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여신>의 맹인 소녀, <하나와 앨리스>의 깜찍한 여고생, <릴리슈슈의 모든 것>의 원조교제하는 여중생…. 약간 어눌하면서도 조용조용한 말투, 긴 생머리, 교복 치마, 단정한 길이의 스타킹까지. 아오이 유우가 가진 순수함에는 야동이나 노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비한 매력이 숨어 있다. 그녀의 연기는 단지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안의 감성을 자극한다. 일본을 벗어나 아시아 스타로 급부상한 아오이 유우의 매력을 알아본다.
Yu Aoi 아오이 유우
1999년 뮤지컬 <애니>의 폴리 역 오디션에서 1만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데뷔했다. TV도쿄의 <오하스타>(おはスタ)에서 ‘오하걸’로 고정출연하는 등 잡지와 CF 등에서 폭넓은 활동하던 그녀는 2001년 이와이 순지 감독의 <릴리슈슈의 모든 것>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이후 미야자와 리에, 이케와키 치즈루 등 수많은 미소녀를 배출한 광고 미쓰이 리하우스의 10대 리하우스걸을 맡으면서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했다. 10대 시절 출연한 <해충>(害蟲, 2001)에서 서서히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한 그녀는 한해 10편의 영화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일본영화를 지켜갈 차세대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Alice 러키걸 앨리스
분명 <하나와 앨리스>다. 제목으로 보자면 하나(스즈키 안)가 메인 캐릭터여야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는 사실 앨리스(아오이 유우)의 영화다. 짝사랑하는 남학생(마사시)이 머리를 다치자 기억상실증이라며 자신이 그의 여자친구라고 우기는 하나. 앨리스는 그녀의 단짝 친구다. 하지만 이들의 묘한 삼각관계에서 앨리스는 일종의 승리자다. 하나는 마사시를 사랑하지만 마사시의 마음은 앨리스에게 있기 때문이다. 아오이 유우는 영화에서 늘 이런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짝사랑하기보다는 짝사랑을 받고, 질투하기보다는 질투의 대상이 되는 타입이다. 하지만 그녀를 미워할 수 없는 건 그녀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의 관심에 무관심하지만, 결국 행운을 독차지하는 그녀는 러키걸이다.
Blue 세룰리언 블루
아오이(Aoi)는 일본어로 ‘파랗다’는 뜻이다. 물론 한자는 다르지만 ‘아오이’라는 발음에서 그녀의 색깔이 느껴진다. 미술용어로 치면 ‘세룰리언 블루’의 이미지에 가깝다. 이 색은 티없이 맑고 화창한 느낌의 파란색이다. 그녀의 말투에는 꾸밈이 없고, 그 나이 또래의 여느 배우들처럼 카메라를 의식하는 법도 없다. 그녀는 맑은 수채화에 살짝 덧칠된 세룰리언 블루다.
Dance 댄스
<하나와 앨리스>에는 인상적인 댄스신이 두 장면 등장한다. 하나는 종반부에서 오디션을 보러 간 앨리스가 종이컵에 테이프를 돌돌 말아 즉석에서 선보인 발레신이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리를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 오디션 관계자들이 당황하자, 오히려 “팬티 좀 본다고 닳나요?” 하면서 발레를 추는 그녀의 엉뚱함은 지루할 정도로 긴 후반부의 나른함을 덜어내주기에 충분했다. 2살 때부터 배웠다는 고전발레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이 5분짜리 신을 위해 그녀는 이틀간 계속 발레를 춰야 했다고. 그녀의 춤 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폐쇄된 탄광마을 사람들이 절망을 딛고 당시 일본 사람들이 동경하는 하와이를 본뜬 휴양지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 <훌라걸스>에서 그녀는 훌라춤 추는 데 반대하는 어머니와 싸우고 집을 나와 오로지 춤에 매달리는 탄광촌 소녀 역을 맡아 경쾌한 훌라춤을 선사한다.
Extraordinary 남다른 존재감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에서 주인공 스즈메(‘참새’라는 뜻)가 “스티커 붙이는 센스가 인생의 센스이기도 하다”라고 독백하는 부분이 있다. 스즈메는 스스로 지독하게 평범해서 존재감이 없다고 느끼며 친구인 쿠자쿠(‘공작’이라는 뜻)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쿠자쿠는 학창 시절부터 스티커 붙이는 센스가 남달랐고, 이불 터는 법도 색다르며, 뽑기를 해도 높은 등수에 걸리는 ‘평범하지 않은’ 친구다. 파리에 가서 프랑스인과 동거하고 싶어 하는 엉뚱한 쿠자쿠 역은 아오이 유우가 맡았는데, 이전에 출연한 영화의 이미지와는 완전 다른 유쾌 발랄한 모습을 보여준다. 두건을 쓰고 어망을 당기며 일부러 남성적인 체하는 모습이 엉뚱하고 귀엽다.
Genius 천재
우미노 지카 원작으로 일본 내에서 50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 만화 <허니와 클로버>의 영화화가 결정됐을 때, 천재화가 ‘하구미’ 역을 맡을 배우도 만장일치로 확정되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아오이 유우. 극중에서 145cm의 단신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천재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하구미와 가녀리고 청순한 외모 밑에 악바리 근성과 완벽주의자의 모습을 감춘 아오이 유우가 서로 닮은 사실은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Honor 상복
2006년은 아오이 유우에게 상복이 터진 한해였다. <훌라걸스>로 닛칸스포츠 영화대상 신인상을 탄 것을 비롯해 현재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과 여우조연상 등 두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훌라걸스>는 2007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 부문 일본 대표작으로 출품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또 2차 세계대전 당시 전함 야마토의 생존자를 다룬 영화 <남자들의 야마토>로도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로써 아오이 유우는 <릴리슈슈의 모든 것>으로 데뷔한 지 5년 만에 명실공히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배우가 되었다.
Prolific 다작
아오이 유우는 지칠 줄 모른다. 분명 ‘일단 시나리오를 받는 대로 다 출연하고 보자’란 심정은 아닐 텐데, 데뷔 이래 출연한 영화가 벌써 20편을 넘어섰다. 양뿐만 아니라 <하나와 앨리스> <무지개 여신> 등 섬세한 멜로영화부터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등 코미디영화, <남자들의 야마토> 등 전쟁영화까지 연기 폭도 다양하다. 2006년 부산영화제에서도 <훌라걸스> <무지개 여신> <혐오스러운 마츠코의 일생> 등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3편이나 소개됐으며 오다기리 조와 공연한 <무시시>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녀 앞으로 접수된 한국영화 시나리오도 3~4편에 이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대체 그녀의 연기 욕심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Sensitivity 감수성
<무지개 여신>은 아오이 유우가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이후 우에노 주리와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전작에서 달라도 너무 다른 친구 사이로 나왔던 두 사람은 <무지개 여신>에서는 애정이 남다른 자매로 나온다(실제로 우에노 주리가 아오이 유우보다 한살 어리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순수하고 밝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아오이 유우의 모습은 ‘여동생의 전형’을 보여주는 듯하다. 보통 여동생의 이미지가 귀엽고도 얄미운 느낌이라면, 여기서 그녀는 언니마저도 안아주는 기특한 동생의 느낌이다. 가령 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언니의 짝사랑 토모야(이치하라 하야토)에게 능청스럽게 언니 얘기를 늘어놓는 모습이나, 언니가 죽은 뒤 토모야 앞에서 언니가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설명하며 오열을 터뜨리던 그녀의 모습은 사랑스러움을 넘어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