안 하는지 엄격히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고,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다.

-다음 작품으로 어떤 얘기를 구상 중인가?
=모두가 모두를 아는 싱가포르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하는 건데, 쇼브러더스에 대한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 그들이 상하이에 있을 때는 슬랩스틱으로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는 뮤지컬 등.

-아, 그런가? 기대되고 흥분되는 프로젝트이다. 마침 스티븐 티오가 지금 쇼브러더스 연구차 싱가포르에 있다.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
=잘됐다. 쇼브러더스의 창업자 란란쇼의 손자 크리스 쇼의 도움을 받아 여러 정보를 얻고 있다. 프로젝트 규모가 커져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고 추진 중이다.

-또 다른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가?
=<움>(Womb)이라는 제목의 영화인데, 타이의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과 작업하고 있다. 타이 호러영화에는 아시아에 통하는 한 요소가 있다. 제목과 연관지어 유추할 수 있겠지만, 아이 귀신이다. 한국에서는 뭐라고 부르나? 동자? 동자라고 하는 그런 요소가 우리에게도 있고, 타이에는 프리키야스라고 불리는 귀신이 있다. 그것에 대한 영화이다. 또 다른 하나로 제작진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영화도 준비하고 있다. 타밀어로 제작할 것이다.

-타밀어를 아는가? 싱가포르의 무스타파 거리가 배경인가?
=아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언어로 할 것이다. 인도를 배경으로 눈이 내리는 장면을 기획하고 있다.

-눈이라고 해서 생각난 건데, 싱가포르의 그 더위에 어떻게 영화를 찍는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와, 땀을 얼마나 흘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2주 정도의 촬영으로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처럼 보인다.
= 그래서 다음 영화는 눈이 내리는 지역에서 로케이션 촬영할 생각이다. (웃음) 사실 하루 종일 그 더위에 촬영하는 것은 거의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작업에 들어가면 버티기 위해 석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말 나온 김에 다음 영화는 한국에서 찍어볼까? (웃음)

테레사 챙과는 이메일로 대화한다

-만화를 그리고, 영화를 감독하게 된 것은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크다고 말했는데 어머니에 대해서 말해달라.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하든 응원해주셨다. 내가 8살 때 슈퍼8mm 카메라를 주시며 뭐든 찍으라고 하셨고, 크레용을 사주시며 그림을 그려보라고 하신 분이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정말 예술적이면서도 나의 자율적 측면을 북돋워주신 분이다.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하다. 테레사 챙과의 작업은 어떠했는가?
=잘 알다시피 그녀는 광둥어만 이해하던 어린 시절 눈이 멀고, 귀 또한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촬영준비 기간의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다르다. 3개월 전쯤, 그녀와 같은 상황의 장애자라도 이메일을 보낼 수 있는 장비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설치해주었다. 이제는 이메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당신에 대한 글에서도 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추아벵후아는 당신 영화의 계급적 입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고, 나는 그와는 다른 견해로 당신의 영화를 긍정한다. 당신의 영화에 대한 다른 부정적 평가는 없었는가?
=프랑스 평론가들 또한 나의 영화에 부정적 평가를 내렸다. 왜 불쌍한 노동자를 죽이느냐고. 그러나 <내 곁에 있어줘>의 인물들은 운명을 맞이하고, 비극을 경험하고, 또 그를 통해 다른 모두를 구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을 영화로 만들어냈다.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고, 이번달 말에 싱가포르 미술관에서 해야 할 강연이 있다. 그래서 다시 싱가포르에 갈 것이다.
=오, 정말 고맙다. 싱가포르에 오게 되면 연락해라. 호커에서 만나 맥주 마시면서 얘기나 더 하자.

-그럼 못다 한 얘기는 만나서 계속하기로 하자.

진행 김소영·정리 전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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