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괴물> 봉준호 감독,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 대담
2006-07-12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글 : 전정윤 (한겨레 기자)
오른발은 코미디 왼발은 비극…그냥 걷는 리듬으로 찍었다

27일 개봉을 앞둔 <괴물>은 지금까지 대규모 예산으로 만들어진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호평을 받고 있다. 본격적인 괴수 장르 영화라는 점 등 여러 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 영화를 품평하기 위해 영화평론가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가 봉준호 감독을 지난 7일 삼청동에서 만났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선후배 사이기도 한 두 사람은 <괴물>이 지난 정치적 함의와, 엇박자 유머, 한국에서 괴물영화 만들기의 지난함에 대해 두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김소영=영화의 첫부분이 굉장히 좋았다. 특히 한강의 심연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강이 폭포처럼 올라온다든가 하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들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건가

봉준호=괴물 장면 말고는 사실상 컴퓨터그래픽이 거의 없었다. 맨 마지막, 한강에 눈이 오는 장면과 프롤로그에서 투신하는 남자와 그 뒤로 63빌딩이 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 하늘이 맑아서 찍고 난 다음에 컴퓨터그래픽으로 회색 구름을 깐 정도를 제외하고는.

김=기대가 매우 커서 처음 한강 다리 나오는데 가슴이 두근 대더라.

봉=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걱정이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는 수모, 편견, 멸시, 구박, 우려가 장난 아니었다. 괴물 영화 만든다니까 영화인에서 친구들까지 너 미쳤냐, 영화 한편 잘 되더니 정신 못차리고 자만에 빠졌다, 이무기 영화 만든다며? 잘 해봐라 등등 냉소적인 반응 일색이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머리 깎으라고 하면 빡빡미는 애들의 오기 같은 심정으로 제목도 <괴물>이라고 붙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설마 진짜 괴물은 안나오죠? 송강호의 인격이 괴물이라면서요 이렇게 반응하더라(웃음).

김=처음 영안실의 투샷은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 시리즈처럼 평이하게 시작한다. 그러다가 한강의 다양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면서 블록버스터 규모로 진행되는데 참조영화가 많을 것 같다. 이를테면 <우주전쟁> 같은.

봉=제작비 규모도 그렇지만 보여주려는 의도나 방식도 전혀 다르다. 보통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처럼 스펙터클에 대한 집착이 크지도 않았고. 굳이 외국영화와 비교한다면 같은 외계인의 침입을 다루지만 <인디펜던스 데이>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에 집중한 <싸인>을 좋게봤다는 정도?

김=할리우드와 비교하면 제작비가 독립영화 수준이지만 어쨋든 한국에서는 100억원 정도 제작비 규모면 블록버스터다. (투자·제작사와) 조정과정이 흥미로울 것 같다. 요즘 제작 투자 받는 과정에서 엔딩이나 스펙터클 포함해 요구가 많지 않나. 해피엔딩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엔딩이어야 한다거나. 그런데 이 영화는 해피앤딩과 거리가 멀다.

봉=정말 전과정을 통틀어 아무런 간섭을 받지 않았다. 하도 말들을 안 해서 오히려 내가 붙잡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결말만 보자면 디즈니풍 해피엔딩이 아니어서 오히려 좋다, 아니다는 반응이 절반정도 됐던 것같다.

김=<살인의 추억> 이후에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호감도 100%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자유로운 창작환경을 만들었을 수도 있을 것같다. 어떻게 보면 한국영화 산업의 특수한 상황인 것도 같고.

봉=대신 그 상황에서 잘 해야 겠다. 14개월 촬영하고 이렇게 되버리면 안되니까, 나나 프로듀서나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행하려고 준비를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은 있었다.

“너 미쳤냐” “잘해봐라” 찍기전 냉소

김=<고질라>나 <대괴수 용가리>처럼 괴수영화를를 정치적으로 읽는 독해방식에 대해 의견을 나눠보자. <고질라>는 피폭에 대한 영화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에서 탄생했다. <용가리>는 삼팔선 디엠지에서 남대문 쪽으로 온다는 점에서 한미관계가 이야기 아래 깔린다. 괴물도 고질라나 용가리처럼, 미국이 개입한 전쟁과 연관돼 있다. 사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은 비극적인 장면, 정치적인 비관과 블랙 코미디가 서로 약간씩 부정합, 엇박자를 만들면서 간다는 점이다. 그렇게 봤을 때, 포름알데히드가 한강으로 흘러나오는 건 우리가 알고 있는 용산기지 독극물 무단 방류 사건을 연상케 하고, 영화는 이런 식으로 미국이 한국 주권을 담보하고 있다는 걸 암시한다. 이렇게 정치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한강이 넓으니까 넓은 마음 가져라”식의 대사가 튀지 않도록 완급 조정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봉=칸 영화제에서도 코미디나 정치적 비극이 잘 뒤섞여서 굴러간다, 어떻게 배합했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러 요소를 별도로 놓고 배합한 건 아니다. 나한테는 하나의 단일한 상황으로 인식됐고 그걸 직관적으로 풀어나갔다. 기존 장르 카테고리에 맞춰서 보려고 하니까 여기서는 코미디네, 정치풍자네, 서스펜스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편한 방식으로 풀어간 것이다. 길을 걸을 때 좌측 발이 나가니까 오른 손이 나가야지 하고 걷지 않듯, 그냥 걷는 리듬으로 시나리오 쓰고 찍고, 편집했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도 그런 엇박자의 유머가 있었다. <괴물>의 엇박자도 유형적으로 비슷하지만, 한 가지가 더 있다. 확인할 수 있는 공포다. 이걸 자기 리듬으로 갖고 있다는 건 재능인 것 같다.

봉=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여러가지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김=“한강 넓으니까 맘 넓게 가져라”라는 식의 엇박자 유머가 어색하지 않게 들리다가 강두 아버지가 강두 어린 시절 이야기 하는 가운데 유기농 운운하며 유머를 섞을 때는 불편하더라. 웃는 게 무감각하게 느껴지고. 소녀가 납치된 이후에도 나오는 웃음도 그랬다. 그 상황에서 사람들이 웃을 구석 찾고 있다는 게 불편했다.

2000년 미군 독극물 무단방류 사건을 보고 내영화를 위한 사건이구나 아전인수 생각, 내 작품 세평중 재미에 가장 집착한 영화

봉=<살인의 추억>도 엄청 무서운 연쇄살인인데 포복절도할 웃음이 나왔는데 왜 그렇게 될까 생각해봤다. 내가 기본적으로 시나리오의 구조나 설정을 짤 때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같다. 일단 못난 인물이 나온다. <플란더스의 개>의 이성재, 배두나도 그렇고 <살인의 추억>의 한심스러운 형사들도 그렇다. <괴물>도 평범 수준을 밑도는 가족이 나와서 자신들이 감당 안 되는 상황이나 사건에 노출된다. 연쇄살인이라는 현대 범죄에 적응 안 된 형사들처럼, <괴물>의 주인공들도 마찬가지다. 수퍼 히어로가 이런 상황에 처하면 웃음이 유발될 가능성이 떨어지는데 그들이니까 가능해진다. 상황은 심각한데 스크린 밖에서 볼 때는 웃긴 상황이 되는 것이다.

김=<플란다스의 개>에는 지하실의 보일러 김씨가 등장하고 <살인의 추억>에는 수로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괴물>도 마찬가지고 습지, 물기, 수로, 지하실 등 봉 감독의 영화에는 이런 공간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흔히 젖줄이라는 표현으로 여성화되는 한강이 영화에서 미군의 포르말린으로 더럽혀지고 그 어머니가 낳은 아이가 괴물이 된다. 근데 괴물에 성별이 있나.

봉=괴물 크리에이터인 장희철씨와 추측을 많이 했다. 여잘까 남잘까. 장씨는 자웅동체가 아니겠느냐, 입을 활짝 벌렸을 땐 여성스런 느낌도 있고, 밖에 나왔을 땐 남근처럼 보이긴 하고. 한강도 여성적인 상징, 한각의 기적 처럼 국가적, 역사적 상징을 배제하고 일상적인 공간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테면 백두산 천지의 반댓말이라고 해야 할까? 백두산 천지는 일상과 동떨어진 신비롭고 안개 잔뜩 낀 공간이지 않나. 영화에서 한강은 그런 것의 반대다. 유람선, 자전거, 인라인 타는 곳에서 괴물이 나온다, 이런 충돌을 통해서 낯선 공간이 된다. 괴물도 보통의 괴물 영화에서는 조금씩 보여주면서 괴물의 미스터리, 괴물을 어떻게 죽일까에 집착하는데 이 영화에서는 괴물이 초반이 나오고 거기서 이야기를 바이러스설, 가족 납치극 등으로 확장시켰다. 오히려 괴물은 생물체로서 그 자체로만 남는 거고, 상징이 집약되기보다는 거기서 파생된 의미가 확장되는 것 같다.

김=자웅동체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괴물의 입이 연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봉=연꽃은 의도한 것이다. 괴물 비주얼에서 입이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어류에 기반한 디자인인데 어류는 모습이 단순하니까. 또 영화에서 사람과 마주섰을 때 정면에는 입이 보일 수 밖에 없는데다가 사람을 삼켰다 뱉는 게 반복적으로 나오니까 입모양이 매우 중요했다. 괴물이 풀들 사이에서 입을 쫙 벌리고 비를 받아 먹는 것이나 그리고 클라이막스에서 휘발유 받아 먹을 때도 연꽃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상징으로 발전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연꽃모양에서 다른 의미가 붙여지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김=크기가 문제되는 괴물이 아니고, 괴물 그 자체로 미스테리라거나 알레고리로 파고들지 않게 했던 건 좋은 설정이었던 것 같다.

봉=배설에 대한 모티브는 있었다. 처음에 독극물을 쏟아붓고 괴물도 사람뼈를 뱉어내고 나중에 에이전트 옐로우가 가스 배출하는 것까지 먹고 뱉는 모티브를 반복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누군가가 먹인다는 거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송강호가 밥상 차리는 것도 그렇고, 강두 딸 현서는 지옥같은 지하에서 자기보다 더 작은 아이를 보호하려 사투한다. 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였다.

김=강두 딸 현서는 엄마가 없고, 궁수인 고모는 모성보다는 전사의 느낌이다. 여기서 돌보는 역할, 먹이는 역할은 할아버지, 강두가 한다. 그래서 나쁘게 읽으면 엄마가 없는 아이가 처하는 비극이라는 게 여성친화적인 영화로 보긴 힘들다. 이 영화의 비극성에는 대체되기 어려운 모성의 부재라는게 있지 않나.

약자조차 약자를 보호한다는 모티브

봉=무려 두 세대에 거쳐 엄마가 없는 거다. 시나리오 쓸 때 처음엔 의식하진 않았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다. 엄마들이 적재적소에 있으면 가족들이 덜 불안정해 보인다. 나에게 엄마 또는 여자들은 현실적으로 현명한 존재고 남자는 폼만 잡는 이미지다. 두세대 엄마가 없으니 더 우왕좌왕 불안해 보인다. 가장 중요했던 건 모든 가족이 현서를 구하려 사투를 벌이는데 현서는 그 안에서 더 작은 아이를 구하려 사투하는 것이다. 현서, 강두같은 부족한 사람조차도 더 약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먹이려고 한다는 개념이 제일 좋았다. 또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고, 도움은커녕 방해만 받지만 아무도 시스템 탓 안하고 자기들끼리 보듬으며 재앙을 개인화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지 않나. 예를 들어 대구지하철 참사도 구조적 모순을 탓하기 보다 ‘내가 돈 잘 벌었으면, 대학입학 했을 때 차 사줬으면, 안 당했을 변을 당했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 이런게 한국적이고 사실적이다. 재앙은 훨씬 더구조적인 것에서 온 건데, <괴물>의 식구들도 마찬가지다.

김=합동분향소 장면에서 현서의 고모역의 배두나가 눈물 젖은 채로 등장하는게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그의 궁수라는 직업이 <반지의 제왕>에서 레골라스같은 행동을 기대하게 하는데 중간에는 별로 힘을 못쓴다. 이런 게 그 가족의 특징이기도 하고. 배두나 역을 왜 궁수로 설정했나.

봉=장르적인 걸 한국적인 걸로 치환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서였다. 다시 말해 <반지의 제왕>의 레골라스를 한국적으로 끌어내린거다. 한국영화에서 난데없이 활 잘쏘는 인물이 등장하면 받아들이기 힘드니까 양궁 선수로 설정한 거다. 또 양궁 중계방송은 올림픽 때마다 익숙하게 보는 것이니까. 그런 이미지로 출발시켜놓면 뒤에서 레골라스같이 다가가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영화상에서는 강두는 계혹 삑사리나고 강두 남동생을 말이 너무 많으니까 누군가 한명은 조용해야 할 듯해서 말없는 인물로 만들었다. 만약 배두나의 캐릭터가 없었다면 너무 뻑뻑했을 거다. 야채없이 고기만 차려진 밥상 같은. 결과적으로 배두나는 상대적으로 적은 장면에 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저비용고효율 캐릭터였다.

김=세트로 만든 매점에 물건이 포화상태다. 훔쳐가도 꽉 차 있고.

봉=실제 한강 둔치 매점을 가보면 그렇다. 특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여의도에 가보면 더 그렇다. 영화에서 매점은 중요한 공간이다. 바이러스 선포 뒤 둔치는 사막화되고, 매점은 오아시스화된다. 매점은 단순하지만 영화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공간이다. 현서는 매점 문 열고 나가는 순간 변을 당하고 가족은 현서를 찾다가 지치면 매점에 모인다.

김= <교>(다리)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구상중이었는데, 한강 다리, 특히 원효대교 돌아가는 모습 같은데서 매혹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강 다리들은 바로크적이기도 하고 그로테스크하며 또 무식하게 막 지었지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하여튼 그러다가 봉준호가 괴물영화를 한강 다리 배경으로 만든다고 해서 슬프게도 창작을 중단했다.(웃음)

봉=한강다리가 이상하다. 무식하고 말도 안 되는데 굉장히 압도적이고 초현실적인 느낌도 있다. 괴물로 말하자면 과학자가 나와서 괴물에 대해 설명하는 다른 괴물영화와 달리 우리 괴물은 설명할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웃음) 시나리오를 쓰면서 구상했던 전개는 있다. 이 괴물이 2000년 6월 탄생해서 물고기만 먹으면서 크다가 처음 맛본 인육이 영화 초반 한강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는 인물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때 처음 인육을 맛 보고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한강 똥물의 물고기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둔치로 올라와서 사람 먹은 거지. 아나콘다처럼 엄청난 양의 사람을 먹고 오랫동안 소화시킨 뒤에 뼈를 뱉어내는 거다. 자세히 보면, 1차 습격 뒤로 괴물이 사람을 쌓아만 두고 안 먹는데 포만감 상태에서 음식물을 쟁여 두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처음 먹었던 대량의 뼈를 토한 다음 쌓아두었던 사람들을 먹고 가둬둔 현서도 괴롭히는 거다. 그러고나서 한참 뒤 비상사태 선포로 텅비었던 한강에 사람들이 모이니까 오랜만에 진수성찬을 향해 달려가면서 클라이막스가 된다. 이런 괴물의 시점 이야기를 누가 영화에서 설명해줬으면 좋았을텐데(웃음).

김=이 영화에서 보면 제일 철 든 사람들 보면 강두의 아버지인데 중간에 죽어버린다.

봉=강두 아버지가 그렇게 되면서 가족이 흩어진다. <반지의 제왕>때 간달프가 죽을 때를 떠올리며 그렸다. 거기서도 간달프가 어둠속으로 떨어지고 나서 원정대가 뿔뿔이 흩어진다. 이 영화는 거기서부터 2막이 시작되는 셈이다. 그렇게 흩어진 가족들이 마지막에 원효대교 쪽으로 집결하게 되는 거고.

김=특별한 함의가 있다기 보다는 서사적인 장치네.

봉=그렇다. 그 캐릭터는 그 세대의 전형적인 아버지다. 변희봉 선생이 그 동안 그로테스크한 역을 많이 해서 오히려 평범한 역할을 하는게 배우와 캐릭터 사이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좋을 것같았다. 준비하지는 않았던 거지만 유언일 수 있는 말을 할 때 자식들은 얘기 안 듣고 다 자고, 본인은 고생하면서 자식을 키웠지만 아래 세대가 안 들어주는 거다.

김= 이런 비교를 안 좋아 하지만, 현서역의 고아성은 <장화, 홍련>에서 문근영이 등장할 때 느낌, 스타탄생 같은 느낌이 있었다.

봉=시각효과의 짐이 너무 무거워서 10톤짜리 트럭 1천대를 이빨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웃음). 배우마저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면 거의 자살하지 않을까 싶어 잘 아는 배우들을 캐스팅했는데 현서는 너무 중요한 역할이라 뉴페이스가 필요했다. 오디션을 많이 했다. 오디션 할 때보다 촬영 때 많이 자라서 당황하긴 했는데 기가 세서 변희봉, 송강호 사이에서도 전혀 밀리는 게 없더라. 이 친구가 촬영할 때 중1이었는데, 매점 안에서 노닥거리는 장면에서 송강호가 애드립도 많이 하는데 다 받아치더라.

김=관객에게 정독을 요구하면서 또 봉 감독식의 엇박자 리듬도 타게 한다는 게 쉬운 영화보기가 아닐 수 있다.

봉= 내가 그렇게 난해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여름방학 어린이 관객 겨냥 영화로 만든건데, 문득 공포가 밀려온다(웃음).

김=용가리나 왕마귀 영화는 아닌 것 같다(웃음). 특히 상업영화의 관습적 결말과 다르게 중요 인물을 결말에서 처리하는 방식이 허탈하고 공정하지 않다는 느낌까지 든다.

봉=처음 시나리오가 나왔을 때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찬반이 반으로 나뉘었지만 결말이 바뀌지는 않았다. 그 부분의 딜레마는 없었고, 죽음이 의미가 있는가, 그 죽음이 헛되지 않는가가 중요했다. 물론 비극이긴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관객에게 위로를 준다고 생각했다. <친구>나 <공동경비구역 JSA>처럼 오히려 비극적 엔딩이 한국에서는 상업적 감각처럼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었던 것같다.

김=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관객을 조정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괴물>에는 그게 안보이고 한강의 기적이나 성수대교 참사 같은 알레고리를 억지로 끌어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게 좋아보였다. 괴물의 크기가 너무 크지 않았던 것도 그렇고.

봉=나로서는 지금까지 만든 세편 가운데 영화적 재미에 가장 집착했던 작품이다. 장르적 관습을 깨면서도 그 클리셰를 따라가는 장면도 많았고. 괴물영화 장르에 본래 유치한 풍자적 기능이 있는데 <괴물>에서 굳이 풍자를 위해 독극물 방류 사건을 만든 게 아니라 2000년 주한미군 독극물 무단방류사건을 보면서 아전인수식으로 내 영화를 위한 사건이다 생각했다. 한강에서 괴물이 나온다는 오래 전 구상에 괴물의 기원은 이거다라고 붙은 거다. 그러다가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펠리컨이 물고기를 운반하는 걸 보고서 죽이는게 아리나 납치하는 괴물이라는 발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김=지금까지 컴퓨터그래픽을 많이 활용했던 한국영화는 대체로 실패했는데 이영화에서는 그래픽이 깔끔하게 딱 떨어진다. 한정된 예산에서 포기해야 했다거나 아쉬웠던 점은 없나.

봉=어차피 한정된 예산이라 차라리 그 제약을 즐기면서 하려고 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는 컴퓨터그래픽 한 숏 만드는 데만도 1억원이 넘게 드는 데 그렇게 비교하면 이 영화의 괴물 숏에만 120억원이 들어가야 하는 거다. 예를 들어 <죠스>를 찍을 때 모형 상어가 고장났을 때 스필버그가 그 유명한 죠스의 시점숏을 연출해서 문제를 해결했던 것처럼 괴물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괴물을 찌른 작대기가 부르르 떠는 걸 보여주는 식으로 최대한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히려 연출의 재미를 더 느낄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괴물의 실체 없이 촬영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한강에 배우들을 비명지르며 뛰어다니게 하는 것도 민망하고, 스탭들까지 찍은 필름을 보면서 이게 뭐예요 그러니까 편집할 때까지 무척 힘들었다. 한마디로 할 짓이 아니었다.

김=다음 작품 계획은 뭔가.

봉=두번 다신 괴물영화는 안 할거다. 컴퓨터 근처에 가는 영화도 안 할 거다. 스탭들도 하도 고생을 해서 한강 쪽으로 오줌도 안 눈다더라. 차기작은 엄마와 아들 이야기인데 그래픽 같은 곳에 에너지 빼앗기지 않고 연출에만 집중하는 무척 아날로그적인 영화가 될 거다. 그 다음 작품으로 <설국열차>라는 제목의 프랑스 만화를 판권계약했다. 그건 규모도 좀 크고 에스에프적인 성격도 있어 준비기간이 꽤 필요한데 판권 만료가 2011년이라 부지런히 두 작품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사진: 김경호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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