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Sa-Kwa
강이관/한국/2005/118분/한국영화의 오늘
좋은 직장과 살가운 가족을 가진 현정(문소리)은 오래 사귄 연인 민석(이선균)으로부터 급작스런 이별을 통고받는다. 괴로워하던 현정은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따라다니던 남자 상훈(김태우)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큰 이유도 없이 점점 멀어지게 되고, 민석이 다시 현정 앞에 나타나면서 그들의 관계는 어느덧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거창한 이유가 없듯, 두 사람의 관계가 나빠지는 것 또한 뭔가 대단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상훈이 ‘회사의 지시’라면서 구미로 전근을 가게 되자 현정은 상훈과 태어날 아기를 위해 직장을 때려치우고 상훈 곁에서 살기로 한다. 어머니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버려야 상훈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 현정은 씩씩하게 구미로 내려간다. 하지만 낯선 도시 속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가는 일은 현정에게 버거운 일이다. 그렇게 지독한 외로움 속에 살아가던 그 앞에 민석이 돌연 나타나자 현정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게다가 상훈이 구미에 머물고 있는 것이 회사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현정은 구미를 떠나기로, 상훈을 포기하기로 마음 먹는다.
강이관 감독의 데뷔작 <사과>는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의 관계를 서서히 드러내주는 섬세한 영화다. 따지고 보면 모든 것은 사랑에서 비롯됐다. 현정이 고이 쌓아뒀던 직장 경력을 일순간에 포기하고 상훈에게로 간 것은 물론이고, 상훈이 구미로 내려간 것 또한 보다 떳떳하게 현정을 사랑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지만, 관계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갈 뿐이다. 민석이 현정과 헤어진 것도 “널 좋아하는만큼 날 양보하는 게 널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러다 보니까 내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져서였다. “삶과 사랑의 미궁에 관한 뛰어난 관찰의 영화”라는 허문영 프로그래머의 이야기처럼, <사과>는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해서 통속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삶의 이야기를 커다란 돋보기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영화 제목 ‘사과’는 중의적이다. <사과>에서 사과는 새콤달콤한 사랑의 기억을 품은 아삭한 과일이기도 하지만, 잘못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관계를 그르친 데 대해 용서를 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 사과(赦過)는 상대방을 향한 것일지도, 스스로에 대한 것일지도, 또는 관계 그 자체에 관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상황에 처한 이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임엔 틀림없다. 지난해 산세바스찬영화제 신인각본가상과 토론토국제영화제 국제비평가(FIPRESCI)상을 받았던 <사과>는 약간의 수정작업을 마치고 부산에서 선보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