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초라하나 흥겨운 주파수를 타고, <라디오 스타> 촬영현장
2006-07-03
글 : 이종도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강원도 영월역 맞은편, 굽이치는 동강 언덕에 지금은 쓰지 않는 KBS 원주방송국 영월중계소가 있다. 폐방송국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을까. 최석환 작가는 지난해 <왕의 남자> 촬영 들어가기 전 우연히 들르게 된 이곳에서, 영락한 왕년의 록스타가 라디오 방송을 하러 내려온다는 <라디오 스타>의 이야기와 마주쳤다. 시놉시스에 박중훈이 응하고, 박중훈이 안성기 팔을 잡아끌면서 시나리오가 나오기도 전에 캐스팅이 완료되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음식점 옆으로 난 샛길을 따라 걷다보니 <라디오 스타>를 찍고 있는 촬영장, 이름만 바꾼 MBS 영월방송국이 나온다. 미술부나 제작부원이 아닐까 싶은 허름한 입성의 이준익 감독이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증권회사 광고의 드레스 셔츠 차림만 봤다면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더위 때문에 머리가 아파 죽겠어.”

엄살과 달리 감독은 시원시원하게 ‘컷’을 외쳤고 라디오 DJ 역을 맡은 박중훈(최곤)은 거의 한두번에 OK를 받았다. 벽에는 어느새 밀려드는 청취자 엽서, 사무실엔 청취자들이 보낸 선물로 빼곡하다. 내키지 않는 방송에 최곤이 서서히 적응되는가 싶은데 부산에서 청취자의 전화 한통이 울린다. “오빠 방송 부산에서도 생방송으로 들을 수 있으면 억수로 좋을 낀데, 이제 갈 때까지 가셨네예.” 최곤이 화를 버럭 내고 ‘신청곡은 영월 사람들에게만 받는다’고 대꾸하는 장면이다. 고등학교 때 록밴드 리더였고, 재수할 때 스탠드바에서 뽕짝 메들리를 부른 밤무대 가수이기도 했고, DJ 경험도 있으니 박중훈의 가수 출신 DJ 노릇은 자연스럽다. <칠수와 만수>(1988) 이후 5년에 한번꼴로 박중훈과 만난 안성기가 한물간 록스타의 매니저로 나와, 철없이 나이만 먹은 최곤의 뒤치다꺼리를 한다. 이준익 감독은 노련한 배우들과의 작업이 손에 익었는지 별다른 주문없이 “세컷 중에 하나 골라 쓰자”며 다음 신으로 넘어간다. “실패의 슬픔이 행복의 깊이를 더 깊게 해줄 수 있다”(이준익)는 <라디오 스타>의 이야기는 7월10일 촬영을 마친 뒤, 신중현부터 노브레인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흥겨운 록음악에 실려 가을에 배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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