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가 충무로 남자배우의 주요 공급처로 떠오른 지 오래되었다. 주연급으로 성지루, 박희순(김수로는 잠시 거쳐갔다)을 배출한 극단 목화는 특히 손병호 등 굵직한 성격파 배우의 요람인데 올해 돋보이는 건 김응수와 김병옥이다. 오랜 세월 대학로를 지키던 김병옥을 충무로로 본격적으로 끌어낸 건 박찬욱 감독이었다. <올드보이>의 유달리 과묵한 경호실장과 <친절한 금자씨>의 이상한 헤어스타일을 한 전도사로 나와 쏟아질 듯한 두눈으로 오싹함을 전달하던 이가 김병옥이다. 유달리 높은 전압을 발산하지만 또한 그 안에 숨은 이완된 너스레를 눈 밝은 감독들은 알아보았다. <그때 그사람들>의 육군본부 대령으로 나와 김 부장을 사지로 몰아갔던 그는 올해 <짝패>의 어수룩한 동네 청년회장 역을 맡아 연약한 인간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올해 충무로는 그의 어두운 뒷그림자에 조명을 밝혔다. <잔혹한 출근>에서 사채업자로 나오더니 <해바라기>에선 야비한 시의원으로 비중이 한층 높아진 악역을 맡았다.
-<해바라기>는 만족스러웠나.
=비교적. 만족이 쉽게 찾아올 수 있나. 넘치지도 말고 부족하지도 않아야 하는데 아직 영화는 수위조절이 어렵다. 연극은 한순간에 밀고 가니까 톤을 잘 잡으면 끝까지 가는데 영화는 스타카토식으로 끊어가니까 항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해바라기> 속 조판수는 맡은 역 중 가장 비열한 역이었다.
=내가 봐도 야비하고 이중적이고 비열하게 보이더라. 내가 치중한 건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 했던 건데 그게 보인다. 그런 체취를 걷어내고 일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서려 했는데. 그런 사람들이 실은 옆집 아저씨 같아 보이는데 뒤로는 나쁜 짓 하지 않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들이 그렇게 이중적이라고 본다. 겉으로는 좋은 얘기하고 뒤에서는 검은 돈 챙기는 게 비일비재하니까.
-그 비열함에 대한 심판이 시원스럽게 이루어지지 않다고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카타르시스가 덜했을 수도 있다.
=감독의 컨셉이다. 나는 끝까지 발악하며 악랄하고 극악스럽게 가려 했는데 감독이 원치 않았다. 원래 스토리대로라면 나는 싸우고 싶은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마지막에 특기인 해동검도로 김래원과 붙어보는 건 생각 안 해봤나.
=그런 얘기가 나왔다. 그러면 너무 강하지 않느냐, 장르가 바뀌지 않겠느냐, 위험하지 않겠느냐, 해서 양보했다. 시사회에 세계해동검도연맹 총재도 왔는데 그런 부분이 아쉬웠다. <짝패>를 함께한 정두홍 무술감독은 나중에 다시 영화를 하자고 하더라.
-<짝패>부터 해서 이제는 전형적인 동네 청년회장의 이미지로 자리잡아가는 것 같다. 부동산 자본주의의 난폭함을 의인화한 존재가 되고 있는데, 왜 당신에게 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은 그런 이미지를 발견하는 걸까.
=그런 면이 나에게 있는 거 같다. (웃음) 내게 동전의 양면처럼 사악함과 선함이라는 이중성이 있는데 살아가면서 늘 고민한다.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그 싸움이 시작되는 거다. 선악의 부딪침이 늘 내 마음에 있다. 카라마조프 형제 같은 건데 그런 싸움을 하면서 스스로 인생에 대해 깨닫고 수양하는 거 아닌가 한다. 왜 그렇게 사악한 포스로 가는 걸까 나도 의아한데 결국 내가 발견 못하는 내 안의 사악함을 남이 발견하는 거다. 악역을 하면서 스스로 마음이 굳어지고 악을 드러내려 애를 써야 하는데 막상 하게 되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볼펜을 훔쳤는데 안 걸렸을 때 느끼는 그런 거, 누구나 있지 않나. 이아고나 맥베스 같은 악인에게는 특유의 매력이 있지 않나. 인간은 마음속에 나쁜 짓을 하고 싶어하는 충동이 있다. 능력이 안 되거나 도덕과 교육과 양심 때문에 못하는 거고 근처에 가까이 안 가는 거지. 사실은 누구나 빼앗고 싶고 훔치고 싶은 충동이 있지 않을까.
-<잔혹한 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자는 잠을 자지 않는다’는 명언을 했는데, 순수예술에 영혼을 쏟아부었던 사람답지 않은 말 아닌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 나오는 고리대금업자들 있지 않나. 직접 겪어보기도 했다. IMF 때 빚보증을 잘못서 고생을 한 경험도 있고. 진짜 무섭더라. 잠을 자도 술을 마셔도 이자는 쉬지 않는구나, 깨달았다. 함부로 남의 돈 쓰지 말라는 얘기였는데, 이 얘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영화적인 쪽으로 많이 접근이 됐구나 싶었다. 기자간담회하면 뻔한 얘기만 하게 되니까 명쾌하게 유머라도 주고 싶었다. 유머가 없으면 인생이 얼마나 허전해.
-<잔혹한 출근>의 악역은 상징적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데 <해바라기>의 악역은 인간적인 빈구석이 전혀 없는 악한이다.
=<잔혹한 출근>은 욕심이 과했다. <해바라기>는 그래서 조금 눌렀다. <해바라기>는 내가 직접 행동하는 게 아니라 ‘스리쿠션’으로 가는 거니까. 여기선 <잔혹한 출근>처럼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일상적인 면이 없으니까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부드럽게 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연구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풍성하게 갈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야 했는데 아쉽다.
-최근 들어오는 시나리오들은 어떤 것들인가.
=거친 역들이다. 주로 가해자고 나쁜 역이다. 배우란 게 내가 하고 싶은 것과 관계없이 숙명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거다. 그걸 받아들이면서 한편으로는 쌓아가는 건데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되겠지. 평생 쌓은 기술을 링 위에서 한번도 못 써보고 내려오는 권투선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해동검도도 했던 거고.
-극단 목화 출신이나 연극판 출신 또는 관록의 배우들과 같이 했을 때 영화가 더 빛이 나는데 그 이유가 뭘까.
=<올드보이>를 하면서 최민식이라는 걸출한 배우에 대해 고맙게 생각했다. 훌륭한 연기자는 배려한다. 자기가 먼저 경험한 거에 대해 선의로 베푸는 자세가 있다. 그러면서 눈녹듯 긴장감이 녹아들더라. 슛 들어가서는 내가 경험이 없으니까 내 동선을 미리 알고 암시적으로 유도해줬다. <그때 그사람들>에서 백윤식 선배와 직접 붙을 때도 상대를 존중해주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두 사람은 현장서 분위기 메이커이고 말을 많이 해줘서 긴장을 이완시킨다. 그게 다 현장의 짬밥이다.
-극단 목화 특유의 강직함이랄까, 당신 연기는 전압이나 기가 세서 스크린에서 튀어 보이는 게 있는데.
=누가 눈으로 레이저를 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하던데 난 사실 착한 사람이다. 순진무구한 태도를 가진 사람을 연기해보고 싶다. 그런 얘기를 듣는 이유는 아직은 카메라를 노려보고 연기를 하는 스타일이라 그럴 거다. 더 익으면 눈녹듯이 이완된 게 나오지 않을까. 아직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강하고 그걸 제어하지 못하는 거다. 이게 숙제다.
-목화 출신들이 최근 영화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작품에 대한 태도가 우리는 굉장히 전투적이다. 목화가 주는 건 그러나 치밀함뿐 아니라 유연함이다. 사실 우리에게 더 강한 건 있는 듯 없는 듯 보이는 유연함인데 앞으로 그 유연함이 더 보일 거다.
-극단 목화로서는 2002년 <지네와 지렁이>, 연극으로는 2004년 <햄릿>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 뒤로는 연극에 대한 생각은 없나.
=못했다. 아쉬운데, 아직 착실한 입지가 없고 모호하다. 요즘 대학로 친구들과 나이 차도 나고 작품 경향과 톤도 안 맞고 힘들더라. 내게 배역을 맡기기도 모호한 것 같다. 젊지도 않고 나이든 것도 아니고.
-몇년간 극단 목화 기념 공연이나 뒤풀이에서 보지 못했다. 당신 같은 허리 세대가 빠진 뒤부터 목화의 힘이 빠졌다.
=못 갔다. 앞으로 가겠다. 지난해 드라마센터에서 <용호상박>을 봤는데, 중간 세대인 허리가 부실해서 안타까웠다. 어서 가서 도와야지. 아니, 도와준다고 하면 안 되지. 어서 참여해야겠다. 아, 그러질 못하네.
-오태석 선생의 영향은 주로 어떤 거였나.
=연극 외의 생각은 안 하고 사신다. 천재인데다 열정도 대단하다. 자기 모든 시간을 한 군데 쏟아붓는다는 게 쉬운 게 아닌데. 우린 꿈을 많이 꾸고 꿈에서 서로 만난다. 항상 오 선생에 대한 생각이 잠재해 있어 그런 것 같다. 연기가 안 풀릴 때,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오 선생은 뭐라 할까 싶은 거다. 그의 재치, 번득이는 섬광 같은 것에서 뭔가 나올 텐데.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있다는 거다, 목화 연극이.
-어려서부터 연극을 좋아했나.
=나는 영화를 먼저 만났다. 연극을 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쉽게 접할 수 있는 건 스크린이었고 우리는 이소룡에 환장한 세대였다. 사실 난 최인훈 교수가 있는 문창과를 가고 싶었다. 시험도 문창과를 봤다. 그런데 면접에서 연극과 교수가 연극과로 오면 어떻겠느냐고 하더라. 고등학교 다닐 때 크리스마스 연극을 한편 연출해봤는데 그때 느꼈던 재미가 떠올랐다. 연극과를 가니 재미있더라. 좋은 희곡을 읽을 수 있고. 희곡이란 게 묘하다. 연기까지 하니까 더 재미있더라. 목화엔 셀 수 없이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많았다. 조상건 선배 등을 따라서 목화에 들어갔다. 그런 선배들과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
-조조영화를 요즘도 많이 보나,
=많이 본다. 내가 나온 영화가 개봉하는 날 아침에 가서 영화를 보든 안 보든 극장 앞을 본다. 관객이 얼마나 오나. 아침에 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조조영화 좋지 않나. 값도 싸고.
-지난번에 전화했을 때는 북한산에서 받았다. 일감이 잘 안 들어와서 그런 건 아니겠지.
=술독도 뺄 겸 머리도 식힐 겸 간다. 산도 좋지만 원래 낚시를 더 잘 간다. 그때 일거리가 많이 안 들어올 때이기도 했다. (웃음)
-강직한 무인의 이미지가 있는데 그게 속에 있는 능청맞고 비열한 이미지와 맞물릴 때 좋은 연기가 나오는 듯하다. <그때 그사람들>에서 계단 밑을 내려오며 민 대령을 압박하는 장면같이 말이다. 김 부장이 사지로 몰린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당신의 그런 은근한 야비함 때문이었다.
=그때 연기는 감독이 즉흥적으로 짜낸 아이디어인 걸로 기억한다. 무지하게 추운 날이었는데 김응수랑 찍으면서 카메라를 이동하고 위치를 맞추느라 오래 찍었다. 그런데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나중에 보니까 재미를 넘는 역사의 아이러니 아닌가. 쿠데타 범인이 앞에 있는데 육군본부에서 총을 못 구해 빈 총으로 겁을 주는 긴박 상황이다. 짧은 순간이지만 관객에게 각인될 수 있는 신이라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현장에서 임상수 감독과 충분히 소통을 한 뒤 연기에 들어갔는데 그 소통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다. 부하들을 혼내주는 장면에서 내가 키가 작으니까 펄쩍 뛰어 헤딩하라고 한 건 김우형 촬영감독의 아이디어였다. 두번 찍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 몇번 더 해봤으면 좋았을걸. 김우형 촬영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구나 느꼈다. 내 영화는 낯간지러워 잘 안 보는데 이 영화만큼 많이 본 영화가 없다.
-박찬욱 감독과의 연이 영화계로 오는데 큰 몫을 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 할 때 조감독이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추천했다고 하던데.
=당시 이계벽 조감독이 추천을 했다. 경호실장 역이 부대끼는 역이라 어려워했더니 머리만 염색하면 괜찮을 것 같다고 한마디 하더라. 그 말에 힘을 얻었고 고마웠다. 촬영할 때마다 몇 시간씩 염색하느라 머리가 부서지는 줄 알았지만 말이다. 그런 감독과 일한다는 건 행운이다. 매사에 치밀하게 소품 하나까지 다 챙기면서도 즐겁게 작업한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배역에 관계없이 꼭 참여를 원한다고 졸랐는데 판사로 우정출연했다. 안 했으면 섭섭할 뻔했다.
-올해 인상적인 연기는 <짝패>에서 동네 청년회장이었는데, 순진하고 사람 좋은 미소와 자신도 가해자의 입장에 능청맞게 들어서는 그 이중성이 잘 드러났다. 호수장면의 눈 연기도 좋았고.
=호수장면은 의림지에서 찍은 거다. 그 장면은 하루종일 꽁꽁 묶여서 찍었다. 늦가을이라 쌀쌀한데 발도 못 움직이고 해질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그런데도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렇게 남들에게 학대를 당하는 쾌감이 있더라.
-매니저가 생겼는데 매니지먼트에 소속된 건 언제고 바뀐 건 뭔가.
=올 2월이다. <주먹이 운다>와 <올드보이>를 함께한 한재덕 PD와 개인적인 친분이 생겼는데 그 친구가 소개했다. 일단 편하다. 계약을 비롯해 촬영장까지 밤샘 운전 같은 여러 문제에서 벗어나 온전히 작품에만 신경을 쓸 수 있다는 거다. 단점은 부자연스러운 거다. 우리 연극배우들이 갖는 근본적인 자유스러움이 있지 않나. 공연 끝난 뒤 호프집으로 가서 밤새 술을 마시고 그런 게 제약받는 거지.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하는 이유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그를 보며 느끼는 건데 죽음의 미학이랄까, 악이 지닌 폭력의 미학이 있다. 일깨움을 주는 측면이 있다. 물론 그렇게 살면 안 되지, 그렇게 살 수도 없고. 영화는 영화니까.
-연기 20년 동안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원칙, 지키려고 했으나 지키기 어려웠던 원칙은 뭔가.
=불교에 연기법이라고 있지 않은가. 남이 있으므로 내가 있다는 거다. 서울예대 연극과 선생님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다른 사람을 빛나게 서포트할 수 있는 정신인데 그게 참 어렵더라. 내가 잘난 거 보여주고 싶고 나 혼자 떠들고 싶은 법이다. 그런데 인생을 길게 보면 다른 편에 있는 쪽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경외감을 갖지 않으면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 연기를 할 때는 그게 중용의 법칙인데 지키기가 어렵다. 더 많이 보여주려는 욕심을 내면 안 되는데 자꾸 오버하게 된다. 욕심이 나니까 튀다 보면 흐름을 망칠 수도 있고 다른 배우가 쌓아놓은 걸 무너뜨릴 때도 있는 데 그게 참 어렵다. 자기 수양이 없으면 그 중용이 나오기가 힘들다. 심리적으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야 자제를 할 수 있으니까. 학교 졸업한 지가 26, 27년이 지났는데도 안민수 선생님 수업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물끄러미 창문을 보면서 선문답식으로 이런 것들을 가르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