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뚜껑 열린 <괴물> 역시 ‘거물’
2006-07-07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이 한강에 괴물이 출몰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을 때부터 이미 〈괴물〉은 최고 관심사였다. 충무로가 장르적 영역을 넓히고 기술적 성취를 빠르게 이뤄가는 동안에도 ‘괴수영화’는 모험의 대상에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준비되는 동안 궁금증은 쌓였고, 최근 칸에서 들려왔던 호의적 반응은 궁금증을 눈덩이처럼 불렸으며 또 포스터에 꼬리만 달랑 드러낸 괴물의 모습은 궁금증을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4일 국내 첫 시사를 연 〈괴물〉은 영화의 규모에 걸맞은 드라마와 볼거리의 조합에서 충무로가 현실적으로 해낼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결과물을 보여줬다. 일단 궁금증의 핵심인 한강변에 괴물이 출몰하는 스펙터클이 기대치에 값하고 괴물이 납치한 딸을 찾으려고 추적과 도피를 거듭하는 가족의 드라마가 긴장감을 잃지 않는다. 여기에 한국적 현실이 이야기의 큰 기둥이 되고 블랙코미디가 긴장감 사이사이로 침투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와 다른 지점에 자신을 세우는 이 영화의 특징이 드러난다.

영화가 시작되는 건 용산 미군부대의 영안실이다. 이곳에서 하수구에 흘려보낸 다량의 포름알데히드는 한강에 돌연변이 괴물이 탄생하는 데 거름이 된다. 3년 뒤 어류와 파충류가 해괴하게 섞인 듯한 모양에 버스만하게 커진 괴물은 둔치에서 놀던 시민들을 갑작스럽게 공격하고 이곳에서 아버지(변희봉)와 매점을 하던 강두(송강호)는 알토란 같은 중학생 딸이 괴물의 꼬리에 감겨 납치되는 것을 목격한다.

〈괴물〉은 잃어버린 딸이자 손녀이며 조카인 소녀를 되찾기 위해 강두 가족이 벌이는 사투를 따라간다. 괴물 출현은 국가적 비상사태를 가져오지만 이 가족이 벌이는 싸움은 외롭다. 공권력은 괴물을 잡는 게 아니라 괴물로부터 바이러스 감염이 됐을지도 모르는 강두 가족을 잡는 데 혈안이 된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 악몽을 키우는 건 괴물에서 점점 무력하고 냉담한 공권력, 즉 시스템으로 옮겨간다. 재난영화에 주된 해결사로 등장하는 경찰과 의료진 등 전문가, 미디어 등은 미국이 직접 개입한 비상사태를 손가락 빨고 지켜보는 형국으로 묘사된다. 진짜 괴물은 상식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시스템의 추한 본성이고, 그것이 배설한 결과물이 영화 속 괴물인 셈이다.

이처럼 메시지를 전하고 현실을 풍자하는 방식은 〈살인의 추억〉보다 직설적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블랙코미디가 가끔씩 지나친 수다처럼 느껴지고 괴물과 싸우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삼촌(박해일), 고모(배두나)가 헤쳐모여를 반복하는 통에 이야기가 흩어지는 등 〈괴물〉에서 흠결을 찾자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충무로 상업영화 또는 대작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듯하다. 특히 2년여 동안 세공한 괴물의 모습은 고질라, 용가리의 상상력을 단박에 뛰어넘으며 괴물이 교각을 뛰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등의 움직임의 질감도 할리우드 영화에 비교해 손색없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왜소한’ 괴물을 등장시켜 큰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또한 괴물을 쫓던 고모가 잠을 깨는 교각 모서리를 비롯해, 서울 사람들에게 고정화면처럼 뇌리에 각인된 한강과 한강 다리의 숨겨진 풍경들을 보는 것도 〈괴물〉이 보여주는 새로운 발견이다. 그 발견으로 한강 둔치를 걷는 게 으스스해지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2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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