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상상플러스> MC·<맨발의 기봉이>의 여창 역 맡은 탁재훈
2006-05-27
글 : 김수경
사진 : 오계옥

<상상플러스>의 ‘유행어 제조기’ 탁사마를 만났다. 도산공원 근처 카페 한켠에 앉은 탁재훈의 얼굴은 주말마다 축구를 하는 탓에 검게 그을어 있었다. 출연작 <가문의 위기-가문의 영광2>는 전국 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상상플러스>의 시청률 고공행진도 여전하다. 2005년 말 탁재훈은 KBS 연예대상에서 쇼·오락 부문 MC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예능의 달인’으로 인정받았다. 충무로에서도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를 통해 ‘색깔있는 흥행 조연’으로 검증받은 그는 <강철선생>과 <내 생애 최악의 사내>에 캐스팅됐고, 처음 주연으로 관객에게 다가선다. 유능한 엔터테이너로 살아남은 비결과 영화에 대한 애정어린 고백을 1968년생 늦깎이 배우 탁재훈에게 들었다.

-<가문의 위기…>를 마쳤을 때 영화 연기에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그 심경은 변하지 않았나.
=다 털어버리고 배우만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적절한 시기다. 그것 때문에 정말 많이 고민했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방송활동은 올해 10월쯤에는 마무리할 생각이다. 3년 넘게 방송활동을 했고,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기에 갑자기 정리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다. 급작스럽게 빨리 변하는 모습은 무엇이든 좋지 않으니까. 나는 이제 영화배우 할 거니까 웃기기 싫고 정극만 하겠다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다. 완급 조절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여창 역을 맡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가문의 위기…> 홍보를 위해 버스로 무대인사 다니는 중에 결정됐다. 기봉이가 현준이라면 여창이는 내가 하면 좋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발상이었다. 현준이도 권했고. 실화를 찍은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여창이는 기봉이를 시기하는 악역이지만 비열하기보다는 애정이 엿보인다. 이제 출발하는 배우인 나로서는 역할 하나하나가 큰 경험이고 연습이다. 조금씩 변화를 가져간다는 면에서 시골 청년 여창은 매력적이었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여창의 코믹 연기에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진 기존의 유머나 웃음의 코드를 끌여당겨서 관객의 호응을 얻은 지점이 있다.
=철저히 관객을 향한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그런 코드로 각인되는 게 싫다는 생각도 있지만 영화의 전체 흐름에서 그런 서비스를 하는 게 내 몫이기도 하다. 그런 것이 적재적소에 들어가지 않으면 영화도 어색해지고 나 역시 다음 영화에 출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발생할 것이다. 뒤집어보면 그런 유머가 TV에서 미리 본 것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웃지 않고 이해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남발하지 않는다면 장점이 될 수 있다.

-지난 연말에 치러진 연예대상에서 MC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소감이 궁금하다.
=원래 상복이 별로 없어서 상에는 관심이 없다. 상이란 게 받을 때만 좋지, 금방 잊혀진다. 어떤 프로그램을 임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편집도 잘됐으면 좋겠다 정도가 내가 바라는 전부다. 원래 내 신조가 ‘아니면 말고’라서 그렇다. 그래서 방송도 부담없이 한다. 방송이라는 게 편하게 못 놀면 금방 딱딱해지고 재미없어진다.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극복이 안 된다. 방송용으로 착하게만 방송하면 방송에 내보낼 만한 재밌는 분량은 하나도 없을 거다. 그래서 녹화할 때는 비방송용이 3분의 2 섞여야 한다. 그래야 흐름이 끊겼다가도 다시 가는 거다. 매번 녹화를 할 때마다 가식적인 대화, 사회적 칭찬만으로 어떻게 그 분량을 다 채우겠나. 편집없이 녹화한 걸 내보냈다면 나는 방송사에서 제일 먼저 매장됐을 거다. (웃음) <상상플러스>를 다섯 시간 동안 앉아서 녹화하면 분위기가 처지는 순간이 많다. 끌어올려서 또 가고, 또 가고 해야 한다. 우리나라 말을 가르치는 아이템만으로는 재밌을 리가 없다. 농담도 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게 생리니까.

-<상상플러스>는 최고의 시청률을 올리고 있지만, 최근에는 논란도 많다.
=솔직히 요즘 <상상플러스>는 개인적으로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 시청률 7∼8% 나오던 초기에는 원래 순수한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그저 스타들을 불러내서 웃고 즐기자는 취지였다. 어쩌다보니 교육방송처럼 되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 PD에게 “교육방송 PD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러면 시청자들도 외면한다. 시청률이 30% 오가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니까, 출연자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난리가 난다. 휘재의 손가락 사건이 생기고, 정환이 출연 여부로 시끄러워지고 하니까 PD나 제작진은 갈수록 움츠러든다. ‘우리는 나쁜 방송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러다보니 진행자, 게스트도 모두 힘들어한다. <상상플러스>를 본 뒤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청자는 거의 없다. 시청률이 올라간 것은 결국 유행어, 꼭짓점 댄스 같은 요소에 의해서였다.

-가수에서 MC를 중심으로 한 예능인, 배우까지 옮아왔다. 당신이 생각하는 엔터테이너가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면.
=나처럼 여러 장르를 거친 사람은 잘못하면 한 분야에서도 인정받지 못할 위험이 있다. 관객이 그의 영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영화배우는 TV 활동을 가급적 안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는 이걸 풀기가 어렵다. 음악, 영화, 방송 모두 각각의 장르적 매력이 있지만 엔터테이너 입장에서는 10대부터 40대를 공감시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느낌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 그걸 잃는다면 그때부터 내리막길이다. 영화만 놓고 보면 내가 아직 겁이 없는 것 같다. 영화에서는 정식으로 망해보질 않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지. (웃음) 음반도 올해 말에 다시 내고, 드라마도 11월쯤 하려고 논의 중이다.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가문의 위기…> <맨발의 기봉이>가 흥행한 사실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부담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런 점에 부담 갖기 시작하면 주저앉는 건 순식간이다. 해오던 대로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올해만 정말 열심히 하고 내년에는 쉴 거다. <가문의 영광> 3편도 시나리오가 잘 나와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코미디영화니까 맘대로 신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나라고 실패를 겪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실패했을 때 고민하면 된다. 만약 하는 것마다 다 잘된다면 내가 무슨 노력을 하겠는가. 올해 하는 영화들을 잘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한번 쓰러지려고 한다. 너무 안 쓰러져도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긴다. (웃음) 올해는 정말로 활동이 많기 때문에 지금 여유있는 이 시간이 나와 가족에게 매우 소중하다.

-신작 <강철선생>에서 단독 주연을 맡았다. 어떤 작품인가.
=어렸을 때부터 낯을 가리는 소심하고 내성적인 인물을 다룬 코미디물이다. 그런 아이가 자라서 남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게 싫어서 선생님이 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여전히 무시당하는 선생님이다. 그러다가 체육선생이 부임하는데 학창 시절 주인공을 괴롭히던 못된 친구다. 그 상황에서 주인공은 싸움을 배우려고 인터넷 싸움 동호회에 가입해서 정모에 나간다. 첫날 정모에 나간 주인공은 한방에 기절하고, 두 번째 대결에서는 초등학생이랑 맞붙고 마침 나타난 경찰 때문에 망신살이 뻗친다. 휴먼드라마와 코미디가 결합된 영화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라는 로맨틱코미디에도 주연으로 출연한다.
=염정아씨와 함께 출연한다. 대학 동창인 남녀를 주인공으로 한 로맨틱코미디물이다. 이성을 소개해주기도 하는 유연한 관계의 친구인 두 사람이 술 먹다가 취해서 자게 된다. 그 다음날에는 사과하고 기억이 안 난다면서 없던 일로 하자고 약속하며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런 일이 벌어진다. 결국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는데 서로 직장을 다니며 바람을 피운다. 내가 맡은 배역은 잡지사에 다니는 남자다.

-두 영화 모두 신인감독이 연출하나.
=유명한 감독들은 나를 안 쓰니까. 그래서 일단 신인감독들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웃음) <강철선생>은 원톱이라 흥행 아니면 ‘독박’이다. 누구 때문에 안 됐다는 하소연도 할 수 없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염정아씨가 워낙 연기를 잘하니까 큰 문제는 없다. 염정아씨도 <여선생 vs 여제자>를 통해서 코믹코드를 경험했기 때문에 호흡만 잘 맞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 예상한다. <내 생애 최악의 남자>는 6월 말부터 촬영을 시작하고 <강철선생>은 8, 9월은 돼야 할 것 같다.

-오랜 경험자로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장수하는 법을 논한다면.
=영화에 비하면 방송은 정말 냉정하고, 소모적인 면도 많다. 방송대본 그대로만 하면 제작진도 출연자도 힘들기만 하고 반응은 오지 않는다. 출연자는 일단 놀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부담을 느끼면 더 어려워진다. 즐겁게 놀면서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어떤 질책을 받더라도 그것 또한 방송의 생리다. 어차피 관심을 받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만큼 질책도 많아지니까 충분히 감수해야 한다. 소신대로 해나가면서 프로그램이 끝날 때는 끝나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현장에서는 어떻게 연기를 준비하나.
=연기 잘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그분들을 목표로 세우면 아무래도 흉내내고 따라하게 된다. 그러면 내 스타일이 없어질 위험성이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연기를 하고 싶다. 정말 연기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평소에 하는 대로 하는 것일까라고 관객이 느낄 만한 연기를 하고 싶다. 현장에 나갈 때 준비를 많이 하는 타입은 아니다. 준비를 했을 때의 장점도 있지만 현장이라는 게 워낙 많이 변하는 거니까. 현장 분위기가 제일 중요하다. “안녕하세요. 자, 지금부터 연기합시다” 이럴 수는 없으니까. (웃음)

-<맨발의 기봉이>를 찍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방송 프로그램 두곳에 출연하고 <보고 싶은 얼굴>도 같이 찍었기 때문에 부산, 남해, 서울을 돌아야 하는 스케줄이 제일 힘들었다. 목요일날 녹화하고 잠깐 집에서 자고, 금요일날 녹화하고 찍자마자 마지막 비행기를 타거나 차로 달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고 싶은 얼굴>은 촬영하면서 ‘개새끼’(김해곤 감독 흉내를 내며)라는 소리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것만 기억난다. 안 그래도 오늘 양수리에 <보고 싶은 얼굴>을 더빙하러 간다. 해곤이 형은 <가문의 위기…>에서는 같이 연기하다가 거기서는 감독님이었던 점도 정신이 없었다.

-따뜻하고 재밌고 웃기는 역할을 주로 했다. 다른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있을 것 같다.
=배우는 멋있는 것만, 착한 것만 하면 오래 못 간다. 빨리 그런 영역을 깨고 이것저것 해야 오래 간다. 축구로 치면 공수 전환이 빨라야 한다. 계속 공격만 하면 독일 못 간다. 공수 전환이 되고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야 엔트리에 뽑힌다. 하지만 심각한 누아르에서 내가 악역을 한다면 일단 불리한 점이 있다. 내가 첫 장면에 악역으로 나타나 클로즈업되면 관객은 당연히 웃을 것이다. 그래서 그걸 예상하고 내가 대사를 만들려고 한다. 화면 정면을 바라보며 ‘웃지 마!’ 이럴 생각이다. (웃음) 처음으로 스크린 속 배우와 관객이 대화하는 사례를 만들면 좀 낫지 않을까. 변신은 해야 하지만 코미디 코드를 포기할 이유는 없다. 항상 웃겨서 뜬 사람들이 안 웃기고 정극 연기, 멋있는 것만 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히 여자 연예인들이 더하고 그래서 자주 무너진다. 살 빼도 일단은 웃겨야 한다. 전보다 더 웃겨야지. 조사하면 과거는 다 나오니까. (웃음) 변화하면서도 자기 코드는 정확히 가져갈 필요가 있다.

-영화라는 작업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나.
=영화는 인내심이 필요해서 좋다. 기다리는 일은 제일 중요하고 정신적으로도 좋아한다. 본인은 맘이 급할 수 있지만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많은 걸 배운다. 최근 4년 만에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3주 됐는데 사람들이 왜 피우냐고 물으면 농담이지만 이렇게 답한다. 작품을 끝낸 공허함, 작가와의 갈등, 개런티 협상 때문이라고. (웃음) 그래서 작품 없으면 다시 끊으려 한다.

-조연에서 주연이 되면서 개런티가 많이 올랐을 것 같다.
=많이 올랐다. 현재로선 A급 배우의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이상하게 부르는 대로 다 주더라. (웃음) 나는 그냥 농담으로 그랬는데 쉽게 오케이해서 놀랐다. 나는 농담으로 말하는데 상대는 진지하게 듣나보다. 확실히 요즘 배우들이 모자라긴 모자라나봐. (웃음) 하지만 촬영하면서 중간에 내가 제대로 못하면 일부라도 돌려줄 생각이다. 그래서 쓰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 사람 사는 일이라는 게 어쨌든 좋게 끝나는 게 중요하니까. 다 못 찍어서 일부를 돌려줘도 나는 괜찮다. 예전에 돈 없을 때도 먹고 싶은 고기 먹고 다녔다. 꽃등심. 아직 고기 사줄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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