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2일 오후 6시 이미 어둑어둑해진 LA의 샌타모니카 해변. 이곳의 한 낡은 극장 앞에 사람들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멀티플렉스가 대세인 오늘날 전세계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는 단관 극장인 에어로 씨어터다. 고개를 들어보니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카사블랑카> 와 미개봉작인 <선한 독일인>의 연속 상영이라는 간판 광고가 반짝거리고 있다.
조지 클루니, 케이트 블란쳇, 토비 맥과이어 등의 스타들이 포진한 <선한 독일인>은 <카사블랑카>로 대표되는 1940년대 영화에 보내는 헌사라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간단한 무대 인사와 함께 시작하였다. 1945년 포츠담회담이 이루어지고 있는 전후 베를린, 미군 장교와 나치SS 친위대원을 남편으로 둔 독일 여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이 영화는 필름 누아르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면서 특히 40년대 흑백영화의 스타일을 화면에서 세밀하게 재현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소더버그 감독이 1940년대 영화를 굳이 재현하고 싶어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4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 시대를 지나, 희망적인 미래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특별했다.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은 절대악을 응징한다는 강력한 명분을 주었고, 미국인들은 그 영광스런 전쟁에서 이겼다. 모든 것이 분명하던 시대, 앞으로 내달리기만 하면 도달할 것 같던 장밋빛 미래. 그렇게 60년을 달려온 미국인들은 이제 자신이 옳은지 더이상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지나간 시대의 영화를 한번 더 복제, 재현하고 싶은 열망이 간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한 독일인>은 2006년의 영화이다. <카사블랑카>가 따라야 했던 헤이스 코드(Hays Code: 193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제작윤리강령)는 이 영화를 제한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 속 1945년의 캐릭터들은 헤이스 코드가 보장해주었던 이상적이고 아련한 로망 대신 좀더 잔혹한 진실에 다가간다. 과연 1940년대가 미국인의 기억만큼 정의로웠는지는 모르겠다. 1940년대, 미국은 여전히 흑인에게 가혹했고, 여성에게 평등하지 않았고, 미국 내 아시아인들에게도 공정하지 않았다. 언제나 과거는 기억 속에서 아름다워 보일 뿐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