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의 네 번째 영화 <비열한 거리>를 보고 난 다음 나는 즉각적으로 이 글을 떠올렸다. “키치중독자로서의 시인이 키치반성자로서의 시인으로 바뀌면서 체득한 중요한 인식 중 하나는, 아니 가장 중요한 인식은 키치중독자의 세계에서는 ‘알아서 기는’ 것이 제일이라는 인식이며, 더 나아가 ‘그러나 알아서 기는 법을 익히다보면, 왜 알아서 일어나진 못할까, 왜 다들 끝내 지네처럼 기어 다니는 것일까’(유하 시집 <무림일기> 중 ‘알아서 기는 법’)라는 처참한 인식이다. 키치적 세계인식은 알아서 기는 세계인식이며, 그 인식은 기는 사람을 끝내 일으켜 세우지 못하고, 지네처럼 살게 만든다. 그에게 하늘이나 땅 밑(위나 아래)은 없다. 그에게 있는 것은 옆뿐이다. 같이 기어 다니는 다른 지네들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기기만 하는 지네가 바로 키치에 중독된 우리의 모습이다. 그것이 시인의 모습이고, 그 시인에 대해 살고 있는 내 모습이다. 그 지네는 자꾸 증폭되어, 복제기술 시대 초기를 산 한 예술가의 벌레로 증폭된다. 결국은 기어 다니지 못하고, 좁은 공간 속에 폐쇄되어 엎드려 있어야 할 지네, 벌레…. 그 벌레가 평면 위를 기어 다니며 즐기는 예술이 키치다. 그것도 예술가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도 예술이라고 믿고 있다. 예술이란 현실을 자르고 양식화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그 예술이 자율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은 자기 기원을 반성하면서부터이다. 키치도 이제 그런 단계에 와 있다. 유하의 키치중독의 기원에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중략).”
물론 이 글은 내가 쓴 것이 아니다. 다소 긴 이 인용은 시인 유하가 1989년 8월25일 그의 첫 번째 시집 <무림일기>를 발표했을 때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이 작품을 해설하기 위해 맨 뒤에 쓴 ‘키치비판의 의미, 유하 시가 연 새 지평’의 일부이다. 그런데 나는 이 해설이 유하의 <비열한 거리>를 위해서도 유용하다고 믿는다. 아니, 그냥 시침 뚝 떼고 이걸 영화평 대신 싣고 싶을 정도다. 이 글이 무서운 것은 단지 유하의 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이 시인이 앞으로 키치중독자로서, 혹은 키치반성자로서 시로부터 영화로 옮겨간 다음 나아가게 될, 혹은 나아가고 있는 그의 여정을 이미 본 것처럼, 마치 돌아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의 연장에 존재하는 유하의 영화
유하는 시로부터 영화로 그의 자리를 옮겼지만 그러나 그가 자기를 부르는 방법은 여전히 시인이다. 혹은 그에게 시인과 영화감독은 동일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시를 쓰기 위해 스스로에게 부여한 유하라는 이름을 영화를 만들면서도 여전히 안고 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가수 에릭은 영화에 출연하면서 (호적상의) 그의 이름 문정혁으로 돌아왔으며(<달콤한 인생>), 가수 비는 지금 영화에 출연하면서 정지훈으로 연기하고 있다(<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그들은 영화가 자기 자신을 찍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하는 영화를 만들면서 김영준이 될 생각이 없다. 그건 그가 카메라 앞이 아니라 뒤에 있기 때문일까? 그러므로 나는 그의 영화를 시의 연장에서 보는 것이 그의 시인으로서의 바람에 호응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호명은 단지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제도적인 내면화, 혹은 내면과 제도 사이의 간극에 던져진 호출이다. 하지만 유하는 아버지가 그에게 부여한 명령이 아니라 그 자신이 시인으로서의 자기를 부르는 이름이다. 시인으로부터 영화감독으로, 혹은 시로부터 영화로. 그는 자신의 시집 제목을 빌려와 첫 번째 영화를 만들었으며(<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그런 다음에도 여전히 시인의 이름으로 영화를 쓰고(유하는 단 한번 이만교의 소설을 각색하여 <결혼은, 미친 짓이다>를 만들기도 했지만 ‘하여튼’ 그의 모든 영화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썼다), 연출하고, 유하라는 이름으로 인터뷰한다. 자신이 자기에게 부여한 이름. 자기의 아버지로서의 자신. 그는 그 이름으로 사회와 성공적으로 의사소통하려고 시도한다. 더군다나 줄기차게 그의 영화가 아버지되기의 고단함, 힘겨움, 거북스러움,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 힘에 안쓰럽게 매달리는 그 실패와 좌절을 다루면서 스스로의 이름의 아버지가 되고자 함은 그의 영화와 시 사이의 도착적 화해로 뒤얽힌 억압적 탈승화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영화를 시와 뒤섞어 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럴 때 비로소 영화에 대한 유하의 그 애매한 거리, 시와 긴장을 놓치지 않고 유지했던 키치적인 욕망으로 어슬렁거리는 동물적인 테러리즘, 그 호화찬란한 압구정동에 언어라는 폭탄을 들고 온 백수건달이 불현듯 자신의 임무를 잊기라도 한 듯 그 어정쩡함으로 노래방에 가서 유행가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은 자포자기를 ‘읽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두개의 ‘물론’. 첫 번째, 나는 ‘물론’ 시인으로서의 유하를 평가할 자리에 있지 않다. 그건 내 몫이 아니다. 그리고 그건 내 관심도 아니다. 두 번째 물론. ‘물론’ 유하는 시로부터 영화를 떼어내려고 한다. 그래서 유하 자신도 <비열한 거리>가 “세 가지 관심에서 시작된 것인데 먼저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이어지는 인간의 폭력성과 조폭성에 관한 시리즈물이며, <비열한 거리>는 인간의 조폭성이 어떻게 소비되어가는지에 대한 영화이며, 두 번째는 장르영화에 대한 욕심으로 본격적인 갱스터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었고, 세 번째는 사춘기 시절 유신독재 치하에서 보냈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어디에서도 문학의 그림자가 얼씬거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비루한 것의 카니발>이라는 평론집에서 따온 것이지만 상업영화의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보여 좀더 상징적인 느낌의 <비열한 거리>라고 짓게 되었다”고 한다(보도자료). 상징적인 느낌? 아니,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다음 이 제목에서 상징적인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이 영화는 비열한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인물들의 추억담과 현재 사이에서 내내 주춤거린다. 청춘의 한 시절을 그리워하는 낭만과 신문에서 이미 본 현실의 피와 살점으로 뒤엉킨 뒤범벅. 그 이야기 안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인물들. 한껏 과장된 감상주의와 장르의 잘 알려진 약속들. 그 안에서 <비열한 거리>의 병두(조인성)는 <말죽거리 잔혹사>의 현수(권상우)가 고등학교를 중퇴한 다음 결국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면 마주치고 말았을 10년 뒤의 모습 같기도 하다. 마치 이소룡을 방불케 하는 발차기. 게다가 조폭 양아치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수줍은 고백을 끝내 못하는 미숙한 남자. 연애의 기술은 그 사람의 본성과도 같아서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말하자면 19살의 현수에서 29살의 병두에로. 혹은 가출한 은주(한가인)가 우식에게 결국 버림받은 다음 우여곡절 끝에 영풍문고에서 일하는 현주(이보영)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자기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어쩔 수 없다는 것처럼 항상 놓치는 여인. 그러니까 후일담. 그러나 두 영화의 연상은 아주 느슨하게 이루어져 있다. 서로의 영화에서 서로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성거리다가 혹은 어느 순간 서로의 끈을 놓아버린 것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흘러간다.
‘영화 사회학’, 영화적으로 사회를 살아가려는 시인이 사는 법
차라리 그렇게 영화를 좋아하는 유하가 <비열한 제목>이라는 제목을 바꾸는 순간 마틴 스코시즈가 1973년에 만든 영화 <비열한 거리>(Mean Streets)를 떠올리지 않았을 리가 없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그건 제목까지만 이고 영화는 더이상 흉내내지 않는다. (유하처럼 말하자면) 제목과 아무 상관없는 제목. 사실 항상 그랬다. 유하는 자신의 시, 혹은 시집에 영화 제목을 끌어들이긴 했지만 그건 거기까지이다. 그는 오마주를 바칠 생각이 추호도 없다. 차라리 조롱이라면 모를까. 나는 그에게서 고전영화들을 위한 그 어떤 존경심을 바치는 모습을 읽은 적이 없다. 그에게 존경을 바쳐야 할 대상은 문학이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유하 자신은 “하여튼 난 너무 영화적으로 생각하는 게 탈이라니까”(‘고성의 드라큐라’)라고 자책하면서도 (타르코프스키의) <노스텔지아>를 본 다음 떠올리는 이름은 김삿갓과, 김소월과, 고은과, 황지우와, 고정희이다(‘노스탤지아’). 유하가 영화를 끌어당길 때 그건 그 영화를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항상 그 영화의 ‘제목’에서 자유자재로 떠올리는 그 어떤 시적 상상 때문이다. <무림일기> 제3부에 ‘영화 사회학’이라는 부제 아래 모아놓은 열다섯편의 시, 또는 열다섯편의 영화. 그중에는 <전함 포템킨>도 있고, <돌아온 외팔이>도 있다. <벤허>도 있고, <마지막 황제>도 있다. 심지어 <파리 애마>도 있다. 하지만 <비열한 거리>는 없다(물론 이 영화는 유하가 시를 쓰기 전에 만들어졌다). 그때는 아직 보지 않았던 탓일까, 아니면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찌 됐건(!) <비열한 거리>는 그가 남의 영화 제목을 자신의 영화 제목으로 끌어들인 첫 번째 영화이다. 김현 선생의 글을 빌리면 유하는 ‘이 말장난! 그는 말 다루는 재주를 타고났다’. 그리고 나는 <비열한 거리>를 본 다음 이건 아마도 그의 일련의 시에 붙인 부제인 ‘영화 사회학’의 연장에 놓여 있는 작업일 것이다, 라고 말장난하고 싶어진다.
우선 유하의 영화 사회학. 물론 그는 콩트나 토크빌, 마르크스, 막스 베버나 에밀 뒤르켕, 빌프레도 파레토에게 관심이 없다. 그렇다고 문학에서 뤼시앙 골드만이 한 것을 영화에서 하려는 것도 아니다(설마!). 유하에게 영화는 “진실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약삭빠른 다람쥐, 우리나라 몽타쥐”(‘전함 포템킨’)이다. 그에게 영화는 사기이고, 속임수이며, (김현 선생이 인용한 바르트의 말을 빌리면) 현대적 신화의 쓰기이다. 그러므로 그는 시라는 글쓰기를 통해서 영화라는 이미지 쓰기와 힘겨운 레슬링을 한다. 그때 그가 싸우는 기술은 온갖 반칙이다. 왜냐하면 그가 싸우려는 대상인 남한사회는 반칙의 대가들, “욕망과 유혹의 삼투압”으로 넘쳐나는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통조림 공장이 (중략) 왕성하게 숨 막히게 숨 가쁘게, 갈수록 쎅시하게” 운동하는 경기장이기 때문이다(‘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압구정동이라는 알레고리로서의 남한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유하는 두서없는 연상 작용에 자기를 ‘시적’으로 내맡긴다. 말 그대로 영화(적으로) 사회(를 살아가려는 시인이 살아가는 방법으로서의) 학(‘열공’하는 學?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鶴? 스스로 괴로운 虐?).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하는 소설가 양귀자를 그냥 간단하게 내버려두고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고 유하는 생각한다. 양귀자와 유하는 만날 일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타야 할 지하철은 같은 노선이 아니기 때문이다. 유하는 원미동에 갈 이유가 없으며, 양귀자는 압구정에 올 이유가 없다. 그것이 두 작가의 그만큼의 거리이다. 양귀자는 삶이 슬프지만 유하는 욕망이 괴롭다. 하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전선에서 자기의 전술로 싸운다. 소설과 시. 그때 이 소설가가 수다로 자기의 진지에서 싸운다면 적진 속에 들어간 이 시인의 날렵한 기동전은 언어의 반칙이다. 반칙에는 반칙으로, 쇼에는 쇼로, 욕망의 장풍에는 암기로. 그가 반칙을 쓰지 않을 때는 문득 압구정을 떠나 도시 바깥의 그 어딘가, “정글어가는 하나대”를 방문하는 순간, 혹은 “세상의 모든 저녁”이라는 ‘골든아워’뿐이다. <말죽거리 잔혹사>가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 오면서 시작하는 것은 영화가 그의 시적인 사회학의 연장임을 자명하게 보여주는 한 예이다. 혹은 <비열한 거리>에서 철거민 가족의 장남 병두가 아이러니하게도 ‘럭셔리’ 아파트 건축을 위해서 또 다른 동네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것은 사실상 동일한 행위의 반복이다.
시에서 영화로, 풍자에서 순응으로의 반전
사실 유하의 세 번째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이미 쓰여진 시의 반복이다. 혹은 이미 썼지만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있다는 것처럼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 살과 피를 가진 재현이다. 이를테면 “나의 그로잉 업을 영화로 찍는다면 어떨까, 칙칙한 검은 화면? 검은색 교복 호크 풀어 헤치고, 검은 운동화 구겨 신고 건들거리던 고교시절, 빡빡머리 빽빽이 들어찬 교실 잠만 퍼 자다가, 교련복 안 가져와 두들겨 맞고 변소청소 신물 나게 하던, 암모니아 냄새에 푹 절여진 나날이었지, 하교길엔 과외공부 땡땡이 치고, 학생주임과 숨박꼭질하며 보던 오수미주연의 <장미와 들개>, 밤늦게 떡볶이 먹다 떡볶이 집 아줌마한테 유혹당한, 나는 떡제비였다?”(‘그로잉 업, 영화 사회학’)를 다시 읽으면 이미 16년 전에 마치 <말죽거리 잔혹사>를 위해 써놓은 장면의 일부처럼 보일 정도이다. 여기에다가 그의 산문집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를 겹쳐놓으면 영화 판본을 위한 더할 나위없는 트리트먼트가 된다. 그때 내가 궁금한 것은 왜 유하는 시로서 충분히 만족하지 못하고 그걸 다시 영화로 만들어야만 했느냐는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불만. 시는 영화를 위한 습작인가, 아니면 영화는 시 다음에 오는 해설서인가? 같은 말이지만 영화는 유하(의 시)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것인가, 아니면 이미 만족한 것에 어떤 잉여를 덧붙이는 것인가? 그때 그것이 결여라면 시로 쓴 영화 사회학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반대로 그것이 잉여라면 시로 쓴 영화 사회학에 덧붙여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는 영화 사회학이 왜 필요해졌는가, 에 대답해야 한다. 여기서 이 반복의 차이는 단지 시에서 영화에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생겨난 차이가 아니라 그 반대로 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시간적 지연이다. 그때 그걸 결여라고 말한다면 유하에게 모든 시는 필연적으로 시기상조이다. 반대로 그걸 잉여라고 말한다면 모든 영화는 그에게 이미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할 수밖에 없는 가정이 된다. 유하의 사회학은 둘 중 하나이다. 시기상조이거나 가정. 무엇에 대한? 주어진 상황. “압구정동 그 짧은 호흡지간에서 뺑이치며, 왔다리 갔다리 다방구를 하고 있는, 존재의 참을 수 없는 숨 가쁨”(‘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9’)으로 헐떡거리는 우리 시대. 그 안에서 유하가 반복하는 것은 사실상 전복의 실패이다. 좀더 끔찍하게도 시와 영화의 실패의 차이는 형식의 풍자로부터 내용의 순응에로의 변덕스러운 반전이다. 그는 시를 쓰는 동안 온갖 조롱의 코브라 트위스트를 시도하고 또 하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언제나 거기에 타협하고 머리 숙이는 법을 엄숙하게 가르친다. 그의 시를 읽으면 우습지만, 그의 영화는 언제나 슬프게 끝난다. 그러므로 내게 그의 엄숙주의는 좀 난데없어 보인다.
<비열한 거리>는 좀더 영화 사회학의 모습을 갖추었다. 철거민들, 럭셔리 아파트, 임대와 지대, 부르주아들, 착취의 고리, 잉여가치의 기생충들, 악순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예술가의 타락, 순정과 욕망, 취향의 차이, 마초들의 향연, 기타 등등. 거기에 더해 마치 통과제의의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더 엄숙해졌다(그러나 시인 유하는 그게 웃긴다고 생각했던 사람 아닌가?). 거의 유머가 없으며, 인물들은 좀더 전형적인 성격을 갖추었다. 이야기는 장르의 약속을 맹세라도 한 듯 그대로 따라가고, 운명은 그 안에서 예정조화설을 믿는다. 병두가 악전고투 끝에 갖은 희생을 치른 다음 가까스로 그 자신이 소망하던 성공을 눈앞에 두고 그의 ‘스폰서’인 황 회장에게 버림받아 웨이터 시절부터 이 자리까지 함께 온 종수에게 ‘작업당하고’ 버림받는 이야기. 조금만 옆길로 새도 화들짝 놀란 듯 서둘러 제자리로 돌아오고 또 돌아온다. 그러나 그저 슬쩍 돌아보기만 해도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에서 이창동의 <초록물고기>, 그 코믹 버전인 송능한의 <넘버3>까지 이런 이야기는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의 운명의 굴레라도 있는 것처럼 그대로 따라간다. 이렇게 달려가건 저렇게 흘러가건 결론은 항상 같다. 물론 거기엔 아무것도 이 영화를 구원할 만한 새로운 것이 없다.
조폭의 자리에서 보는 ‘충무로에 관한’ 영화 사회학
그러나 <비열한 거리>가 이 영화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민호라는 인물이 나올 때부터이다. 민호라는 병두의 동창, 지금은 영화감독이 되어 “죽이는 거 하나 갖고 온다”고 거듭 다짐을 거듭하면서 병두의 순정을 ‘등쳐먹으며’ 그의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쓴 다음 그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어 ‘대박을 친’ 등장인물이 이야기 안에 들어올 때 이 이야기는 두겹의 이야기를 갖게 된다. 이야기와 이야기. 이야기 안의 이야기. 이야기 바깥의 이야기로부터 다시 이야기 안으로. 그런데 여기 좀 난처한 문제가 뒤따라온다. 이런 이야기 구조의 가장 상투적인 관계는 민호를 병두가 살아가는 피비린내 나는 세상의 관찰자의 자리에 놓은 다음 (그와 함께 우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유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관찰하던 민호가 그 세상 안으로 들어가 온갖 모험을 겪은 다음 그 자신도 조폭 양아치의 일부분이 된다는 악의 전염에 관한 것도 아니다(물론 이것 역시 상투적이다). 내가 어리둥절했던 것은 영화가 민호에서 시작해서 병두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병두에서 시작한 다음 되돌아 나와서 민호를 보여주고 그런 다음 다시 병두에로 돌아갈 때이다. 영화는 그런 다음 내내 그렇게 진행된다. 그때 민호는 이미 이야기 안에서 병두의 이야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민호의 관찰자의 자리는 폐지되고, 그 순간 민호는 구경하는 자가 이미 구경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리로 불려갈 수밖에 없다. 그때 내게 의미심장하게 보인 것은 유하의 자리이다. 그는 영화감독보다 조폭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처럼 영화를 진행시킨다. 그는 민호의 자리에 가지 않는다. 혹은 유하는 민호와 겹치지 않는다. 차라리 <비열한 거리>는 병두의 자리에서 민호를 보는 영화이다. 혹은 조폭의 자리에서 영화를 보는 영화이다. <비열한 거리>는 영화‘로 보는 조폭들에 대한’ 사회학이 아니라, ‘조폭이 보는’ 영화‘에 관한’ 사회학이다. 아니, 차라리 좀더 단도직입적으로 (조폭들의 자리에서 쳐다보는) ‘충무로에 관한’ 영화 사회학이다. 유하는 민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는 듯이 낯설게 쳐다본다. 병두의 가족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지만 민호는 거의 고아처럼 그려진다. 병두가 조폭의 세상에서 겪어가는 거의 모든 일이 빠짐없이 다루어지지만 민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이 영화는 거의 알지 못한다. 영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영화.
나는 이것이 이상하게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유하가 더 잘 알 수 있는 이야기는 영화감독이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이야기이지 조폭이 성공과 순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결국 실패하는 이야기일 리가 없기 때문이다(물론 나는 유하의 삶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내 질문은 반대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왜 병두보다 민호가 더 잘 알 수 없는 인물이 된 것일까, 라고 질문하는 대신 왜 <비열한 거리>는 민호에 대해서 병두보다 더 많이 알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일까, 라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방점은 민호와 병두 둘 사이에 놓인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비열한 거리>라는 텍스트 자체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지식에 관한 것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 유하 시와 영화의 화법
말하자면 여기에는 잘 알고 있지만 그걸 다 말할 수 없다는 불확실한 망설임이 있다. 우리는 유하의 시가 보여주는 힘이 말장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애너그램에 그의 상상력을 내맡긴 채 장난스럽게 끌어들이는 현실에 있다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그가 싸우는 곳은 언어가 아니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시건, 영화건, 그가 개입하는 방식은 익숙한 것의 낯설게 하기에 있다. 우리는 <비열한 거리>가 익숙한 만큼 낯선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 한 사람은 조폭이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영화감독이 된다. 그 둘은 다시 만나고 두 사람은 다시 인연을 맺는다. 하지만 그들이 가야 할 길은 다르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이미 본 이야기. 그런데 다른 이야기. <비열한 거리>가 곽경택의 <친구>와 디졸브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디졸브는 이중의 의미에서이다. 두 영화는 사실상 똑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때 <비열한 거리>는 <친구>를 다시 리메이크했다기보다는 곽경택이 자기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친구>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친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소송관계에 관한 영화 사회학처럼 읽힌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의리가 있었을까? 우정이라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인가? 유하가 조폭영화들에 대해서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정말 그랬을까, 가 아니라 그런 이야기 자체가 성립 가능한 것인가, 라는 의문이다. 유하 자신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 시대의 아라비안나이트, 세헤라자데의 이야기, 천일야화” (<한겨레> 인터뷰, 6월13일) 이야기는 장르의 형식 안에 갇히고, 바깥에 있던 민호는 점점 이야기 안으로 들어와 마침내는 그들 조폭의 일원이 된 것처럼 자기 친구이자 동창을 죽인 종수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두명의 배신자. 한 사람은 우정을 버렸고, 다른 한 사람은 의리를 버렸다. 그 둘 사이에서 누가 더 치사한 것일까? 친구의 살인교사범으로 재판정에 선 친구가 살인을 인정할 때, 도대체 왜 그랬느냐는 질문 앞에서, “쪽 팔리잖아”라고 한 (<친구>의) 마지막 대사는 민호가 영화를 찍는 현장에 찾아온 병두가 두명의 배신자, 눈앞에는 민호를 세워두고 등 뒤에는 종수를 세운 다음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의미심장한 미장센)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건달들의 세계, 한번 폼 나게 찍어 달라”는 대사와 서로 (아이러니한) 대구를 이룬다. 아마 유하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이 장면은 병두가 죽은 다음 민호의 플래시백으로 종수를 눈앞에 두고 되풀이된다. 그때 이 반복은 해석의 제스처이다. 말하자면 유하의 웃음. 그럴 리가 없잖아, 라는 반문이 귀에 들리는 듯한 비꼼. 그러나 유하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유하의 불만.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 웃음은 음침하게 진행되는 대신 현주가 끼어들면서 신파조의 순정만화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그때 나는 똑같이 반문하고 싶어진다. 그럴 리가 없잖아? 유하가 결여라고 생각한 것을 나는 잉여라고 읽는다. 유하가 사랑이 도착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세계라고 생각한 것을 나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있다고 가정해야만 하는 이 이야기의 욕망의 원인이 궁금해진다.
유하의 메시지. 마지막 장면. 황 회장은 민호와 종수를 앉혀놓고 룸살롱 가라오케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는 두 사람에게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말한다. “이 노래 가사가 잘 들어보면 의미가 있어, 잘 들어봐.” 그런 다음 이 노래를 완창한다. 그런데 이 영어노래는 화면에 가사를 번역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노래를 잘 듣고서 의미를 곱씹어보기란 쉽지 않다. 잘 알려진 앨런 파슨스 프로젝트의 ‘늙고 현명해지고’(Old and Wise)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이렇다.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내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있어, 그래서 내가 뒤에 남겨놓은 것들을, 나는 당신이 알기 원했어요, 내 가장 깊은 생각들을 항상 당신과 나누고, 내가 가는 곳을 당신이 따라오기를. 아아, 내가 늙고 현명해졌을 때, 아픈 말들은 내게 별 의미가 없지요. (중략).”
김현 선생은 유하 시인의 시집에 대한 해설을 이렇게 마치고 있다. “이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즐거움은 없다. 아니 더 나아가 ‘세상에 뻔한 이야기는 없다’라는 것이 유하의 키치반성의 마지막 전언이다. 뻔한 이야기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은 뻔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뻔한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신화조작의 기술을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읽어야 한다. 어떻게? (중략).” 그냥 얻어지는 즐거움, 그런 것은 없다. 뻔한 이야기, 그런데 뻔한 이야기는 없다. 없는 것들. 그것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충무로에서의 나날들. 시인들을 만나는 인사동 찻집에서 실패하면 몇년이고 놀아야 하는 충무로 다방까지. 아아, 보름달이 휘영청 뜬 날에는 충무로에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