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괴물> 주연 제2전성기 누리는 변희봉씨
2006-07-28
글 : 김은형 (한겨레 esc 팀장)
“좋은 연기는 감독이 만들지”

“칭찬받으면 기쁜 건 사실이지만 사실 배우들 연기야 종이 한장 차이지요. 감독이 잘 다듬은 캐릭터에 맞춰가는 거니까 좋은 연기의 가장 큰 부분은 감독 몫이에요.” 27일 〈괴물〉 개봉을 앞두고 인사동에서 만난 변희봉(64)씨는 자신의 연기에 쏟아지는 찬사를 주저없이 감독의 공으로 돌렸다. 영화에서 자식 잃은 아들 강두(송강호)를 감싸주고 손녀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박희봉은 1965년 라디오 성우로 데뷔한 변씨가 연기해온 인물 가운데 가장 평범하고 살갑다. “우리 자랄 때 환경이 그랬듯 곤궁한 환경에서도 식구들을 보듬는 아버지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는 꿈을 40년 만에 이룬 셈이다.

〈플란더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까지 봉준호 감독의 모든 연출작에 출연하면서 “감독이 똑같이 웃고 있어도 저게 아니라는 건지, 오케이라는 건지 한눈에 알아차릴 정도”로 익숙해졌지만 변씨는 둘의 관계를 친한 선후배나 부자지간 같은 친숙함 대신 감독과 배우 사이로 규정짓는다. “매점에서 졸고 있는 세 자식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할 때 박희봉이 눈물에 젖으면서 넋두리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시나리오에서 그 부분이 특히 좋았는데 잘려나갔어요. 아쉬웠죠. 그런데 편집된 걸 보니 저런 게 앙상블이구나 하면서 무릎이 탁 쳐지더군요. 누가 뭐래도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지요. 연기자가 앞서 나가면서 자기 욕심을 차리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연기인생 접을즈음 봉감독과 인연, 모든 작품 출연 눈빛만 봐도 통해

〈플란더스의 개〉 이후 여러 영화에서 비중 있는 역을 연기해오며 젊은 관객들에게도 그 이름을 각인시켰지만 봉 감독과의 인연이 없었더라면 배우 변희봉은 잊혀진 이름이 됐을지 모른다. “회사원뿐 아니라 배우들에게도 아이엠에프 타격은 큽니다. 역할이 들어오지 않는 거예요. 게다가 나이든 배우들의 급료를 깎는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그래서 식구들에게도 양해를 구하고 서울 생활을 정리하던 참에 봉 감독에게 전화가 왔죠.” “더 버티면 추해진다”는 몇 번의 거절 끝에 만난 봉 감독이 〈수사반장〉 등에서 그가 했던 “잡범 중의 잡범” 연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녹았다. “배우에게 자기 알아주는 사람 만나는 것만큼 기쁜 게 또 어딨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으니 경비원인데다 개까지 잡아먹는 인물이니 다시 안 내키데요. 딸내미들 결혼도 시켜야 하는데 말이지.” 감독의 지극정성 설득으로 출연은 했지만 완성된 영화를 볼 생각도 안했다. “개봉된 다음에 감독한테 같이 영화 보러 가자고 전화가 왔어요. 안 갈 수도 없고 매점에서 소주 한병 사서 그 자리에서 다 마시고는 서울극장엘 갔는데 야, 저런 게 영화구나 깜짝 놀랐지요.”

그 이후 접힐 뻔한 변씨의 연기인생은 2막을 열었고 〈선생 김봉두〉로 만난 장규성 감독의 새 영화 〈이장과 군수〉에서 백사장 역을 맡아 다음달부터 촬영에 들어간다. “내가 텔레비전에서 점쟁이 역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까. 연기 배우느라 점쟁이들도 많이 만나봤는데, 정말 인생에는 운이라는 게 있는 거 같아요. 거의 접었던 연기를 다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것도 운이죠. 그래서 정말 이 길이라고 생각하면 지금 힘들어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후배들에게도 말하고 싶어요.”

사진 강창광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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