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k by Me]
[Rank by Me] 딴 길 가는 친구들
2006-10-16
글 : 김유진

어린 시절 함께 뛰놀았던 죽마고우(竹馬故友)라 할지라도, 지초와 난초의 교제처럼 맑고 고귀한 사귐(芝蘭之交)를 꿈꾸더라도, 친구 따라 강남 갈 순 없다. 내 인생은 내 인생, 친구 인생은 친구 인생인 것을. 옛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에 있었던 ’교우이신(交友以信)’이란 덕목에서나, 유교의 삼강오륜에서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 일컫듯 친구 사이의 믿음만 있으면 다른 선택을 한다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으니, 각각 다른 길을 걷는 친구들에게는 우정과 신의를 깨뜨리고도 남을 만한 상황이 주어지기도 한다. 조직에, 사랑에, 각기 다른 신념에 무릎 꿇었던 우정들. 혹은 각자의 선택으로 딴 길 갔다가 우정에 금간 친구들의 사연을 모아봤다.

5위는 <불량공주 모모코>의 류가사키 모모코(후카다 교코), 시라유리 이치코(쓰치야 안나). 모모코를 살게 하는 것은 오직 화려하고 치렁치렁한 레이스가 달린 드레스! 물주였던 아빠의 실직으로 드레스 스타일을 고수하기가 힘들어지자(흑! T.T) 모모코는 돈을 벌기 위해 짝퉁 ‘베르사치’를 직접 판매하기 위해 광고를 낸다. 이를 보고 나타난 이치코는 완벽한 스쿠터 폭주족 스타일의 결정체. 친구가 되자고 떼쓰는 이치코 때문에 모모코는 대략난감하지만,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의기투합한 둘은 파친코에 들락거리면서 우정을 나눈다. 하지만 이 둘이 함께하기에 너무나도 다른 스타일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 모모코는 결국 예쁜 공주 드레스를 입고 조직의 대장 역할을 승계받아야 하는 이치코와 일당에게 일장연설을 날리며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4위는 <키즈 리턴>의 신지(안도 마사노부)와 마사루(가네코 겐). 개폼잡는데 능한 마사루는 공부는 안하고 동네를 배회하며 여기저기 주먹을 쓰고 다니는 스타일, 신지는 그런 마사루 옆에 조용히 붙어 있는 얌전한 아이다. 여느 때처럼 애들을 괴롭히다가 복싱선수에게 쪽팔리게 한방 먹은 마사루는 복싱을 배우겠다며 신지를 데리고 체육관을 들락거리지만, 예상 외로 소질을 보이는 신지한테 망신스럽게 한방 먹고는, 다른 길을 가겠다며 사라진다. 고등학교 졸업 뒤 둘은 복싱 유망주와 야쿠자로 성장하지만, 신지는 점점 떨어지는 복싱 실력에, 마사루는 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야쿠자 보스들에게 찍혀 시련을 겪는다. 딴 길을 걸었지만, 재회한 두사람. 그 둘이 날린 명대사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에 감명받으며 두 사람을 4위에.

3위는 <친구>의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함께 어울리던 상택(서태화)과 중호(정운택)까지, 포르노 잡지를 돌려보기도 하고, 조오련이 더 빠른지 물개가 더 빠른지 논쟁하던 친구들의 우정은 고등학교 때만 해도 변치 않는 듯했다. 하지만 항상 준석에게 미묘한 열등감을 가졌던 동수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조직폭력배가 된 준석과 경쟁관계에 있는 조직의 행동대장으로 자리잡으면서 둘의 갈등은 깊어진다. 마지막 우정이랍시고 멀리 떠나라고 충고하는 준석에게 동수는 폼잡으며, “내가 니 시다바리가”, “니가 가라, 하와이”라고 일갈하지만, 결국 동수는 “고마 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하와이보다 더 먼 곳으로 떠난다. 친한 친구라면 동종업계의 경쟁 조직에 몸담지 말라.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이라할지라도 최후에 피를 부를 수도 있을지니.

2위는 <키핑 더 페이스>의 브라이언(에드워드 노튼)과 제이크(벤 스틸러). 브라이언은 가톨릭교 신부이며, 제이크는 유대교 랍비지만, 변함없는 우정을 과시하는 친구 사이라는 점에서 둘의 우정은 <친구>의 두 친구들보다 한 단계 위로 볼 수 있겠다. 그 둘 사이에, 종교적으로 직업적으로 서로 넉넉한 이해심과 신뢰를 보여주던 우정이 삐그덕거리게 되는 일이 생겼으니, 바로 ’여자’. 어린 시절에 친하게 지냈던 애나가 매력적인 커리어우먼이 되어 둘 앞에 나타나면서, 그들의 우정에는 한여름 태풍이 강타하는 일기예보보다도 더 복잡한 기류가 형성된다. 친구였던 애나를 향한 감정이 사랑인가, 그렇다면 애나를 사랑하는 친구의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나의 종교적 신념은 어찌해야 할 것인가. 우정과 질투와 사랑과 신앙이 얽히고설킨 입체적이고 복잡다단한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 두 친구의 사연을 2위에 랭크시켰다.

<거룩한 계보>

1위는 <거룩한 계보>의 치성(정재영)과 주중(정준호). 같은 조직 내에서 유년 시절부터 오랜 우정을 나눈 사이다. 조직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치성에게 치성을 들이지는 못할망정 치성의 부모님이 당한 화를 모른 척하는 조직의 보스. 이 사실을 알게 된 치성은 열이 뻗치고, 조직 내에서 한 자리 차지한 주중은 치성과의 우정과 조직의 의리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른다. 치성이 조직에 복수하기 위해 탈옥을 결행하자, 조직을 대변해야 하는 주중은 치성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 맞딱뜨린다. 친구냐, 의리냐, 친구냐, 복수냐. 생사를 오가게 될, 둘의 흔들린 우정을 1위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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