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거리>를 보다가 뜨끔했다. 병두의 초딩 동창 영화감독 민호의 초특급 액션대작 <남부건달 항쟁사>가 상영될 때, 그 영화를 보면서 병두와 종수의 얼굴이 굳어질 때였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취재원들 수백명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 찔려~.
병두는 나이브하게도 민호네 집에서 자신이 저지른 ‘작업’을 털어놨고 비밀로 하라던 그 고백이 영화의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갔다. 좀 비약하자면 병두는 영화 한편 때문에 목숨이 날아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더니, 무심코 던진 돌은 아니지만 민호는 결국 친구의 목숨과 흥행을 맞바꾼 셈이다.
취재를 하고 그걸 표현한다는 점에서 창작자나 기자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재미있는 또는 중요한 이야기는 대체로 ‘오프 더 레코드’에서 나오고 창작자, 또는 중계자는 갈등한다. 이걸 써? 말아? 나야 사건기자를 하거나 은밀한 정보 거래가 오가는 취재를 해본 적도 전무하다시피하니 이런 종류의 ‘뜨거운’ 고민을 한 적이 많지는 않지만 김은형 기자에게 억울하게 당한 사람 나와봐 그러면 그래도 대여섯명은 ‘저요’, ‘저요’ 하고 나오지 않을까. 그러면 나는 영화감독 민호처럼 궁색하게 변명하겠지. “이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어요.”
뭐, 고해성사하려고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영화감독 민호의 존재가 꽤 흥미로웠다. 그는 조폭 세계를 그리는 영화 속 공간에서 꽤나 이질적인 존재인데 영화가 따르는 장르적 관습이나 메시지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를테면 힘의 질서는 우정이나 의리 위에 군림하고 힘은 더 큰 힘에 의해서 꺾인다는 조폭 드라마의 사회학은 이미 <친구> 등 많은 조폭영화가 보여준 주제였다. 이 영화에서 영화감독은 힘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조폭 세계와 아무런 관계가 없을뿐더러 자신의 업계에서도 잘 나가지 못한다. 취재명목이었으나 그는 수많은 레퍼런스 가운데 ‘장사될 만한’ 이야기를 문다. 병두에게 빨대를 꼽는 것이다. 그리고 피를 빨아먹는다. 그에게는 핑곗거리가 있다. 그 정도는 괜찮을 줄 알았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몰라서, 라는 핑계는 황 회장이 병두를 제거하기 위한 핑계보다 순진해 보이지만 그 못지않게 저열하다.
이용하고, 배신하고, 알아서 기고. 감독은 자기 세계를 1cm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조폭의 룰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한다. 사실 그건 조폭의 룰이 아니라 그냥 이 세상을 살아가는 룰이고 그는 배운 걸 조폭 세계라는 단순한 깔때기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비열한 거리>가 섬뜩한 이유는 이처럼 조폭이 아닌 민간인, ‘선량하고 악의없는’ 내 안에 문신처럼 각인된 잔인한 생존의 법칙을 돌아보게 해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