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11년만에 파격 배역 맡은 이문식
2006-06-09
글 : 허윤희 (한겨레 기자)
사진 : 정용일 (<한겨레21> 선임기자)
“이 얼굴로 멜로 주연 맡다니 괴상한 시대죠 크하하”

2006년 개봉 영화 〈공필두〉 〈구타 유발자들〉 〈플라이 대디〉의 주연 배우인 이문식(39·사진)이 에스비에스 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 주연까지 맡아 데뷔 11년 만에 전성기를 맞았다. 그가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지난달 29일은 마침 〈101번째 프러포즈〉를 처음 방송하는 날이었다. 10년 동안 감초 같은 조연이었던 그가 처음 멜로의 주인공을 맡은 기념비적인 날이기도 하다.

그는 연기력 탄탄한 조연이 빛을 받아 주연이 되는 시대에 꽃미남이 아니라도 주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당사자다. “시대가 괴상망측하죠. 어쨌거나 그런 조연들이 주연을 맡으니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다양해지잖아요. 40~50대 주연은 거의 없었는데 늙은 주연도 나오고, 옆집 아저씨같이 생긴 저 같은 사람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다음 생에서는 아예 유부남으로 태어나고 싶은” 한 많은 노총각 박달재가 그의 배역이다. 평탄한 멜로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있지만, 더 이상 촬영장을 들썩거리도록 웃기는 이문식은 아니라고 했다. “애드리브(즉흥대사)를 안 해요. 주연이 극을 정해진 대로 끌고 가야지 순간의 재미에 흔들리면 다른 사람들의 역이 작아져요. 남 앞에서 떠들고 웃기면서 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는데 꾹 참습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극 〈사천의 착한 여자〉로 정식 무대에 선 이후에도 그는 “연봉 200만~300만원을 받는” 가난한 연극배우였다. 그는 500원이 모자라 2천원짜리 라면을 먹지 못하고 신문 배달, 물탱크 청소 등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단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1995년 〈돈을 갖고 튀어라〉에서 단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했지만 무명 배우의 길은 녹록지 않았다.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대기 안 하고 있다’고 새파랗게 어린 스태프에게 혼나고, 형편이 어려우니 출연료를 깎자는 말을 듣기도 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 밀항을 꿈꾸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했다.

배우치고는 한참 고단했던 인생 역정은 그만의 자산이다. 깡패(〈초록물고기〉), 택시 강도(〈간첩 리철진〉), 해병대 출신 대봉 스님(〈달마야 놀자〉), 양아치(〈공공의 적〉), 농사꾼 거시기(〈황산벌〉), 비리 형사 충수(〈마파도〉) 등 잘난 것 없고 일이 안 풀리는 ‘억울한’ 인생을 실감나게 표현했다. 언제나 폭소탄을 여지없이 터뜨렸다. 게다가 그와 같이 했던 감독들이 말했듯이 그 웃음에는 페이소스가 강하다. “웃겨보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맡은 배역을 두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정당하게 표현하려고 했을 뿐이죠.”그는 악랄한 역을 맡더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는 연기를 펼치고 싶다고 한다. “아직 산 중턱밖에 오지 않았는데 작품을 고르는 처지가 되면서 타성에 젖는 자신을 발견할 때 가장 두렵습니다. 전에는 먹는 것도 연극을 위해, 자는 것도 연극을 위해 했는데. 적당히 연기하려고 배우한 건 아니니까 비겁해지지 말자고 되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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