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개의 관계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 자주 들어맞는 공식이 있다. 일단 인간이 개를 잘 보살핀다. 그러다 그 인간이 죽거나 멀리 떠난다. 그러면 개는 영특하게 그를 찾아 나서거나, 충직하게 그를 기다린다. 8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우리개 이야기〉에도 어김없이 영특하고 충직한 개가 등장한다. 7명의 감독이 펼쳐놓는 11개의 에피소드 가운데 주된 에피소드이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에 나오는 ‘포치’다. 시골에 내려와 요양중인 소년 야마다는 공터에서 버려진 개를 만난다. 야마다는 굶주린 개에게 단팥빵을 나눠주고, 포치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러다 병세가 악화된 야마다가 도쿄에 있는 병원으로 실려가게 되고, 포치는 그를 찾아 먼 길을 떠난다. 그리고 야마다를 찾아가는 도중에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만남과 이별, 사랑을 깨닫게 하는 존재가 된다.
가슴 한편이 짠하면서도 훈훈해지는 이야기다. 특히, 힘겹게 병원에 도착한 포치가 다시 여러날을 기다린 끝에 꿈에 그리던 야마다를 만나고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울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또 이런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절로, ‘그래, 역시 개야!’라며 인간보다 더 인간이 만든 ‘신의성실의 원칙’에 충실한 개의 천성에 탄복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 두마리를 금이야 옥이야, 물고 빨며 키우고 있는 ‘개들의 반려자’로서 단언컨대, 이건 판타지다. 남녀 관계를 그린 영화에서 한 사람만 사랑하고 죽도록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하는 게 판타지인 것처럼, 인간-개 영화에 등장하는 ‘죽을 때까지 한 사람만 섬기는 개의 충성심’도 판타지다. 대부분 남녀들의 관계맺음처럼 개들도 인간을 따르되, 상당히 이기적이며, 때로는 인간보다 더 매정하기도 하다. ‘어야’(산책)나 ‘냠냠’(간식)을 조를 때는 내 얼굴에 침을 떡칠해가며 열렬히 키스를 퍼붓지만, 평상시에는 내가 뽀뽀만 하려고 해도 싸늘하게 홱 고개를 돌려버리는 우리 집 개들. 인간들의 만남을 이어주기는커녕 집에 누구든 손님만 찾아오면 공을 물고 와 놀아달라며 집요하게 만남을 방해하는 우리 집 개들. 우리 집 개들은 물론, 내가 아는 현실 속 다른 집 어느 개들도 ‘포치’와 이렇게나 거리가 멀다.
〈우리개 이야기〉에서 더 울림있게 다가오는 건, 그래서 현실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개’ 이야기보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실제로 개와 함께 사는 길을 택한 많은 사람들이 개를 사랑하는 이유는, 개가 목숨 바쳐 나를 구해주거나 나에게만 충성할 거라는 기대 때문이 아니다. 다른 많은 동물들이 그렇듯 개도 오랜 시간 함께하면, 귀찮고 성가신 일이 많기는 해도 그저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 큰 기쁨을 줄 때가 많다. 또 그렇기 때문에 ‘타자와의 소통’이 그 어려움보다 훨씬 큰 보람과 희망을 안겨준다는 깨달음도 준다. 〈우리개 이야기〉를 통해 귀여운 개들을 보며 웃고 싶을 수도, 충직한 개를 보며 감동받고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로 개를 좋아하고 이해하고 싶다면, ‘개’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춰 이 영화를 관람하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