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 유하 감독이 15일 개봉하는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선택한 ‘조폭’(조직폭력배)은 조인성(26)이었다. 하지만 ‘청춘스타’ 조인성을 ‘연기자’로 끌어올린 텔레비전 드라마들에서 조인성은, 심지어 조폭이었을 때조차(〈피아노〉) 조폭 같지 않았다. 그는 독하고 체구가 딱 벌어지기보다는 여리고 휘청거리는, 그래서 안쓰러운 느낌이 컸다. 지난 5일 언론시사를 통해 조폭 두목 병두로 분한 조인성의 모습이 공개됐다. 조인성은 순수하고, 그렇기 때문에 비열해지기도, 파멸하기도 쉬웠던 조폭 연기를 멋들어지게 소화하며, 제 깜냥의 한계를 한 차원 끌어올린 것 같았다.
조인성이 생각하는 병두의 삶은 ‘조폭의 삶’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모습’이었다. “병두가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까지 죽여가며 먹고 살려는 이유에 공감이 가잖아요. 아픈 엄마, 속 썩이는 동생, 공부 잘하는 동생,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 …. 그건 꼭 조폭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비열한 거리에서 비열하게 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모성본능 자극? 왜 그럴까요
조폭 병두에게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찾은 그는 “딱 조폭 이미지인 배우가 병두 역할을 했다면, 다른 조폭 영화와 차별성이 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하 감독님이 ‘유약한 이미지’라고 표현한, 저 같은 배우가 출연했기 때문에 단순한 조폭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조인성은 유하 감독과 그의 많은 팬들이 그에게서 발견한 ‘유약함’, 혹은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특유의 모습’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는 알지 못한다는 반응이었다. 그는 “연기는 제 안에서 출발하는 거니까, 사람들이 제 연기에서 그런 걸 본다면 저한테 그런 면이 있는 거겠죠. 하지만 모성을 자극하는 법 같은 건 정말 몰라요. 그런 걸 연습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라며 웃었지만, 그 웃음 역시 모성을 자극하는 듯했다.
일상적 장면의 힘 배웠어요
그는 시나리오 선택에서부터 촬영과 후반작업까지 꼬박 1년을 쏟아부은 〈비열한 거리〉를 끝낸 뒤 “‘생활 대사’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액션 장면에서조차 주먹질을 보여주는 것보다, 병두라는 인간의 처절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신경을 썼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잔뜩 실어 열연을 펼치면 관객들도 힘든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일상적인 장면 하나하나가 영화에 얼마나 큰 힘을 불어넣는지도 배웠고요.”
덧붙여 영화출연 뒤 처음으로 쏟아진 ‘호평’으로 한껏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다. “〈남남북녀〉 때는 연기 그만두라는 얘기까지 들었지만, 그건 너무 성급한 결론 아닌가요. 연기라는 게 삶을 표현하는 건데, 태어날 때부터 모든 삶을 꿰뚫어 볼 수 없듯,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분들도 있잖아요. 그래서 전 나이 드는 게 기대돼요. 서른 이후, 또 그 이후의 제 연기를 지켜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