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장을 겨냥한 한-미 영화 합작이 잇따르고 있다.
나우필름(대표 이준동)은 미국 독립영화사 ‘박스 3’(VOX 3)와 합작 계약을 맺고 지난 24일 뉴욕에서 <네버 포에버>의 촬영에 들어갔다. 하버드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는 김진아 감독이 연출을 맡고, 그밖의 모든 스태프들은 미국 쪽에서 담당한다. 주연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무간도> 리메이크판인 <디파티드>의 여주인공을 맡은 베라 파미가가 캐스팅됐으며 상대역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하정우다. 순제작비는 280만달러로, 9월 초 촬영을 마치고 선댄스영화제 등을 거쳐 2007년 개봉한다는 계획이다.
아이에이치큐(대표 정훈탁)는 100% 미국 현지 인력과 현지 촬영으로 올해 초 <아메리칸 좀비>의 촬영을 마치고 편집에 들어갔다. 100만달러짜리 저예산 영화로, 감독은 재미동포 그레이스 리가 맡았다. 아이에이치큐는 한-미 합작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7월 초 로스앤젤레스에 지사도 세웠다. 미국 이민 초기에 아시아 각국 무술인들이 무예 대결을 펼치는 코믹 액션물 <아메리칸 짬뽕>을 한-미-일 합작으로 추진한다는 방침 아래, 영화에 앞서 만화를 먼저 내기로 하고 일본의 출판·영화사인 가도카와에 만화제작을 의뢰해 놓고 있다.
엘제이필름(대표 이승재)도 올해 초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작한 미국의 준메이저 영화사 포커스필름과 합작 계약을 맺고 <프린세스 줄리아>를 제작 중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인 이구와 그의 미국인 부인 줄리아 멀록의 실화를 다룬 이 영화는 순제작비 2500만달러를 비롯해 모든 비용과 수익을 한국과 미국이 5 대 5로 나누기로 했다.
합작 영화의 이점은 미국에서 미국 영화로 등재돼 홍보·마케팅이 쉽고, 영어로 제작돼 언어·문화 장벽을 낮출 수 있으며, 미국 쪽 합작사의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 쪽 배급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 등이 꼽힌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감독·배우들을 미국에 알려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미국인들의 친숙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훈탁 아이에이치큐 대표는 “한국 영화는 지역성이 강해서 미국에서 수입해도 성공하기 힘들다는 게 미국 쪽 영화업자 대다수의 반응이었다”며 “미국 시장에 다가가려면 판매가 아니라 초기 제작단계에서부터 합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한국 영화 개봉 편수가 지난해 80여편에서 올해 100여편으로 급증하는 만큼, 국내 시장만으로 도저히 수지를 맞출 수 없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세계 영화 시장의 40%가 넘는 미국 시장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미 합작 ‘네버 포에버’ 제작 나우필름 대표 인터뷰
“바람직한 미국시장 진입로 뚫겠다”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는 지난 24일 뉴욕에서 <네버 포에버>(한국명 미정)를 크랭크인함으로써 최근 구체화하고 있는 일련의 한·미 영화 합작 프로젝트 가운데 스타트를 끊었다. 이 대표와 <네버 포에버>의 행보는 충무로 전체의 관심사가 되고 있기도 하다.
-<네버 포에버>는 <인어공주>에 이은 나우필름의 두번째 영화다. 어떤 내용인가.
=미국에서 성공한 재미동포 2세가 미국 여자와 결혼한다. 이 재미동포 집안은 아들을 중시하고, 미국인 여자도 아들을 낳아주고 싶어하는데 잘 안된다. 급기야 여자는 남편을 위해 남편 몰래, 다른 한국인 남자를 통해 임신하려 한다. 그리곤 약간 놈팽이 같은 남자를 한명 만나는데, 거기서 이상한 감정이 싹트게 된다. 조금 센 이야기다. 영화의 대사는 영어 7, 한국어 3 정도의 비율이다.-미국쪽 합작사인 ‘박스 3’은 어떤 영화사인가.
=한국에 개봉한 <세크리터리>와, 곧 개봉할 니콜 키드먼 주연의 <퍼(fur)> 같은 영화를 제작했다. 독립영화사이지만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회사이다.-주연인 미국인 여자 역으로 캐스팅된 베라 파미가는 주목받는 신인으로 알고 있다.
=미국쪽 캐스팅 디렉터와 따로 계약을 맺었는데 베라를 교섭해왔다. 무척 반가왔다. 베라는 선댄스영화제,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 등으로부터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뉴스위크>에서 가장 주목되는 배우 2위로 꼽힌 유망주이다.-미국과의 합작하는 데에 애로사항도 많을 것 같다.
=배우노조, 운송노조 등등으로부터 영화 제작 허가서를 받아야 워킹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 이걸 모른 채 일을 추진하다가 뒤늦게 알고 애먹었다. 또 스태프들의 인건비와 별도로 운송 노조의 현장 감독에게 주는 수당 등 노조에 충당되는 비용이 전체 제작비의 20% 가까이 든다.-미국은 한국과 달리 스태프와의 계약이 매우 엄격하게 시간 단위로 정해진다고 들었다.
=월~금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를 정확히 지킨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건 카메라 레일 설치하는 사람 등 단순직들뿐이다. 촬영이든 조명이든 영화의 질과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퇴근하지 않는다. 토, 일요일도 나온다. 계약을 1주일 단위로 하는데, 정확하게 지키는 건 이것 뿐이다.-한국과 비교할 때 스태프 비용은 어떤가.
=촬영 기간을 5주로 하고 계약을 맺었다. 이게 지켜진다면 한국보다 비싸지 않다. 미국쪽 계약은 매우 정확하다. 촬영감독 같으면 주당 계산되는 임금 외에 프리프로덕션 비용으로 20일치 임금을 더 쳐준다. 촬영감독의 퍼스트 조수는 3일, 세컨드는 2일로 쳐준다.-이번 합작에 의미를 둔다면.
=한국영화가 미국에 진입하는 방식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큰 비용 들이지 않고 미국의 영화 산업, 시장, 제작환경을 제대로 두드려보고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