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대도시들에서, 2006년 월드컵을 보기 위해 대형 화면 앞에 모여든 군중이 또다시 늘어났을 것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휴대폰 같은 사적인 영상이 대세를 이룬 요즈음, 이런 대형 화면은 집단적 감정에 대한 필요를 보여준다. 한국영화는 종종 동시대의 이런 증후를 반영해준다. 그래서 우디네영화제에서 선보인 몇몇 작품들과 올 여름 파리 시네마 축제의 한국영화 회고전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들 중에서 뛰어난 작품 중 한편은 민규동 감독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모든 점에서 현재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과 비교할 만하다. 그것이 <광식이 동생 광태> 같은 10대 코미디물이건, <연애>와 같은 멜로건, <여고괴담4: 목소리> 같은 판타지건, 또는 <6월의 일기> 같은 스릴러건, 현재의 한국영화는 차가운 타일 위에 깨진 유리 조각 같은 분리된 존재로 가득 찬 천체를 묘사한다. 편모나 편부라든가, 전반적인 침묵 속에서 따돌림당하는 고교생, 수줍음이 많아 아직까지도 미혼인 30대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전형들이 선보였다. <여고괴담4: 목소리>의 귀신은 이 현대적 주인공들의 상황을 요약해준다. 다시 말해 무관심 속에서 해져 닳는 먼 곳의 목소리인 것이다. 친구가 자기의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학교 방송의 전파를 통해서이다. <연애>에서 섹스는 가격이 매겨져서만 존재할 뿐이고, 부드러운 애정의 감정은 단지 전문화된 유료 전화 서비스의 얼굴없는 목소리만을 위해 남는다.
몇몇 작품은 명확한 사실을 넘어서서 초현대적 고독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과 영화다.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패거리 중 재미난 녀석이 여자를 꼬실 때, 비디오 목록 책자를 가죽으로 제본해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길>의 줄리에타 마시나 얼굴을 감상할 줄 알게 될 때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 것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형사와 정신과 의사는 서로 다투지 않고는 한마디도 못 나눈다. 그렇지만 그녀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그 유명한 오르가슴 장면을 흉내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이윽고 그들이 나누게 되는 첫 키스는 거실 텔레비전 화면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의 키스와 상칭을 이룬다. 극장 사장과 가판대 여주인의 경우, 전 경험이 서로를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은 영화를 연출하게 되고, 사랑하는 여인은 그 순간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의 역을 맡게 된다. 이런 운명적 만남을 가로질러 민규동 감독은 영화가 얼마만큼 공통적인 자산이며 나이, 돈, 교육 혹은 단순히 삶 자체의 차이로 인해 갈린 관객이 하나의 감정 주위로 모일 수 있는 장소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각자가 개인의 작은 화면에 빠져들어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극장에서 하나의 문화를 나누고, 모두를 위한 단 하나의 커다란 화면을 나누는 것이다. 게다가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아마르코드>에서 우디 앨런 감독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까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민규동 감독도 포함해서 그토록 많은 영화인들이 어두운 영화관에서 여배우들의 얼굴을 촬영했던 것은 바로 그런 데서 ‘아름다움의 감염’이라는 낯선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을 마주하고서 겪는 이런 감동적 순간을 경험한 관객의 얼굴은 오팔 빛 서광으로 빛나는 것 같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역시 이 신기한 현상에 관해 이야기한다. 즉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마지막 장면에서 빗물이 방울져 흐르는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어떤 마술에 의해 내 곁의 여자 관객에게 옮겨가 미소짓게 하고 조용히 눈물 한 방울 흘리게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