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가 만난 사람]
<괴물> <우아한 세계> <시크릿 선샤인>의 배우 송강호
2006-09-04
글 : 김혜리
사진 : 이혜정
사냥꾼의 직감으로, 쾌도난마

송강호는 진작부터 ‘괴물’이라 불린 배우다. <넘버.3>가 세상에 나온 1997년부터다. 그는 농부보다 사냥꾼에 가깝다. 수확을 위하여 씨 뿌리고 김매고 기다리는 것은 도무지 송강호의 스타일이 아니다. 목표물을 포획하기 위한 준비는 예리한 후각과 잘 이완된 근육, 제대로 간수된 무기로 족하다. 어떻게 덤벼들어 잡을 것이냐를 그에게 꼬치꼬치 묻지 말라. 사냥감이 눈앞에 나타나면 자연히, 아니 눈앞에 나타나야만 알 수 있는 문제다. 송강호는 바람 냄새를 킁킁대고 이따금 아랫배를 긁적이며 움막에 느긋이 웅크리고 있다가 어슬렁어슬렁 숲으로 걸어들어간다. 일상에서도 송강호는 여러 번 손길이 닿지 않은 날것을 좋아한다. 장비가 많은 낚시가 싫고, 표를 사서 기다려야 하는 극장 가기가 내키지 않고, 운동복 갈아입고 샤워를 해야만 하는 헬스클럽이 질색이다.

<괴물>의 상영관에 1천만 넘는 관객이 범람하는 동안, 송강호는 신작 <우아한 세계>를 절반쯤 찍었다. 한재림 감독(<연애의 목적>)의 <우아한 세계>는 샐러리맨과 진배없는 40대 조직폭력배의 권태와 피로를 말하는 영화다. 이를테면, ‘우아한 세계’는 건달이 칼을 맞아 죽을 뿐 아니라 과로사로도 죽을 법한 세계다. 한재림 감독은 송강호와의 작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개의 연기는 여러 번 테이크를 갈 경우 일정 목표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되기 쉬운데 송강호 선배는 매번 전혀 다르게 연기한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봉준호 감독이 ‘워낙 창의적인 배우라 편집실 가면 다 붙으니 걱정 말라’고 장담하더라. 과연 5회차를 넘어가니 좀더 창의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는 충족감을 느꼈다. 이것은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은 컷이 남아돌아 고민이다.” 모자, 주머니, 소매, 어디를 들춰도 토끼가 튀어나온다는 이야기다. 주연배우로서 송강호는 <반칙왕> <공동경비구역 JSA> <복수는 나의 것> <살인의 추억> <효자동 이발사> <남극일기> <괴물> 등 굵직하거나 선명한 내러티브를 가진 영화를 선택했다. 각이 뚜렷한 이야기에서 자연히 발생하는 전형성을 송강호의 연기는 매번 독창적으로 해체했다. <우아한 세계>를 마치는 대로 송강호는 이창동 감독의 <시크릿 선샤인>에서 전도연과 공연하고, 2007년에는 김지운 감독의 새 장편과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 합류할 예정이다.

바위가 거기 있다는 걸 믿기 위해 바위와 교감할 필요는 없다. 송강호의 연기도 그렇다. 송강호는 “액션!” 사인과 함께 순식간에 시간의 지층을 쌓아버린다. 한 인간을 할퀸 기억, 그리고 그것이 아물었다 다시 덧나서 앉은 딱지까지 직감으로 표현한다. <살인의 추억>의 에필로그에서 비극의 현장을 다시 찾은 전직 형사 박두만의 얼굴과, 한때 둔해빠진 잠꾸러기였던 <괴물>의 박강두가 한강의 기척에 소스라치는 표정은, 죽었건 살았건 ‘적’(敵)은 이 남자의 남은 생애를 위협할 거라는 사실을 함축한다. <우아한 세계>의 촬영 일정이 바뀜에 따라 송강호와의 인터뷰는 부산에서 서울로 옮겨졌다. 송강호는 대화 도중 “부산에서 만났으면 앞바다에서 그냥 생선을 냅다 건져올려서 내는 기막힌 횟집에 가는 건데!”라고 세번쯤 입맛을 다셨다. 고기를 잡아 회 치는 시늉을 하는 그의 두툼한 손을 보면서 나야말로 이 불가사의한 배우를 냅다 건져올리고 싶어 속이 탔다 . 내가 지닌 것이 문장이 아니라 덫이나 그물이었더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세번쯤 혀를 찼다.

-이상한 노릇입니다. 당신은 영화 속에서 번번이 자식을 잃거나 빼앗깁니다. <복수는 나의 것>과 <괴물>에서는 딸을 납치당하고 <남극일기>에서는 아들의 자살이 암시되고 <효자동 이발사>에서는 고문당한 아들이 불구가 돼서 돌아왔잖아요.
=촬영 중인 <우아한 세계>에서는 제가 40대 가장인 조직폭력배로 분하는데 역시 직업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아빠를 싫어하고 멀어져가는 이야기예요. 특별히 제 캐릭터가 그렇다기보다 많은 한국영화가 아버지로서 갖는 갈등을 이야기 장치로 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영화 <아이 엠 샘>을 보셨는지. 남들과 경쟁하며 사회생활을 하기 힘든 남자라는 점에서, 또 사랑했다고 여긴 여자가 아이만 낳고 떠났다는 점에서 <괴물>의 강두는 숀 펜이 연기한 샘과 처지가 비슷해 보였어요. 지금까지도 송강호씨는 비주류적 인물을 자주 연기했지만 건달일지언정 모종의 사회적 ‘구실’을 가진 캐릭터들이었는데, 강두는 그들보다 더욱 변두리에 있는 인물입니다.
=<아이 엠 샘>은 얼핏 봤어요. 샘에겐 장애가 있지만, 박강두는 주류 사람들보다 태평하고 순수하게 사는 사람일 뿐 장애를 지닌 인물로 보진 않았어요. 그러나 역시 보통과 다른 인간이라 연기하기 어려웠죠. 평균의 이성적 인간은 어떤 현상을 받아들이고 체화한 다음에 자기 표현이 나가잖아요? 그런데 박강두는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사적으로 반응하니까 이걸 어떻게 연기할지 난감한 경우를 맞았죠. 예를 들면 <살인의 추억> 박두만이라는 인물은 시대적 배경과 지역성, 나이와 성격, 시골 형사라는 직업의 아우라가 잡히는데 박강두는 그런 것들이 없으니 컨트롤하기 힘들었어요.

-강두는 ‘아빠’라는 소리에만 반응하는 남자입니다. 심지어 현서와 무관한 위기, 예컨대 아버지 박희봉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도 “현서, 현서!”를 외치잖아요.
=딸에 대한 그런 집중력이, 봉준호 감독이 강두라는 인물의 묘사에 사용한 선(線)이죠. 아버지 박희봉이 죽는 시퀀스는 현장에서 많은 것을 뽑아낸 장면이라, 녹음실 가자마자 봉 감독이 “이 장면은 절대 후시녹음하면 안 된다, 동시녹음을 살리자”고 했어요. 유심히 들어보세요. 그 장면 빗소리가 무척 클 겁니다. 중요한 장면이다 싶으면 봉 감독은 며칠 전부터 자꾸 ‘언질’을 주는 스타일이에요. 혼잣말하듯이 “흠 그거, 중요한 장면인데…” 해놓고 삭 사라지고 조금 있다 다시 “참 중요한 장면이야” 중얼거리고 휙 없어져. (좌중폭소) <살인의 추억> 에서 터널 앞에서 “밥은 먹고 다니냐?” 하는 장면 찍을 때도 3일 전부터 나를 따로 불러서는 “음, 그 장면에 무슨 말이 있을 것 같은데…” 하고는 쓱 가버려요. (웃음) 그럼 난 사흘 동안 무슨 말을 할까 머리를 싸매는 거지.

-신기한 점이 있어요. “아빠!”라고 불릴 때를 제외하면 게으르고 생각도 깊지 않고 명예욕이나 정의감은 더군다나 없는 강두가 어째서 현서가 잡혀가기 전부터 괴물에게 그토록 용감하게 덤비는 거죠?
=신기하다고 했지만 사실 설명이 안 되는 딜레마죠. (웃음) 영화가 좀더 길어서 왜 강두가 컨테이너를 습격한 괴물에게 어영부영 덤비는지 이유를 짚고 넘어갔더라면 좋았을 텐데. 감독님과 저는 그 문제에 대해, 음, 전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죠. (웃음) 캐릭터에 관한 상의도 워낙 피차 바쁘다보니 “언제 한번 해야 할 텐데”하면서 미루다가 결국 낼모레로 촬영이 닥친 거야. 만날 시간이 없어서 결국 운전 중에 통화를 했어요. (핸들 돌리는 시늉을 하며 높은 음성으로) “아! 감독님? 낼모레가 촬영이네. 박강두란 인물을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강두, 그거 바보예요? 바보?” 그러니까 “바보는 아닌 것 같아요” 하기에 “아, 그래요? 그럼 제가 지금 운전 중이라. 뭐, 바보 아님 됐네!” 그러고 전화 끊었죠. (좌중 폭소) 그게 이후 6개월 촬영 통틀어 박강두 캐릭터에 대한 대화의 전부예요.

-<괴물>을 보면서 “이 영화는 손을 잡는 행위가 무척 중요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현서는 마중 나오다 자빠진 아빠 손을 잡고 짐짝을 끌듯 앞장서고, 괴물이 둔치에 출현하면 강두가 현서의 손을 잡고 달리죠. 그리고 한강 둔치를 폐쇄하는 장면에서는 다시 강두가 아버지 박희봉의 손을 잡고 유치원 아이처럼 졸졸 따라가잖아요.
=그리고 나중에 현서가 괴물 뱃속에서 세주를 꼭 잡고 있죠. 마지막에는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닌 사람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 그게 봉 감독이 원했던 이야기를 대변하는 장면이라고 봐요. 처음에는 가족끼리 손을 잡고 잡히며 이끌고 끌려가고 나중에는 가족이 아니지만 더 약한 사람을 붙잡고 가는 것.

-<괴물>에서 강두는 비닐 커튼에 격리되고 감염 방지용 노란 자루에 둘둘 싸이는 등, 유난히 어떤 포장에 갇히는 장면이 많았어요.
=제 생각엔 박강두라는 인물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규칙을 따라가는 인물이 아니라서 자꾸 ‘싸이는’ 것 같아요. 주류 사람들이 볼 때 박강두는 포장으로 ‘싸서’ 치워둬야 하는 대상인 거지.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는 동시대 다른 중요한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할 때, ‘영락없는’ 한국영화라는 점이 두드러진다고 생각합니다. 유머부터 공간감각까지, 오로지 한국사회만 낳을 수 있는 요소들로 이뤄진 영화라, 국제영화제에서 봐도 일본영화나 다른 아시아영화와 뚜렷이 구별될 듯한 인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봉 감독님은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씨가 그러한 영화의 공기를 형성하는 데 매우 결정적인 배우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봉 감독님은 1.85 대 1이라는 화면비율을 선호하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가장 한국적이고 한국 관객에게 정다운 비율이 아닌가 해요. 미학적으로는 모르겠지만 봉 감독님 말씀대로 배우에 대한 존중이라는 측면에서도 좋은 비율인 것 같고요. 정답은 없겠죠. <공동경비구역 JSA>는 슈퍼 35mm를 썼는데 박찬욱 감독님은 심지어 배우 클로즈업에서도 2.35:1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저 역시 예컨대 눈동자의 클로즈업을 그 비율로 봤을 때 더 좋은 느낌을 받기도 했고.

노력은 뭔 노력을 해요, 그냥 현장에 가는 거지!

-고향이 김해평야 부근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뭘 하고 놀았는지 궁금해요.
=산도 없고 바다도 없고 오직 평야였어요. 낙동강이 있긴 했지만 무지 심심했죠. 막막한 빈 터에서 뭘 하고 놀지 생각해내야 했어요. 농번기가 지나면 텅 빈 논에서 축구공을 차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는데, 하도 많이 뛰어서 이듬해 봄에 모를 심으려고 보면 논바닥이 반들반들했죠.

-예술가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감은 언제 품었습니까?
=중2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어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는데 워낙 시골이다보니 연영과 입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어요. 성적이 좋았다면 그래도 가능했을 텐데 공부는 하기 싫었고요. 시간만 보낸 거죠. 당시 전국에 5개뿐인 연극영화과에 가려면 내세울 특기가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자연스럽게 두번 떨어졌지요.

-지금 와서는 송강호씨가 연극영화과 실기시험에 두 차례 낙방한 사실이 기막히기도 합니다. (웃음)
=삼수한다고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전문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갔다가, 영장이 나오고 집안 사정도 나빠지는 바람에 자퇴하고 군대에 다녀왔어요. 제대하고 부산의 극단을 찾아가 1년 동안 민족극을 하다가 서울의 연우무대를 찾아 올라왔죠.

-배우 수업에 들어가면 누구나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처음 제거해야 할 억압이 있을 텐데요. 송강호씨에겐 무엇이었나요?
=모든 배우가 넘는 최초의 문턱은 “남이 내 모습을 어떻게 봐줄까”라는 자의식에서 탈피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하건 이것이 내겐 정답이고 절실한 행위라고 믿으면 1천만명이 수긍하는 연기가 나오지만, 남의 눈을 의식하면 그 순간 바로 앞에 앉은 단 한 사람도 설득을 못해요. 1천만명을 설득하는 힘과 바로 앞에 앉아 있는 한명을 설득하는 힘은 본질적으로 똑같아요.

-지난 인터뷰 기사들을 살펴보면 <반칙왕>의 레슬링신에서 겪은 것 같은 육체적 고통은 가끔 언급하지만, 창조적 작업 과정에 과한 고민을 토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동료배우나 가장 친밀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는 부분인가요?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부분이고, 남에게 이야기할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도 있고. 워낙 사적인 느낌이라서. 그 인물이 되려고 무슨 노력을 했냐고 묻는데, 노력은 뭔 노력을 해, 우헤헷! 그냥 거기(현장) 가는 거지!

-<조용한 가족>을 찍던 무렵부터 촬영 끝나면 편집실에 자주 간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예 스크립터가 후반작업 일정을 연락한다면서요. 편집실에 가면 어디 어떤 자세로 앉아계세요?
=제가 편집실에 가는 타이밍은 항상 밥 먹기 한 시간 전쯤이에요. 그때 가면 하루 작업한 분량을 구경하고 조금 곁에서 지켜보다가 함께 밥을 먹고 술도 한잔 할 수 있으니까. 촬영 뒤 할 일이 없어서 가는 건데 <괴물> 편집할 때는 차기작 때문에 바쁘니까 자주 안 가게 되더라고요. 후반작업을 지켜보면 사운드 하나 빼고 넣는 것으로도 영화에 큰 차이가 생겨요. 그런 부분을 하나씩 잡아가며 영화가 차츰 완성되는 과정이 흥미롭죠. “저렇게 붙이니 또 다른 느낌이네!”라고 깨닫는 재미지. 영화의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는 편집실이라고 생각해요. 감독이라는 일이 어마어마한 정신노동이고 감독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점도 후반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며 깨달은 사실이고.

-감독님들에 의하면 송강호씨는 여러 테이크를 갈 경우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주는데 편집을 하면 그 테이크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영화의 흐름을 미리 내다보고 연기를 조율할 리도 없는데 복기나 검산도 없이 어떻게 하시는 거죠?
=계산은 불가능하죠. 예를 들어 감독이 A장면에서는 다섯 가지 테이크 중 1번 연기를, B장면에는 3번에 해당하는 연기를 쓸 수도 있어요. 그런데도 편집실에서 다 붙는다면 제가 나름대로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겠죠. 표현은 달라도 하나의 본질을 벗어나지 않으면 컷이 붙을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난감한 경우도 생겨요. 1번 연기가 감독 입장에서 제일 좋았는데 현장의 다른 변수가 엇나가서 반복을 주문하면 2번, 3번은 완전히 다른 연기가 나오니까. 물론, 의도적 반복이 불가능한 건 아니고 관객은 1번과 1-1번 연기의 차이를 모를 수도 있죠. 그러나 연기하는 입장에서 1-1번은 생명이 사라진 재연에 불과하니까 곤혹스럽지.

모든 걸 쏟아냈더니, 초연해지는 순간이 오더군요

-<넘버.3>는 후딱후딱 찍는 현장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는데요.
=<넘버.3>에서 조필(송강호)의 모든 장면은 영화에 들어간 딱 한 테이크가 전부입니다. (웃음)

-<반칙왕>을 “배우로서 자신을 사랑하게 된 영화”라고 회고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데 좀더 설명해주세요.
=몸도 힘들었지만 첫 주연작이고 혼자 많은 부분을 끌고 가는 구조의 영화였죠.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그렇게 모든 걸 쏟아내고 나니까 초연해지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이 영화가 망해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내가 충무로에서 사라지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 같고, 결과에 따라 내 향후 활동이 좌지우지된다고 해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듯한 이상한 마음의 경지였죠.

-<복수는 나의 것>부터 연기의 품사랄까, 어휘가 부쩍 풍요로워진 인상입니다.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이 제 연기의 반환점이나 이정표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전작인 <넘버.3> <반칙왕>이 코믹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 데 비해 <복수는 나의 것>은 제가 갖고 있었으나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면을 드러낸 것이죠.

-<남극일기>는 후시녹음 비중이 매우 높았던 영화입니다. 언젠가 김지운 감독님은 송강호씨를 거의 완벽한 후시녹음을 하는 배우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는데요.
=참 이상해. 후시녹음은 쾌적한 녹음실에서 편히 하는 일인데도 두 마디만 하면 기가 쑥 빠져요. 그래서 1주일, 2주일, 한달에 걸쳐 나눠 녹음하는 일도 생겨요.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더위나 추위, 악조건에 시달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힘들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이미 한 차례 현장에서 한 연기를 똑같이 되풀이하고 그만한 양의 에너지를 끌어내는 일이 힘겨워서 그런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르>에서 사자 알렉스 역의 더빙을 하셨죠. 사투리 억양이 거의 없어서 조금 놀라기도 했어요.
=<마다가스카르>의 더빙은 힘들었어요. 제작사 드림웍스가 각국에서 자체 더빙을 하더라도 미국에서 원래 녹음한 배우의 연기를 똑같이 반복하는 조건을 달았고 직접 프로듀서를 녹음실에 파견해 일일이 점검했거든요. 알렉스의 원래 목소리 연기를 맡은 벤 스틸러가 5초 웃었다면, 저는 3초 웃고 대사를 하고 싶어도 안 통하는 거죠. 창작 애니메이션을 녹음하거나 우리가 원본을 녹음하면 모르겠지만 송강호라는 배우의 창의성을 전혀 넣지 못하고 언어만 바꿔 옮기는 것은 배우도 관객도 그리 흥미롭지 않은 작업 같아요. 흥행은 나쁘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었습니다.

-그럼 홍콩에서 주성치씨가 <반칙왕>의 송강호씨 역을 더빙해 개봉했을 때는 어땠습니까?
=전혀 관여하지 않았고 홍콩판을 본 적도 없어요. 스타인 주성치씨가 더빙한 것이 <반칙왕>이 홍콩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데에 큰 힘이 됐죠. 아마 홍콩에서 <반칙왕>을 산 금액보다 주성치의 개런티가 더 셌을걸요.

-송강호씨의 드문 멜로 연기 중 두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반칙왕>에서 임대호가 민영(장진영)에게 모처럼 들꽃을 꺾어 내미는데 꽃다발이 예쁘긴커녕 지저분하고 어수선했던 것, 그리고 <살인의 추억>에서 격무에 시달리는 박두만 형사가 설영(전미선)이 들고 온 링거를 꽂고 들판에 앉아 한때를 같이 보내는 장면이요.
=<반칙왕> <살인의 추억> <공동경비구역 JSA> <효자동 이발사>에서 여배우와 공연하긴 했지만 여성과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었죠. 그런 맥락에서 이창동 감독님의 <시크릿 선샤인>은 송강호 최초의 멜로영화라고 할 수 있죠. 볼 때는 모르는데 보고나면 멜로드라마임을 깨닫는 영화가 될 거예요.

-<시크릿 선샤인>은 밀양으로 내려와 부자 남편이 있는 양 행세하던 여성(전도연)이 아이를 유괴당한 뒤 겪는 방황을 그리는 영화라고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송강호씨는 그녀를 지켜보고 사모하는 옆집 노총각 역이라고 들었고요. 여자의 이야기가 흐름을 주도하는 영화로 짐작되는데요.
=문학성이 두드러진 시나리오예요. 철저히 여배우의 영화지만, 제가 분한 남자는 작품과 동떨어진 인물이 아니라 영화가 하는 이야기의 한복판에 서 있어요. 착한 남자라기보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남자죠.

<괴물>이 한국 영화발전을 저해했다는 비난, 답답했어요.

-약 10년간 성공적으로 영화연기를 계속하셨습니다. 한 배우가 특정 시기에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다면 동시대 대중이 보고 싶어하는 뭔가를 갖고 있다고 봐야 할 텐데요.
=얼마 전 문성근 선배님이 인터뷰에서 좋은 말씀을 했어요. 거대한 조직에서 교육받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얼굴이 있는데, 배우는 그 얼굴들을 찾아주는 직업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참 공감했어요. 관객은 나와 내 아버지, 형제자매가 살면서 감춘 얼굴을 송강호를 통해 보고 싶어한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상영되는 두 시간 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며 “맞아!” 그러면서 즐거워하고 극장 밖으로 나가며 다시 공식적인 얼굴로 바꾸는 거죠.

-말씀하신 그 ‘얼굴’을 드러내는 방식이 영화마다 다른데요. 출연작을 돌아볼 때, 장르가 코미디냐 아니냐와 별개로, 인물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영화가 웃음기없는 연기를 보인 작품보다 더 큰 호응을 받았다는 점을 본인은 어떻게 해석하세요?
=정확히 말해 관객이 웃음을 주는 송강호의 얼굴을 그렇지 않은 얼굴보다 더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관객은 다만 즐거움을 심각함보다 선호할 뿐이죠. 언제나, 어느 배우한테나. <복수는 나의 것>의 송강호를 대중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의 추억>의 박두만을 통해 흐르는 유쾌한 정서를 <복수는 나의 것>의 무거운 정서보다 좋아하는 거죠.

-삶의 기반이 언제 급변할지 모르는 역동적이고 불안한 사회의 예술가라는 점이 상대적 혜택으로 느껴질 때도 있나요?
=일본에 가면 “한국영화는 왜 이렇게 힘이 있냐”는 질문을 꼭 받아요. 제 대답은 한국은 역사도 고난스럽고 남북이 갈려 강대국 사이에서 정치경제적 영향을 받는 복잡다단한 사회이기 때문에 영화적으로도 역동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남극일기> 찍으러 뉴질랜드 갔을 때, 걱정없이 자연과 벗삼은 풍경을 보면서 “여기선, 대체 무슨 영화를 찍나?” 하는 의구심이 들더라고요. (웃음) 한국에서 1천만, 나아가 15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나오는 건 문화를 향유하는 코드가 다양하지 못한 까닭도 있겠죠. 마니아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 영화 말고도 열아홉 가지 정도 대중이 즐길 거리가 있다면 우린 영화밖에 없는 거죠. 하지만 영화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를 반추하는 기능을 하고, 동시대 사람들에게 큰 자극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니 나쁘게만 볼 순 없어요.

-몇년 전 한석규씨가 한국에서도 <오션스 일레븐>처럼 중견 배우들이 우르르 나오는 영화를 해보면 어떨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고현정씨도 나라 크기에 비해 영화산업의 시장이 큰데 <8명의 여인들>처럼 많은 배우가 동참하는 기획이 나와 관객에게 큰 즐거움을 돌려주면 좋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글렌게리 글렌로즈> 같은 앙상블영화를 해보자는 상상을 배우들끼리 해본 적은 없나요?
=<글렌게리 글렌로스>는 연극이 원작인 영화지만 연기자들이 교본처럼 한번쯤 봐야 하는 영화죠.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기막힌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나 준비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배우들이 앞으로 점점 다양한 작업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해요. 저도 얼마 전 <노근리 전쟁>(가제)에 카메오 출연을 했는데 그런 식으로 무보수 출연을 하거나 다양하게 일할 필요가 있겠죠.

-<살인의 추억> DVD 코멘터리를 들어보니, 대통령 선거 당시 송재호 선생님과 다른 배우들이 지지하는 편이 달랐다는 추억담이 있던데요. 영화인들의 민노당 지지선언에 합류하지는 않으셨죠? 사회가 돌아가는 데에 이 정도는 지켜져야 한다고 믿는 상식이 있는지요?
=전 보수주의자도 급진적 진보주의자도 아니에요. <한겨레> 발전기금을 내는 정도죠. 우히힛. 그러나 어린아이들이나 무고한 보통 사람들이 이유없이 희생당하는 사건에는 화가 나요.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하는 말도 결국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국가나 사회가 당신들을 지켜줄 것 같아요? 천만에요. 운이 좋아야 해요”라고 말하는 거죠.

-영화를 선택하는 취향을 봐도 사람살이에 중요한 문제라고 판단되는 굵직한 이야기를 가진 시나리오에 점수를 더 주는 것처럼 보여서요.
=영화가 창작 활동이다보니 가끔은 저의 정치적 견해를 뛰어넘는 영화도 하게 되지만 일부러 센 영화를 고집하는 건 아닙니다. 워낙 한국사회가 역동적이고 변화가 많다보니 이야기의 소재도 무난하고 평이한 이야기보다 각이 선 작품이 많아서죠. 장르영화도 어울린다면 얼마든지 합니다. 예를 들어 <시크릿 선샤인>은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멜로드라마라서 수락한 것이죠.

-최근에 제일 크게 화가 치민 기억은 무엇인가요?
=<괴물>이 스크린을 싹쓸이해서 한국영화 발전을 저해했다는 비난을 접하고 며칠 잠을 못 이룰 만큼 답답했어요. 인물간의 성격과 관계, 드라마나 CG가 미흡하다는 비판은 얼마든지 좋아요. 영화도 사회도 그런 비판없이 발전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안티 <괴물> 논리는 아무리 읽고 들어봐도 황당해요. 최공재 독립영화감독의 글도 열번을 숙독했지만 단 한 대목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100분토론>에서 강한섭 교수는 본인이 재미없게 본 영화니까 1천만 관객을 넘은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극장이 많았기 때문에 1천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는 식의 논리를 폈는데 그 논리를 문화계에서 활동하길 꿈꾸는 학생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스러워요. 사실 <괴물> 개봉 시기에 스크린 수는 적은데 객석 점유율이 높았던 영화가 있습니까? <괴물>만 없었다면 극장을 잡았는데 순전히 <괴물> 때문에 개봉 못한 영화가 있는지 묻고 싶어요. 스크린쿼터 사수 논리와 모순이라는 주장도 말이 안 돼요. 스크린쿼터는 할리우드영화와 우리 영화가 공정하게 경쟁하자는 뜻이지, 할리우드영화를 배척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큰 영화에 작은 영화를 끼워 파는 걸 막자는 거죠. <괴물>이 다른 영화를 배척했나요? 봉준호 감독님은 석굴암만큼 문화적 가치가 있는 감독인데 그런 얇아빠진 논리로 여론을 형성하려 하다니 믿기지 않아요. 봉 감독이나 최용배 제작자가 논리가 없어 반박을 안 하고 있는 게 아닐 겁니다. 제 성격이 관계자 중 제일 못돼서 주연배우로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역시 저는 영화와 관련된 일에만 감정이 솟구치는 건지…. (웃음) 나머지 일상은 그냥 무료할 뿐인 사람이라서.

-오늘(8월20일) <괴물>의 전국 관객 수가 11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초현실적 숫자라 당사자들은 어떤 느낌일지 가늠이 안 갑니다. 개봉 뒤 제작진이 따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까?
=모두들 바빠 만나지도 못했어요. 봉 감독은 계속 외국 돌아다니고 지금은 또 에버랜드에, 아니지 에든버러에(좌중폭소) 계시고, 저는 <우아한 세계>를 찍느라 바쁘고 해일이는 섬에 들어가 촬영 중이고. 흥행이 주는 흥분은 주연으로서 처음 흥행 기록을 경신한 <공동경비구역 JSA>가 가장 강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처음 겪는 숫자가 나왔으니까. 반면 <살인의 추억>과 <괴물>은 기본적인 기쁨은 있으나 담담해요. 특히 <괴물>은 예술가로서 연기를 칭찬받기보다 “출연료를 투자했다며? 얼마나 좋아?”라는 뉘앙스의 축하를 더 많이 들으니 기분이 가라앉기도 해요. 10년 동안 영화를 해보니 한편의 영화가 흥행이 잘되건 망하건 배우로서 가는 길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아서 그럴지도 모르죠. 예컨대 앞으로 제가 배우로서 행복하려면 <괴물>보다 더 관객을 동원해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배우의 성취감이란 참 어렵고 묘해요.

장소협찬 나오스 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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