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폭력의 제왕’이 바라본 현대, 샘 페킨파 특별전
2006-05-24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샘 페킨파의 대표적 현대물 5편 상영하는 특별전

샘 페킨파 특별전이 5월30일(화)부터 6월5일(월)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이번 특별전에는 샘 페킨파의 대표적인 현대물들이 상영된다. <어둠의 표적>(1971), <주니어 보너>(1972), <겟어웨이>(1972), <가르시아>(1974), <철십자 훈장>(1977) 등 총 5편이다. ‘폭력의 제왕’ 혹은 ‘블러디 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미국 영화사의 이단적인 길을 걸었던, 그래서 90년대 이후에 와서야 더 정당한 평가를 받고 있는 샘 페킨파는 60년대에 <대평원>(1962), <와일드 번치>(1969) 등의 수정주의 서부극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역시, 샘 페킨파는 코믹한 변칙 서부극 <케이블 호그의 노래>(1970)로 70년대의 서막을 열었지만, 이후에 집중한 것은 서부극이 아니라 현대 범죄물 혹은 초현실적 성격이 짙게 밴 심리극이었다. 서부극에서 볼 수 있었던 피와 땀의 시적 여흥이 현대의 공간으로 무대를 옮긴 것이다.

<어둠의 표적>은 샘 페킨파가 만든 첫 번째 현대물이다. 학자인 데이비드는 조용하게 연구를 하기 위해 아내 에이미의 영국 고향집을 찾아간다. 처음에는 상냥한 것처럼 보이던 동네 사람들은 그러나 점점 더 불친절해지고, 아름답고 관능적인 아내는 시정잡배들의 음흉한 탐욕의 대상이 되어간다. 심지어 그들의 시선을 즐기는 듯한 아내 역시 데이비드의 신경을 긁어대기는 마찬가지다. 영화는 평온을 찾아 도착한 곳에서 도리어 가늠할 수 없는 적들과 마주친 나약한 이방인의 정신분열증을 보여준다. 주인공 데이비드는 더스틴 호프먼이 맡고 있다. 한편, 이 시기에 만들어진 범죄영화 <겟어웨이>는 샘 페킨파의 영화 중 가장 큰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무장 강도 혐의로 감옥에 갇혀 있는 맥코이는 가석방에 대한 희망이 점점 더 멀어지자 아내 캐롤을 정치인 잭에게 보내 가석방을 부탁한다. 그의 입김으로 풀려나온 맥코이는 어쩔 수 없이 잭의 요구에 따라 다시 은행강도 일에 끼어들게 된다. 그러나 경찰과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고, 동료 중 한명은 죽고, 또 한명은 배신한다. 이제 맥코이 부부는 어느 편에도 기대기 힘든 궁지에 몰려 처절한 싸움판으로 몰리는 신세가 된다. 주인공 맥코이 부부의 캐릭터는 마치 <와일드 번치>의 무정부주의적이고 불명료한 정체성의 총잡이들을 옮겨놓은 듯하다. <그리프터스> 등으로 유명한 짐 톰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1994년에는 로저 도널드슨이 연출하고 알렉 볼드윈과 킴 베이싱어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어둠의 표적>
<철십자 훈장>

<어둠의 표적>과 <겟어웨이>가 샘 페킨파식 서부극의 변형처럼 보인다면, <가르시아>와 <철십자 훈장>은 몽환적이고 허무주의적인 감성이 더욱 기괴하게 반영된다. <가르시아>는 멕시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저예산영화이자, 페킨파의 오랜 동료인 배우 오렌 오티스가 주인공 베니 역을 맡은 영화다. 멕시코 갱단 두목은 자신의 어린 딸을 임신시키고 도망간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목에 비싼 현상금을 건다. 갱단의 부하들과 함께 가르시아의 목을 찾아나선 주인공 베니는 가르시아가 이미 죽어 땅속에 묻힌 뒤라는 걸 알게 된다. 일은 꼬이기 시작하고, 죽은 가르시아의 목을 놓고 사투가 벌어진다. <가르시아>는 폭력 그 자체의 표현력보다 그것을 둘러싼 블랙유머와 허무주의적인 색채에 집중할 때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된다. 한편, <철십자 훈장>은 1943년 레닌그라드에 들어선 독일군 소대를 비춘다. 개봉 당시 비평과 흥행 양쪽에서 모두 실패했지만, 전쟁의 광기로 점철되어 있는 한 인간을 과잉의 극단으로 표현해낸 이 영화를 두고 오슨 웰스는 일상의 사병들을 주인공으로 한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한 최고의 반전(anti-war)영화라고 논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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