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의 기대를 불러모았던 봉준호 감독의 세번째 장편 <괴물>이 정체를 드러냈다. 7월4일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기자시사를 가진 <괴물>은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관객의 눈길을 한시도 놓치지 않는 영화다. 서울 한복판, 정확히 말하면 한가한 오후의 한강 공원에 돌연변이 괴생물체가 등장한다. 한강에서 아버지 희봉(변희봉)와 매점을 운영하던 강두(송강호)는 눈앞에서 딸 현서(고아성)가 괴물에게 잡혀가는 것을 목격한다. 그리고 얼마 뒤, 죽은 줄만 알았던 현서는 강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리지만 아무도 강두의 말을 믿지 않는다. 이에 희봉과 강두, 그리고 강두의 동생인 남일(박해일)과 남주(배두나)는 한강 곳곳에 위치한 하수구를 뒤지며 현서를 찾아나선다.
<괴물>은 새로운 괴물영화, 혹은 한국형 괴물영화다. 괴물을 목격한 누군가와 이를 믿지 않는 권력자의 갈등을 비롯한, 할리우드 괴물영화에서 흔히 보여지는 클리셰는 여기 없다. 한강 교각에 매달리고 꼬리를 이용하여 날렵하게 이동하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동정심을 유발하는 괴물의 모습은 ‘사이즈가 중요하다’는 괴물영화의 편견을 보란듯이 벗어던진다. “보통 괴물 영화의 주인공들이 군인, 생물학자, 머리 좋은 기자 등이지만 <괴물>에선 평범하다 못해 하자가 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등장인물들은 멋지거나 훌륭하기는 커녕, 오히려 평균 이하라고 보는 편이 맞다. 아버지 희봉은 지극히 자상하지만 그뿐이고, 어딘지 모자라는 듯 보이는 강두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 외엔 내세울 게 없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을 나온 남일은 “민주화를 위해 한몸을 바치느라” 현재 백수 신세고, 신궁 소리를 듣는 양국선수 남주는 행동이 너무 굼떠서 금메달을 놓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단점이 결정적인 순간에 극적으로 빛을 발한다는 점. 정부를 비롯한 권력기관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가운데 벌어지는 이들 가족의 외로운 분투는 기꺼이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진정한 괴물영화가 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괴물, 그 자체일 것이다. 괴물 디자인을 맡은 장희철씨가 1년 반 동안 괴물을 만들면서 탈락한 괴물이 1천 5백마리, “오디션으로 보면 1천 5백 대 일의 경쟁을 뚫고 선정된 괴물”은 영화 속에서 완벽에 가까운 외향과 움직임을 보여준다. 꼼꼼한 준비 과정과 CG 업체 오퍼니지, 김형구 촬영감독, 류성희 프로덕션 디자이너 등 제작 각 파트의 긴밀한 협력 결과, 괴물이 등장하는 모든 장면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순제작비의 36%를 들여서 완성된 괴물이 흉칙한 이미지를 전시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스토리와 주제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는 것 또한 <괴물>을 영리한 괴물영화로 분류하게 만드는 요소다.
고수희, 윤제문, 김뢰하, 박노식, 유승목, 심지어 오달수(괴물의 목소리를 빌려줘 크레딧에 이름을 올렸다)와 임필성 감독까지 봉준호 감독의 배우들이 카메오로 총출동한 <괴물>의 곳곳에는 봉준호 감독만이 구사할 수 있는 독특한 유머가 배치되어 있다. 거대한 권력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이들이 연출하는 상황은 매우 슬프지만 자꾸만 웃음이 비어져나온다. 이를테면 현서의 영정을 앞에둔 가족들의 못말리는 해프닝은 눈물을 흘리면서 웃지 않을 수 없는 ‘서민 유머’의 결정판.
영화가 끝난 뒤까지 여운으로 남을 만한 것은, 괴물영화의 배경으로 묘사된 서울의 모습이다. <플란다스의 개>의 서민형 아파트단지, <살인의 추억>의 농촌을 영화 속 또다른 등장인물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봉준호 감독의 공간감은 <괴물>에서 절정을 이룬다. 비가 오거나 해가 진 뒤 드넓은 한강의 풍경, 저마다 다른 느낌을 지닌 교각의 구석구석은 섬뜩한 일상의 감각을 자극하도록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할리우드 블럭버스터의 뉴욕이나 LA 등의 대도시 배경에 익숙한 한국의 관객에게, 일상에서 마주칠만한 인물과 공간을 통해 벌어지는 재난영화의 상황은 독특한 심상을 불러일으킨다. 오는 7월27일 <괴물>이 개봉한 뒤, 한강은 우리에게 더이상 풍요 혹은 여유의 공간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