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영화]
마법같은 순간, <경의선>
2006-10-14
글 : 이다혜

경의선 The Railroad
박흥식/ 2006/ 한국/ 107분/ 새로운 물결

한 여자가 지하철역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향한다. 그와 동시에 한 남자는 하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녀와 엇갈린다. 두 사람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두 사람이 속한 공간 역시 다르다. 그녀, 한나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며, 그, 만수는 지하철 기관사다. 지금도 두 사람은 서로를 모르지만 앞으로도 알고 지낼 일이 없을 것처럼 보인다. <경의선>은 나란히 이어진 철로처럼 평생 만나지 않을 것 같던 두 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포 선라이즈>처럼, 다시는 전과 같아지지 않을 전환점이 되는 하룻밤을 같이 보내는 남녀의 이야기.

만수는 성실하게 일한다. 승객들에게 매일 하는 안내방송에도 정성을 다하고 싶어한다. 한나는 독일 유학 때 함께 지냈던 선배이자 그녀가 일하는 대학 교수인 유부남과 불륜관계다. 그녀는 자신이 길거리를 매일 치우는 청소부같다는 자괴감에 젖어있다. 무리없이 일상의 궤도를 운행해가는 듯하던 두 사람에게 파국이 찾아온다. 만수는 자신이 운행하던 지하철에 한 여인이 뛰어들어 자살하자 공황상태에 빠지고, 한나는 불륜상대와 밀월여행을 꿈꾸다가 그의 아내에게 머리채를 잡아뜯긴다. 만취하고 기차에 오른 어느 눈 내리는 밤, 두 사람은 폭설이 내리는 종착역에 둘만 남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색해하던 두 사람은 자신에 대한 거짓말과 허세로 말문을 튼다.

<경의선>은 중반에 이르기까지 별다른 사건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만수와 한나의 됨됨이에 대해 꼼꼼한 묘사를 즐길 뿐이다. 만수의 우직함과 한나의 외로움에 적응이 될 무렵 두 사람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자신이 애타게 갈구하는 삶을 거짓으로 상대에게 들려준다. 그 순간부터 영화의 마법같은 순간이 시작된다. 만수를 연기한 김강우와 한나를 연기한 손태영의 연기는 서정적인 화면과 어우러져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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