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k by Me]
[Rank by Me] 최고의 작업남녀가 몸소 보여주는 그(녀) 꾀기 대작전
2006-12-11
글 : 김유진
심심한데 들이대볼까?

사랑은 ‘쟁취’하는 거라는 얘기는 이제 촌스럽다. 그 쟁취를 위한 ‘작업’이야말로 짜릿한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과정이 아니던가. 바람둥이 수칙 제1장 제1절, 사랑에 빠지지 않는 자만이 타인의 사랑을 쉽게 가질 수 있다. 남의 마음을 뺏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냐마는 이러한 작업적 마인드를 머릿속에 넣어둔다면, 당신의 연애사가 좀더 화려해지지 않을까. 물론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쿨럭. 그래서 여기 개성 넘치는 작업남녀들을 모아봤다. 워낙에 ‘괴’성적인 작업들을 펼치신 탓에 현실 적용 면에서 무리가 있을 수 있으나, 각각의 사례연구를 통해 응용 가능한 범위에서 적극 도입해 활용해보자.

<작업의 정석>

5위는 <작업의 정석>의 한지원(손예진)과 서민준(송일국). 영화 제목 때문일까. 두 주인공의 상대방 꾀기 작전은 특별하다기보다 일반적인 꾀기 비법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탓에 사뭇 ‘정석’스럽다. 러닝타임 내내 두 사람은 치밀한 작전과 임기응변식 잔머리를 다방면으로 배합·활용하는데, 이들의 작업법은 간단하게 요약된다. 첫째, 이성에게 관심을 끌 만한 외모와 과감한 작업 수행시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재정적 능력을 겸비할 것. 둘째, 여성은 남성에게 ‘내숭’작전으로, 남성은 여성에게 ‘감동’작전으로 다가설 것. 단, 상대방의 성격과 직업 등 치밀한 사전조사는 필수. 내숭은 적절하게, 감동은 스케일이 크면 클수록 효과 만빵. 알아도 실전에선 어렵다고? 그럼 각종 간접경험으로 연습하길 권함. 고등학교 때 지겹게 보던 <수학의 정석>에서도 이론 부분 뒤에는 기본문제-유제-연습문제를 풀어야 했단 사실을 상기하시길. ‘정석’의 명성과 체면을 고려해 가까스로 5위에 랭크.

4위는 <아멜리에>의 아멜리에(오드리 토투). 이 작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작업인지 장난인지 알아차릴 수 없는 행동은 상대방이 지나치거나 무시하기 쉽다. 엉뚱한 장소로 유인한 뒤, 대뜸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화살표를 따라오라든가, 우스꽝스럽게 변장한 사진으로 자신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 등 아멜리에의 황당한 장난들은 자기만의 세계에 사는 듯한 니노(마티유 카소비츠)에게 먹힐 만한 충분한 여지가 있었다. 이에 호기심을 갖고 그녀의 작전에 순순히 따라온 니노는 어느샌가 아멜리에가 자신의 짝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다만, 둘의 사랑을 이어주는 무생물의 캐릭터들 ‘1회용 증명사진 속 인물’이나 ‘동물 캐릭터 스탠드’ 등의 활약이 필요하며, 아멜리에와 유사한 캐릭터를 구축해야 이런 황당 작업방식들이 엽기적이지 않고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진다는 사실을 고려해 4위에 랭크.

3위는 <하나와 앨리스>의 하나(스즈키 안). 하나의 작업은 우연한 돌발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승화한 경우. 하굣길, 점찍어두었던 한 학년 선배 미야모토(가쿠 도모히로)의 뒤를 쫓다가, 그가 머리를 부딪히고 잠시 기절한 틈에 곁에 다가가서, 대뜸 자신이 여자친구라고 말해버린다. 멍한 표정의 미야모토에게 덧붙인 한마디. “선배가 머리를 부딪혀서 기억상실증에 걸렸나봐요.” 그때부터 미야모토는 하나가 자기 여자친구라고 믿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노력은 이제부터다. 아무리 ‘내가 당신의 여자친구’라고 말해도 앨리스(아오이 유)에게 더 끌리는 미야모토처럼, 상대방이 내게 집중할 수 없으면 황당한 거짓말의 뒷수습만 부담으로 남을 수도 있을 듯.

2위는 <Mr. 로빈 꼬시기>의 김민준(엄정화). 회사에 새로 부임한 완벽남, 미스터 로빈(대니얼 헤니)을 꾀기 위한 민준의 방법은 단 두 글자면 끝난다. ‘삽질’. 능력이나 외모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그녀가 로빈씨에게 작정하고 작업을 걸어보는데, 연애에는 영 소질이 없는 그녀는 줄곧 엉뚱하고 민망한 삽질만 해댄다. 어디서 몇십년 전 레퍼토리를 얻어들었는지 ‘도시락 편지’같은 촌스런 방법에, 분위기 파악 못하는 초절정 엽기섹시 춤까지. 그나마 제대로 하면 좋겠지만, 덤벙대고 넘어지고 실수하기 일쑤다. 하지만 사랑은 완벽한 하나끼리 만나 둘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작업 대상자가 주도면밀하고 치밀한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케이스라면, ‘삽질을 가장한 작업’으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1위는 <다운 위드 러브>의 바바라 노박(르네 젤위거). 가장 계획적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자신에게 발전적이며, 가장 드라마틱한 결말에 이를 수 있는 방법. 바바라 노박양의 작전 대상은 잘나가는 바람둥이이자 남성지 기자 캐처 블락(이완 맥그리거). 아리따운 여성들과 쉴새없이 데이트를 즐기는 그를 오래 전부터 마음에 품었던 바바라는 그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었던 모양이다. 외모와 패션감각까지 겸비해 나타난 그녀는 뉴욕 전역에 ‘여자도 사랑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섹스를 즐겨라’는 메시지를 설파하며,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까지 오른다. 캐처 블락은 그제서야 그녀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데, 막상 알고 보면 이 모든 것은 바바라의 계획에 들어 있다는 사실. 작업을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내게 작업하도록, 피눈물나게 노력하라! 이의 제기 없이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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