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11월25일(토) 밤 11시
지금 이 도시에 존재하는 자들은 ‘남겨진’ 자들이다. 이 도시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떠난 자들의 흔적들이다. 그래서 흔적과 함께 남겨진 자들에게 고독은 운명이다. <토니 타키타니>는 땅 위를 감싸는 희뿌연 안개처럼 도시를 흐르는 고독의 공기를 담는다. 토니 타키타니는 한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정밀한 일러스트레이터다. 그런데 그의 영혼에는 휑한 구멍이 뚫려 있다. 그것은 도시인의 영혼에 찍힌 낙인이다. 그 구멍으로 고독의 바람이 통과한다. 완벽한 작품으로 영혼의 쓸쓸함을 달래듯, 그는 완벽한 이미지의 여자, 에이코를 만나 고독을 잊으려고 한다. 그러나 에이코의 쇼핑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둘의 관계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에이코의 공허함이 수많은 옷가지들로 메워지지 않듯, 토니의 고독은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토니 타키타니>가 보여주는 도시의 풍경은 치솟은 빌딩들과 혼잡한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영화 속 공간들에는 고작 한두명의 인물들만 존재할 뿐이고 나머지를 채우는 건, 사물들이다. 사물들 역시 공간을 채운다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침묵하며 공간을 비운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이러한 공간의 속성은 영화가 신을 전환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카메라의 수평 트래킹은 물 흐르듯 유려하게 느린 속도로 공간의 여백을 관찰한다. 한 공간에서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때마다 그 공간들 각각에는 홀로 남겨진 토니 타키타니, 주인을 잃고 남겨진 사물들이 마치 화분처럼 덩그러니 놓여진다. 이를테면, 에이코가 떠난 뒤 생기를 잃은 700벌의 옷가지들과 토니의 아버지, 쇼자부로가 죽은 뒤 빛을 잃은 트롬본. 더이상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허물들만이 유령처럼 도시의 공간들을 부유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토니 타키타니>다. 영화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작품 속에서 만들어낸 행간의 공기를 충실하게 옮겨놓은 듯하다. 오가타 잇세가 극중 토니 타키타니와 그의 아버지 쇼자부로를 동시에 연기하고, 미야자와 리에가 에이코와 에이코와 동일한 사이즈의 여인, 히사코로 분한다. 1인2역의 사용은 존재의 구체성에서 더이상의 의미를 찾지 않는 도시의 풍경을 그리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처럼 보인다. 영화 전반을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해주는 내레이션(<돌스>의 주인공 니시지마 히데토시 목소리)과 류이치 사카모토의 선율이 <토니 타키타니>의 여백 위로 고독하게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