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자유롭게 유영하는 무중력의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
2006-05-23
글 : 정재혁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촬영 당시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은 아사노 다다노부를 “로버트 드 니로처럼 작품에 따라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카멜레온 같은 배우”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그가 변태 성향의 캐릭터(<포커스> <러브 & 팝>)부터 고독한 젊은이의 초상(<밝은 미래>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까지 다양한 역할을 선보인 것은 맞지만, 그를 로버트 드 니로로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데뷔작인 <물장구 치는 금붕어>부터 개봉을 앞둔 <보이지 않는 물결>까지,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아사노 다다노부의 매력을 탐구해보았다.

<보이지 않는 물결>의 쿄지는 유령 같은 남자다. 보스의 아내와 애정행각을 벌이고, 살인을 저지르며, 푸껫으로 도망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보이지 않는 물결에 의해 떠밀리듯 진행된다. “사람들이 왜 살인을 저지르는지, 죄의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삶을 영위하는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쿄지는 살인을 둘러싼 ‘어떤 감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아사노 다다노부 특유의 무표정은 쿄지의 혼란스러운 내면과 교차하며, 배 안을 헤매는 그의 서툰 몸짓은 부유하는 쿄지의 존재를 정확하게 묘사한다.

살인을 소재로 하고, 스릴러 장르의 요소들을 이야기 속 곳곳에 배치했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느낌은 전혀 스릴러적이지 않다. 펜엑 감독은 장르적 긴장감이 아닌 그만의 영화적 리듬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사건은 논리적 연계 속에서 벌어지는 대신 일종의 연쇄반응으로 제시된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가 그랬던 것처럼 <보이지 않는 물결>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펜엑 감독이 잡아내는 특유의 분위기와 정서다. 그의 영화 속에서 사건은 발생하지 않고 발견된다.

쿄지 역을 맡은 아사노 다다노부는 펜엑 감독의 ‘영화적 수사’를 가능케 하는 배우 중 하나다. 조금 과장을 섞어 말한다면, 그는 펜엑 감독이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일종의 히든카드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켄지와 <보이지 않는 물결>의 쿄지는 아사노 다다노부의 무표정에 기대는 바가 크다. 펜엑 감독이 의도하는 ‘영화적 무중력 상태’는 아사노의 무표정 속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친밀감과 거리감 사이

<밝은 미래>
<카페 뤼미에르>

1973년 미국계 혼혈인 어머니와 화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사노 다다노부는 1988년 <TBS> 드라마 <3학년 8반 긴파치 선생님3>로 데뷔한다. 우리나라의 <호랑이 선생님>과 비슷한 학원물이다. 이후 그는 여러 드라마에 엑스트라로 출연했으며, 1990년 수영을 하는 소년의 짝사랑을 그린 <물장구 치는 금붕어>로 영화에 데뷔한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연기자의 꿈을 가졌던 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록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첫 주연을 맡았던 <물장구 치는 금붕어>는 이후 그를 연기자의 길로 인도한다. 아사노는 1991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93년 이와이 순지 감독의 드라마 <프라이드 드래곤 피쉬>에 출연한다. 이와이 감독은 아사노 다다노부에게서 상처받은 젊은이의 모습을 찾아낸다. <물장구 치는 금붕어>와 <피크닉>이 대표적인 예다. 미소년의 외모를 지닌 킬러 나츠오로 분한 <물장구 치는 금붕어>에서 그는 자신을 검거하려는 탐정 푸우와 사랑에 빠지는 갈등을 경험한다. 자신의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랑의 슬픔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쿨한 모습의 루저였다. 그리고 1993년 <피크닉>, 자신을 괴롭히던 선생님을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소년 쓰무지를 연기한 아사노는 이 영화에서 자신이 가진 매력을 십분 발휘한다. 특히 병원 내부와 외부를 갈라놓는 벽 위를 거니는 장면은 정상과 비정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의 표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처를 지닌 젊은이의 이미지는 계속 이어진다. 같은 해에 찍은 아오야마 신지 감독의 <헬프리스>에서 아사노는 내면의 상처를 살인이라는 폭력으로 표출한다. 그가 연기한 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살인을 저지르는 소년이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표면적인 이유가 제시되지만, 여기서 그의 살인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즉, 영화 속에서 그가 지닌 상처들은 항상 설명되기를 거부한다.

마른 몸매의 미소년 아사노 다다노부는 모성애를 자극할 만큼 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언제든 엄마의 자궁을 벗어나 홀로 담 위을 거닐 준비가 되어 있다. 상처를 이유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아픔 속을 혼자서 유영한다. 아사노의 연기는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셈이다.

무표정 속에 그가 있다

아사노의 무표정은 그가 연기하는 수많은 캐릭터들의 변주를 가능하게 한다. 피어싱을 한 채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킬러 카키하라(<이치 더 킬러>)와 고서점을 운영하는 하지메(<카페 뤼미에르>)는 어떠한 공통점도 없어 보이는 상반된 역할들이지만, 아사노 다다노부는 이들을 일정한 맥락 안에서 연결해낸다. 특히 그는 일반적 남성성을 연기할 때에도 자신만의 체취를 뿜어내다. <상어가죽 남자와 복숭아 소녀>에서 그가 연기한 야쿠자 사메하다는 돈과 여자를 위해 도망을 일삼는 캐릭터다. 이는 그가 이전까지 보여준 어둠과 상처의 이미지와는 차별되는 역할이다. 마초 남성의 섹시함과 투박함을 동시에 요구하는 캐릭터였지만, 아사노가 연기했던 다른 역할들에 비해 좀더 대중적인 연기의 톤을 요구했다. <고하토>도 마찬가지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사무라이 세계에 존재하는 동성애를 다룬 작품이다. 신선조의 새로운 사무라이로 선발된 타시로 역을 맡은 아사노 다다노부는 사무라이라는 남성성의 세계에서 자신만의 모습을 찾아낸다. 스스로 자신을 남성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만 아사노는 자신의 혼성적(중성이 아니다!)인 매력을 이 작품 속에서 잘 드러낸다. 그가 연기하는 남성성은 일반적 의미의 그것에서 벗어나 있다. <고하토>의 타시로는 카노에게 애정을 고백하지만, 이는 신선조의 사무라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질투와 시기 속에서 묘한 긴장을 자아낸다. 즉 그의 연기는 ‘아사노 다다노부’라고밖에 칭할 수 없는 그 어떤 자장 속에서 하나의 흐름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흐름은 무표정으로 대표되는 그의 이미지에서 기인한다.

<보이지 않는 물결>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

무표정, 매우 무책임한 표현 같지만 이는 아사노 다다노부 연기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다. 그래서 그가 연기하는 역할 속에는 항상 일정 정도의 친밀감과 거리감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는 종종 신비감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꿈의 은하> <고조>에서의 역할들이 대표적이다. 아사노 다다노부는 <꿈의 은하>에서 버스 운전사 신고를 연기했다. 신고는 버스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 버스의 여차장들은 정체가 불분명한 신고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아사노 다다노부는 대사가 별로 없는 이 영화에서 무언의 연기가 도달할 수 있는 감정의 최고치를 보여준다. 그는 아무 연기도 하지 않고 있는 듯한 표정으로 살인사건을 둘러싼 긴장감을 세세하게 묘사한다. 이는 곧 소문과 의심으로 둘러싸인 신고라는 캐릭터를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일본의 역사적인 인물 샤나오를 그린 <고조>에서 아사노 다다노부는 권력을 둘러싼 싸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주인공 샤나오를 연기했다. 본인은 “감정보다는 멋이 들어간 연기”라고 표현하지만, 아사노는 시대극에서 재현되는 인물의 현실성 대신, 영화적 텍스트에서 부여될 수 있는 종류의 존재감을 캐릭터 속에 불어넣었다.

그래서 이를 신비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2% 부족한 감이 있다. 좀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신비감, 존재론적인 맥락에서의 신비감. 아사노의 연기를 설명하기에 표현은 항상 빈곤을 느낀다. <환상의 빛>에서의 그의 존재감이 그렇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에서 그는 초반부에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다. 자살을 한 건지, 어디론가 떠난 건지 영화는 그에 대해 일말의 설명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름도 없는 이 남자는 이후 영화 전체에 깊숙이 존재한다. 그의 아내와 가족은 그의 행방을 걱정하고 이는 곧 영화 전반에 흐르는 불안을 지배한다.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불안, 그 영향의 파장이 <환상의 빛>에는 무엇보다 진하게 담겨 있다.

영화는 일종의 무중력 공간

아사노 다다노부의 무표정이 응시하는 공간은 무중력 상태의 어느 곳인 듯하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켄지는 갑갑할 정도로 모든 것이 정돈되어야 하고, 여름에도 긴팔 셔츠를 입는 남자다. 그는 타이어가 서툴지만 타이에 머무르고 싶어하고, 드러내지는 않지만 사랑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상상인지 현실인지가 불분명한 마지막 장면은 켄지와 여주인공 노이의 감정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면. 이들의 관계는 마치 미확인된 물체가 우주 공간을 유영하듯 찌는 듯한 타이의 공간을 부유한다. 이는 많은 부분 아사노 다다노부가 감지해내는 거리감과 관련이 있다. 아사노의 연기는 대사를 하기 전의 여백과 이후의 잔영에 방점이 있다. 그는 그 사이의 공간을 자신의 연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며 캐릭터로부터 일정 정도의 거리감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그는 어떤 역할을 연기해도 그만의 톤을 유지할 수 있다. <라스트 라이프 라스트 러브>의 그도 이 공간 속의 감정을 내부에서, 그리고 외부에서 효과적으로 발산한다. 켄지처럼 소심한 남자의 소심한 사랑이 이처럼 울림을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사노 다다노부가 보여준 거리감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물결>에서 아사노 다다노부는 선실 내부를 떠다니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는 이 영화에서 우연히 살인을 저지른 남자의 내면을 매우 정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감정은 아사노 다다노부라는 모체에서 휘발되는 일종의 기류처럼 감지된다.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말처럼 그는 마치 음악가처럼 몸에 자연스러운 리듬을 부여하고 영화라는 공간 안을 떠다니는 기체(機體) 같다.

<피크닉>
<고하토>

그에게 영화는 일종의 무중력 공간이다. 감정의 모든 촉수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는 그 공간에서 자유로운 유영을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어느 감독과 작업을 해도 자신만의 캐릭터를 해치지 않고 새로움을 창출해낸다. 이시이 소고, 기타노 다케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등은 결코 한 카테고리 안에 묶일 수 없을 만큼 다른 성향의 감독들이지만 아사노 다다노부는 이들에게서 하나의 공통어를 찾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흡수한다. 이는 곧 아사노 다다노부의 연기가 품고 있는 자력(磁力)이다. 가끔은 밀어내고, 가끔은 서로 당기면서 그는 한 배우가 연기할 수 있는 스펙트럼을 최대한의 범위까지 확장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새로운 배우로 남아 있다. 미지의 영역을 갖고, 정해지지 않은 어딘가를 바라보는 물체가 우주 어딘가에서 발견된다면, 이는 아마도 아사노 다다노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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