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뉴스]
허진호 감독, “이영애씨 은수캐릭터 잘 소화”
2001-09-21

“은수의 캐릭터에 대해 이영애씨와 얘기를 많이 했다. 한번 이혼해서 평생 함께 한다는 생각이 두렵고 자기 방어를 하고, 어쩌면 상우에게 주는 상처를 이전에 은수가 받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은수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도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영화 주인공으로는 드물지만 실제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여자가 아닐까.”

허진호(38) 감독이 은수라는 캐릭터에 대해 윤곽이 잡힌 건 첫 장면을 촬영하면서였다. “찍으면서도 어떤 여잔지 잘 몰랐다. 찍으면서 만들어갔다. 디테일은 주변에서 관찰한 것도 있고 이영애씨가 보여준 것들을 가지고 엮어갔다. 이씨의 연기를 보는 게 재밌다. 이씨는 자기가 연기한 걸 모를 때가 있다. 제가 그랬어요? 하는 식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많은 게 나오는 배우다.” 허 감독은 남들에게서 연애담도 채집했다. “특히 여자들의 연애담, 남자가 힘들어질 때가 언제냐, 집착을 보일 때다 등등의 얘기….”

몇차례 있은 이 영화의 시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관객들이 변덕 심해보이는 은수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았다. “각자의 길이 있는 것 같다. 상우는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게 행복할 수 있고, 은수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상우가 행복해 보인다. 상우는 가족과 함께 산다. 가족이라는 게 불편하기도 하지만 위안도 되는 거고. 은수는 혼자 살고 가족이 있겠지만 개인 위주로 관계를 가져간다. 본인이 선택한 것이겠지만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은수가 안됐다는 느낌이다.” 허 감독은 그러나 세대간의 차이를 인정했다. “내 나이에서 바라보는 상우와 유지태씨가 보는 상우가 달랐다. 유씨는 상우가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나오는지 이해가 안가서 감정몰입이 안된다며 힘들어했다. 그래서 유씨에게 상우와 거리를 두라고 했다.”

허 감독은 이번에는 전작 때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인물들에게 더 깊이 들어가려고 했는데 찍고보니 역시 거리감이 있다. 내가 사물을 바라보는 데에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변하지 않을 것 같은게 내가 단순한 걸 좋아하고, 인물과 사물, 감정의 거리가 적당한 게 좋다. 사소한 친절에 감동할 때처럼, 일상에서 빛나는 순간을 잡아내는 게 좋다. 너무 예쁘게만 찍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어느 정도 희망적인 것, 행복한 게 좋다.”

임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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