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는 참 운이 좋은 감독이다.
그의 최근 두 영화 〈살인의 추억〉과 〈괴물〉 두 편을 놓고 보면, 한국 영화에서 유사한 예를 찾기 힘들 만큼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의 성원을 받으며 개봉했고 개봉한다. 여기서 성원이라 함은, 영화를 잘 만들었다고 보내는 찬사를 빼고 하는 말이다. 영화 외적으로 이 두 영화의 개봉 시점은 절묘했다.
〈살인의 추억〉이 개봉한 2003년 5월은, 한국의 상업영화들 가운데서도 성의를 갖고 만든 진지한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한 반면 관성에 편승한 조폭·코미디 영화들이 흥행몰이를 하는 현상이 정점에 이르렀던 때였다. 쉽게 말해 잘 만든 영화와 돈 버는 영화의 괴리가 너무 커진 것이었다. 충무로의 제작자와 감독들의 위기감은 정신적 공황 상태에 가까울 정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때 〈황야의 무법자〉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봉준호가 나타났다. 영화인들, 영화 기자들 모두 이 영화마저 관객들에게 외면당하면 한국 영화는 희망 없다는 절박감 속에서 자발적인 응원을 펼쳤다. 〈살인의 추억〉이 쉽고 명쾌한 영화가 아님에도 대다수 신문, 잡지의 기사들은 이 영화가 어려운 영화로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흥행이 터졌고, ‘잘 만든 영화가 손님도 끈다’는 교훈을 다시 세우며 충무로엔 정의가 찾아들었다.
그리고 3년 뒤. 제작비 100억원을 넘는 대작들이 흥행이나 비평에서 모두 잇따라 실패하고 스크린쿼터는 축소되고, 그 와중에도 한국 영화 제작편수는 급증하면서 편당 수익률은 급락했다. 불난 데 기름 붓듯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한국에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 영화인들과 한국 영화 팬들이 목 빼고 구원자를 기다리는 시점에서, 황야의 무법자 봉준호가 돌아왔다. 이미 서너달 전부터 〈괴물〉마저 흥행에 실패하면 한국 영화가 본격적인 침체기로 접어들 수 있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괴물〉도 영화인과 관객의 자발적 응원이 극대화한 상태에서 개봉한다.
물론 운만 갖고 되는 일은 많지 않다. 경기의 결정적 국면에서 타석에 들어섰을 때, 안타를 쳐내는 건 전적으로 실력의 문제다. 또 봉 감독은 장편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에서 흥행뿐 아니라 비평에서도 냉대를 받은 쓰라린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특별해 보이는 건, 대다수 잘나가는 감독들이 자기 영화에 대한 지지자뿐 아니라 적대자도 함께 만들어내는 반면 봉 감독에게는 적대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를 찾는 이유를 장르의 변용, 촬영, 편집 등등 영화적(혹은 영화미학적) 재미의 추구와 영화 속에서 동시대를 보고 싶은 욕구로 거칠게 나눠놓고 보자. 90년대 후반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맞은 뒤, 실력 있는 감독들이 전자에 몰두하면서 후자가 소홀해진 경향이 있다. 봉준호는 후자를 소홀히 하지 않는 드문 감독이다. 영화들이 사회성 있는 소재를 피해다닐 때, 그는 한국 사회를 영화에 담아올렸다. 그게 대다수의 자발적 지지자를 거느리는 이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