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괴물〉을 꺾고 영화계 최고의 이슈가 된 건 김기덕 감독이다. 베니스나 베를린 영화제 수상 때도 받지 못했던 관심을 데뷔 10여 년 만에 한꺼번에 받는 것 같다. 관심의 초점은 영화가 아니라 그의 입에 있다. 〈시간〉 시사회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괴물〉의 흥행에 대해 꺼내놓은 말을 시작으로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언급한 이야기, 21일 연합뉴스에 보낸 사과문에 대한 반응까지 김 감독은 연일 누리꾼들로부터 ‘두들겨 맞고’ 있다.
사실 김 감독이 던진 아슬아슬한 말들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니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상식’으로 행동했다면 그는 〈괴물〉의 흥행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을 피해 가거나 우회적으로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직접적인 이야기를 꺼냈고, 그게 관객, 또는 한국사회 전반을 도발하는 무모한 싸움처럼 번져나갔다.
자신이 던지는 이야기가 일으킬 거부감을 김 감독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김기덕 감독은 마치 〈악어〉나 〈나쁜 남자〉등 그가 만들었던 영화의 주인공을 닮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칠게 도발하고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지만 이 사회의 질서를 밟고 일어선 승리자나 가해자가 되지 못하고 결국 상처받은 피해자의 얼굴을 숨기지 못하는 그의 인물들처럼 말이다.
그의 영화어법이 그래 왔듯이 김기덕 감독의 코멘트에는 유연하거나 매끄러운 수사가 없고 어떤 말들은 촌스럽게 느껴질 만큼 직설적이다. 그런 말들은 진위를 떠나 ‘비위’를 건드린다. ‘비위’에서 일단 탈락한 그의 영화들이 관객에게 접근하는 데 많이 실패했듯이 그의 말들도 듣는 이의 비위를 거슬리고 그것이 김기덕 감독에 대한 통념들과 섞이면서 말의 의미가 소통되기보다 특정한 이미지로 먼저 다가가는 것 같다. 물론 그가 한 말에는 가시가 많았지만 말의 내용 자체가 그렇게 뭇매를 맞을 만한 것이었을까. 이를테면 ‘〈괴물〉은 형편없는 영화고 그걸 보는 관객도 후지다’라거나 ‘내 영화를 안 보는 관객들은 열등하다’라고 그가 말을 했다면 그것은 마땅히 비난을 받을 만하지만 “내 영화는 쓰레기였다”는 자조-물론 그 말은 대단히 냉소적이기도 하다-까지 공분을 얻어 마땅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지금 김기덕의 ‘설화’ 사건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그의 영화가 소비되는 방식과도 꽤나 닮았다. 2000년대 초 한 설문조사에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였던 관객 중 상당수가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김기덕의 발언에 대해서는 4천개가 넘는 댓글이 붙지만 신작 〈시간〉에 대한 관심은 그만큼 높지 않다. 그래서 이 개봉 직전의 악재에 대해 한국 배급사인 스폰지에서 “개봉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오히려 느긋해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최근 김 감독의 발언에 격분한 관객 또는 누리꾼 상당수가 애당초 김 감독의 관객 또는 잠재관객이 아니라는 말이다. 감독과 관객이 만나는 유일하고 절대적인 소통의 방식인 작품은 튕겨 나가고 스캔들만이 볼품없는 덩굴나무처럼 뻗어나가는 풍경은 한국 영화계의 또다른 궁핍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