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카메라 뒤에 누가 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
2001-09-26

사람들은 가끔 내가 언제부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는가를 묻곤 한다. 그때마다 나는 수원성 주변에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영화 촬영장을 봐왔고, 초등학교 때 카메라를 만들었으며, 중학교 때는 영사기도 만들었기 때문에 영화감독이 된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이야기해준다.

물론 당시에 내가 만든 카메라와 영사기는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 말에 어느 정도의 과장이 섞여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눈치다.

어쨌든 그런 질문에 좀더 확실한 대답을 하려고 어린 시절을 좀더 깊숙이 더듬어보면 내게 커다란 영향을 준 영화가 떠오른다. 제일 처음 떠오르는 영화가 중학생 시절에 본 <지붕 위의 바이올린>이다.

미션계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성경을 가르치시던 목사님이 영화광이셨기 때문에 우린 반공영화와 종교적인 영화뿐 아니라 웬만한 교훈이 담겼다고 생각하는 영화라면 거의 다 볼 수 있었다. <니벨룽겐의 반지>를 각색한 <지그프리드> <지붕 위의 바이올린> <빠삐용> <포세이돈 어드벤처> 등등 많은 영화들이 그 시절에 본 잊혀지지 않을 작품들이다. 그중에서도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을 각색한 <…바이올린>은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스크린을 가득 채운 시네마스코프의 시원한 화면, 멀리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다가오는 기차,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아이작 스턴의 의미를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모습,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시집가는 딸들, 딸아이의 결혼식장에서 흐르던 <Sunrise Sunset>, 결혼 피로연의 러시아식 댄스, 안개낀 아침 우크라이나의 진흙탕 길을 떠나는 유대인들….

그러나 그런 장면들 못지않게 중학생인 내게 강렬한 인상을 준 장면이 있었다. 카메라 뒤에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정말 믿지 못할 한순간이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주인공인 피터 유스티노프가 딸과 딸의 애인에게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카메라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독백을 하는 장면 때문이었다. 그 장면은 당시에 봐오던 영화의 장면들과는 너무도 달라보였다. 아버지가 카메라를 보는 순간, 딸과 딸의 애인은 멀리 100m쯤 뒤로 물러나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 장면은 내게 부녀 사이의 묘한 거리감을 느끼게 했고 또, 영화 속 배우들과 카메라가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있으며, 그 누군가가 자신의 의도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해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바로 감독이었다! 노먼 주이슨 감독!

나는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뒤 난 그 영화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했고, 결국 그 주인공이 <쿼바디스>에서 네로 황제 역할을 했던 배우란 것을 알게 됐으며, 바이올린을 켜던 사람이 아이작 스턴이고, 그 영화를 만든 노먼 주이슨 감독이 <언제나 마음은 태양>을 만들었다고 친구들한테 자랑스럽게 떠들어댈 수 있었다.

지금도 <…바이올린>을 떠올리면 인생, 가난, 헤어짐, 세월 등등의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Sunrise Sunset>의 음률이 살아나면서 슬픔이 가슴을 적신다.

언젠가 아기였던 딸을 안고 있다가 문득 <…바이올린>의 결혼식장면과 의 가사를 떠올린 적이 있다. ‘해는 뜨고, 해는 지고, 우리 아이가 언제 이렇게 컸나’ 하는 가사 내용이 딸을 키우는 나로서도 언젠가는 분명히 경험해야만 하는 운명적인 예언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바이올린>만이 내 인생의 유일한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게 영화 밖의 어떤 세상을 알려주고, 영화의 세상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해준 영화로서 그 영화를 제일 먼저 꼽고 싶다. 그리고 극장에서 그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다면 내 딸들과, 또 내 아내와 손을 잡고 다시 보러 갈 것이다.

글: 곽재용/ 영화감독 <비오는 날의 수채화> <엽기적인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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