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 리뷰]
실화의 힘과 영화적 느슨함, <그놈 목소리> 첫 공개
2007-01-22
글 : 문석

<그놈 목소리> 기자시사회

일시 1월22일
장소 CGV 용산

이 영화
입바른 소리를 대놓고 해서 국민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방송사 9시뉴스 앵커 한경배는 아내 오지선, 3대독자 아들 상우와 함께 행복한 일상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와 아내의 삶을 지옥으로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상우가 누군가에게 유괴된 것이다. 상우를 볼모로 삼은 유괴범의 요구에 따라 한경배는 1억원을 들고 약속장소로 나가지만, 이 간교하고 지능적이며 악랄한 유괴범은 약속장소를 바꿔가며 완전범죄를 노린다. 게다가 아내 오지선의 신고는 범인의 경계심을 돋워놓는다. 과학수사를 내세우지만 실상 무능하기 짝이 없는 경찰이 범인의 그림자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와중, 한경배와 오지선은 피마르는 44일을 보내야 한다.

말X3
“그놈 목소리 연기에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당연한 거다. ‘그놈’은 우리 이웃,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박진표 감독, 강동원이 연기한 ‘그놈’의 목소리가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냐는 질문에 대해.

100자평

<죽어도 좋아> <너는 내 운명>에서 이미 실화를 바탕으로 극화를 만드는 박진표 감독이 이번엔 15년전 있었던 유괴 사건를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놈 목소리>는 독특하게도 ‘유괴’라는 소재를 차용해 범죄 수사물이 아닌 멜로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범인을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유괴라는 반인륜적인 범죄가 어떻게 한 가족을 비극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가에 집중한다. 플롯이 온통 범인의 목소리에 농락당하는, 아이 잃은 부모의 슬픔만을 강조하면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만 몰입하므로 중반 이후 계속 반복되는 구조 때문에 서사적 긴장력이 떨어진다. 센세이셔널한 ‘팩트’는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을 담아내기에 적합한 조리법을 찾지 못하면 좋은 영화의 충분조건이 되지는 못하는 법이다.
김지미/ 영화평론가

아이는 죽어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것은 영화가 배신할 수 없는 실화의 내용이고 이미 정해진 결말이다. 게다가 두 시간을 유괴범과 맞닥뜨리고 있는 부모의 심정만으로 영화를 구성할 수는 없다. <그놈 목소리>는 이러한 맥락에서 영화를 세 가지 길로 나아가도록 한다. 첫 번째는 오지선(김남주)가 담당하고 있는 유괴당한 부모의 심정이 드러나는 부분이고, 두 번째는 아이의 아버지인 한경배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환경과 역전된 상황에 위치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수사를 하는 경찰관들에 대한 부분으로 이는 그 시대(1991년)의 공권력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분이다. 기자 출신의 앵커인 한경배는 유괴 전까지는 타자들의 삶을 샅샅이 파헤치며 바라볼 수 있는 ‘권력-시선’의 주체였지만, 자신의 아이가 유괴당한 이후 어디에선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익명의 시선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지는 상황에 직면한다. 그럼으로써 시선의 주체는 시선의 객체가 된다. 문제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시선’ 앞에서 경찰-공권력은 한없이 무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실화 자체 보다는 한경배 및 경찰에 관련한 부분들이다. 실화임을 강조함으로써 영화는 텍스트 내적으로는 얻은 것만큼이나 잃은 것도 많아 보이는데(개인적으로는 굳이 실화임을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히 연출할 수 있었던 작품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그놈 목소리>는 왜 실화라는 사실에 스스로를 묶어둔 것일까? 혹시 작품의 공익성과 진정성(그 단적인 예는 영화의 엔딩으로, 그 연출 방식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을 강조함으로써, 이를 마켓팅 전략을 활용하려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지나친 의심일까?
안시환/ 영화평론가

<그놈 목소리>는 감독의 ‘의도’가 분명한 영화다. 1991년 발생한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을 토대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1월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 사건의 범인이 여전히 잡혀야 하며, 단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박진표 감독은 <너는 내 운명>에서 보여준 바 있는 투박하지만 뚝심있는 연출로 객석을 2시간동안 심리적 지옥으로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모든 장치를 관객으로 하여금 자식을 빼앗긴 부모의 심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사용한 탓에 후반부로 갈수록 이 ‘지옥체험’의 강도는 더해만 간다. 지독하게 우울하고 처절해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제작하기로 결정한 것만으로도 모험이라는 느낌을 줄 정도. 하지만, 부모들의 애끊는 상황과 병행되는 경찰들의 에피소드는 존재 이유를 깨닫기 힘들 정도로 사족이라는 인상을 풍긴다. 이들 에피소드는 간간이 엄청난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 배치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쏭달쏭한 느낌을 전한다. 또 박진표 감독의 핵심적인 의도가 담겨있는 마지막 시퀀스는 의도적으로 영화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직접적인 ‘주장’을 펼치는 모험을 펼치지만, 그 성공 여부를 둘러싸고선 논란이 충분히 예상된다. 물론, 모처럼 균형감을 찾은 설경구와 혼신을 다한 김남주의 연기를 보려 한다면 이 영화는 상당한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문석/ <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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