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선생님을 <이어도>에서 뵙고선 정말 좋아했거든요.” 애정고백의 연속이다. 지난 1월20일, 2007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된 고 김기영 감독의 영화 <이어도>는 지난 30년간 잊혀졌던 배우 이화시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미 영화를 통해 이화시를 영접했던 관객은 그녀를 실제로 만난 기쁨에 말을 잇지 못했고, 관객과의 대화 뒤에도 몇몇 관객은 차마 그녀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화시는 전설에나 등장할 법한 신비의 여인인 듯싶었다. 빨간 저고리를 흩날리며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으로 이야기를 하는 이어도의 여인. 그녀는 모여든 관객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남기면서도 자신을 향한 관객의 시선에 눈을 맞추며 화답했다.
<이어도>에서 손민자를 연기한 이화시는 <파계> <흙>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 <반금련> 등 김기영 감독의 여러 영화에서 묘한 눈빛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배우다. 하지만 당시 영화의 흥행실패는 그녀에게 큰 상처를 안겼고, “모든 걸 다 잊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계와 한국을 떠난 그녀는 이후 김기영 감독의 영화세계가 재조명될 때까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를 세상 밖으로 끌어낸 건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접한 관객의 부름이었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이화시는 몇몇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뒤, 많은 영화인들의 환영을 받았고 지금까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파리에서 열린 김기영 특별전에 참석하는가 하면,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에서는 극중 앤드류(데이비드 맥기니스)의 어머니로 출연해 다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했다. “대부분 사람들의 젊은 시절은 좋은 기억으로 가득한데, 나는 외로운 일이 더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무슨 기적 같은 상황 아닌가. 이제는 애들도 많이 컸고, 그동안 숨겨둔 열정을 마음껏 불태워도 될 때인 것 같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그녀는 목에 사레가 걸릴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쉼없이 했다. “연기할 때도 특이한 역만 연기해서 그런지 그냥 평범하게 이야기하는 건 재미없다. 대화도 에너제틱해야 흥이 난다. 나이 먹어서 주책이긴 하지만. (웃음)”
-젊은 친구들과 함께 자신의 영화를 본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내가 20대부터 거의 10년 동안 영화를 했지만, 뜨질 못하지 않았나. 그것 때문에 아린 가슴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온 걸 보면 내 젊은 날의 보석이 다시 빛을 발하게 된 것 같다. 지금 내 나이에 누가 나처럼 이런 기쁨을 맛볼 수 있겠는가. 인생이란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웃음)
-연기를 그만두고 있던 시절이 매우 힘들었나보다.
=그 당시 배우들은 쉽게 영화에 접근했지만, 나는 항상 한없이 고민했다. 염세적이었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처음에 내가 학교를 그만두면서까지 배우를 시작했을 때는 ‘내가 한국을 휘어잡고 말겠다’ 하는 게 있었다. 게다가 김기영 감독의 작품이었지 않나. 수많은 배우가 물망에 올랐지만, 내가 뽑힌 거였다. 내 인생은 이제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금련>도 우여곡절이 많았고 <이어도>로 고생하면서 마치 내가 패배자처럼 느껴졌다.
-꼭 영화가 아니어도 연극이나 드라마로 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반금련> 시사회를 한 뒤에 화장품 모델 제의가 들어왔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의 화장품 모델은 인생을 180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회사에서 못하게 하더라. 전속으로 묶여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어도>가 개봉되기 전에는 타 작품도 연극도 못하게 했다. 그런데 <반금련>도 늦게 개봉되고, <이어도>도 흥행이 안 된 거다. 그때 내가 20대 중반이었으니, 마음이 무너져도 한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지. 심지어 감독님도 너무 미워서 연락을 안 했다.
-그래도 김기영 감독의 영면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안타까웠겠다.
=그때가 98년이었던가? 외국에 나가 있을 때였다. 돌아가신 지 이틀 뒤에 연락을 받았다. 그동안 잘해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다. 파리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시네마테크 극장 안에서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잠시 영사실을 보니까 감독님이 서 계신 거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그런데 조금 있다보니까 없더라고. 내가 뭘 봤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김 감독님의 아드님이었다. 생김새나 풍채나 거의 똑같이 생겼더라. 그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나를 너무 아껴주시고, 예뻐해주셨는데… 안타깝게도 상황이 안 따라준 거지.
-지난해 했던 인터뷰를 보면 영화의 흥행보다도 당시 중앙정보부가 연기생활을 강제로 그만두게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 자칫하면 와전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나도 사람들에게 듣기만 했다. 그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내 영화를 보고 “쟤가 누구냐?”고 했던 거다. 그 당시에 “쟤가 누구냐?”는 식으로 말이 나오면 일단 무조건 데려가려고 했었다. 다행히 내가 그때 뭔가 안 좋은 기류를 눈치채고 지방에 내려가 있을 때였는데, 내가 없는 사이에 찾으러 왔었다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니까 내 외모에 퇴폐적인 색기가 흐른다며 영화에 출연시키지 말라고 했다더라.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날 보호해주려고 한 덕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 적은 없었다. 연기를 그만둔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 컸다. 파리에서 인터뷰를 할 때 한 기자가 물어보더라. 캐나다에 간 것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망명이었냐고. (웃음)
-<이어도>의 손민자를 보면 실제 그런 일이 정말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보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린 채 눈만 드러내고 있는데 퇴폐적이라기보다는 뇌쇄적인 끼가 보인다.
=내가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한다. 가끔 노래방에 가면 <봄날은 간다>를 부르곤 하는데 가사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이러지 않나. 그때마다 그 장면이 자주 생각난다. 또 평소에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손민자란 캐릭터가 내 운명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고 했던 송대관은 정말 스타가 됐지 않나. 손민자 역시 내 인생을 알게 모르게 많이 움직였다. 내가 그리 잘난 것도 아닌데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남자들이 나 때문에 고민이 많아졌다 그러질 않나. (일동 웃음) 그 뒤 가끔 드라마를 할 때도 비슷한 역할만 들어왔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캐릭터들이었나.
=한번은 고석만 PD가 연출하는 MBC 금요극장에 출연했는데, 거기서도 묘한 분위기를 가진 여자를 연기했다. 돈은 늙은 남자에게 떼먹으면서, 젊은 남자의 가정을 깨트리는 여자였다. 술 한잔 마시고, 담배연기 쫙 뱉고 나서는 눈 내리깔고 “자기가 먼저 샤워할래?” 이런 대사를 해야 하는 거다. (웃음) 또 한번은 <왕룽일가>에서 연하의 남자랑 사는 여자를 연기했는데, 주위에는 요리선생을 하러 나간다고 해놓고 파출부를 나가는 여자였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나를 몰라봤는데, 캐릭터가 당시로서는 특이하니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라. 나중에는 이종한 PD가 내 역할을 키우려 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연상녀, 연하남 커플이 받아들여지기 힘든 때였으니까.
-지금 봐도 <이어도>에서 본 눈빛이 많이 살아 있는 것 같다. PD들도 당신이 가진 묘한 눈빛 때문에 그런 게 아니었을까.
=눈빛에 끼가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눈으로 빠져들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는 눈으로 사람 잡아먹는다는 말도 들었다. (웃음) 한번은 친구랑 친구 애인을 같이 만났는데, 나중에 친구가 화를 내더라고. 나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그 남자에게 내가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오해한 거지. 그 뒤로는 사람을 만날 때면 일부러 눈을 내리까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친구의 남자친구는 절대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괜히 남의 애인에게 친절히 대해주면 항상 사건이 생기더라. (일동 웃음)
-작품에서나 현실에서나 많이 피곤했을 것 같다.
=왜 나는 그런 캐릭터만 해야 하나 싶었다. 항상 남자를 후리는 역할 말이다. (웃음) 내 특이한 행동이나 눈빛에 사람들이 빨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옛날에 남자들이 말하길 나랑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빨려들어온다는 거다. 정말 예쁜 여자는 막상 이야기하면 새침떨기나 하지 말도 없고 재미도 없지 않나. 그런데 조금 못생긴 여자도 눈을 번뜩이고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남자가 느끼기엔 ‘이 여자가 날 좋아하나?’ 싶은 거지. 물론 그런 나의 표정이 다양하고 큰 것도 김기영 감독이 길러주신 거다. 요즘도 가끔 나도 모르게 그런 모습이 나오면 주위 사람들이 ‘지금은 배우 아니시거든?’ 이런다. (웃음)
-단국대 국문과 재학 당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김기영 감독을 만났다고 들었다. 김기영 감독의 첫인상은 어땠나.
=세운상가 근처에 있는 다방에서 만났었다. 살도 찌고 덩치도 크신 분이 의자에 몸을 젖히고 앉아 있는데 거만해 보이더라. 사람이 오면 좀 몸이라도 바로 세우든가 해야 하는데 그러질 않는 거다. 내가 그때 스물한살인가 스물두살 때였는데, 얼마나 볼썽사나워 보였겠나. (일동 웃음) 나중에 날 보더니 천천히 몸을 세우고 “물건인가 한번 테스트를 해봐야지?” 하더라. 생전처음 ‘물건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굉장히 나를 비하하는 줄 알았다. 물론 어르신들끼리 얘가 배우가 될 만한 애인가 시험해보자 했던 거지. 아무튼 다음날 카메라 테스트가 있다면서 요즘 말로 쌩얼로 나오라고 했다. 세수만 하고 다음날 갔더니 김기영 감독이 말을 시키면서 사진을 막 찍고는 계약하자고 하더라. 그러고 나서 감독님에게 몇 개월 동안 연기지도를 받았다.
-김기영 감독의 연기수업은 어떤 방식이었나.
=정말 남다른 방식이었다. 직접 글을 써주셨는데, 종이 맨 위에다가 “슬플 때 울고, 기쁠 때 웃는 것은 연기의 일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문장을 항상 써놓고 밑에다 대사를 쓰곤 했다. 그걸 보면서 연습을 하는데, 만일 내가 ‘자기야, 밥 먹었어?’ 이런 대사를 애교스럽게 하면 감독님은 되게 싫어하셨다. 텅 빈 연기라면서 느낌이 좀더 있어야 한다는 거지. 여러 각도에서 연기해보라고 하면서 말론 브랜도 같은 배우들이 어떻게 연기공부를 했는지 알려주더라. 같은 대사도 슬플 때와 기쁠 때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 ‘어머니’란 단 한마디도 천 가지 방식으로 부를 수 있는 걸 아냐면서 다양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화시란 이름도 김기영 감독이 지어주었다고 들었다. 중국의 서시라는 여인에서 따왔다고.
=서시 이전에 다른 이야기도 있다. 감독님이 어느 날 알랭 들롱이 왜 미간에 주름이 있는 줄 아냐고 묻더라. 말인즉 너무 잘생긴 배우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되면 관객은 ‘왜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힘들어야 하는 거지’ 하며 의아해한다는 거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알랭 들롱이 미간을 찌푸리기 시작했다더라. 그러고 나니까 관객은 알랭 들롱이 무엇이 못마땅한 게 있을까 싶어서 이야기에 확 빨려갔다는 거다. 내 이름을 이화시로 지어준 것도 서시라는 여인이 얼굴을 찌푸려도 예뻤다고 하기에 지은 거다. 그런데 나는 이화시란 이름이 마음에 안 들었다. ‘내 이름이 이화시인데요’ 이러면 스스로 ‘씨’자를 붙이면서 존댓말하는 것 같지 않나. (웃음)
-김기영 감독은 당시에도 영화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성격 면에서 독특한 감독이었다. 어린 나이의 여대생이 대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을 텐데.
=근데 나도 정말 특이한 사람이었다. 일찍 늙어버렸다고 할까? 감독님과는 이야기가 잘 통했다. 물론 세대 차이는 있었지만, 그분이 사고하시는 세계는 날 항상 충족시켰다. 뭔지 모르게 코드가 맞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김기영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들에서도 취향이 맞았을 것 같다.
=감독님과는 데이비드 린이 만든 <라이언의 딸>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자주 나누었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과 <제3의 사나이>도 자주 이야기했던 영화다.
- 캐나다에 살면서 최근 한국영화도 많이 봤을 것 같다. 가장 눈여겨 본 영화가 있다면?
= <가족의 탄생>인가?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누군지 궁금해졌다. 특히 문소리와 고두심이 밥 먹을 때 뒤에서 아이가 놀고 있는 장면이 있는데, 세월의 흐름을 거기서 다 보여주더라. 그런데 제목 때문에 흥행이 안 되겠다 싶었다. 사람들은 그 제목에서 그냥 뻔한 이야기를 생각할 테니까.
-특별히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감독이 있나.
=작품은 아직 본 적이 없지만 김기덕 감독의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와 내가 코드가 맞지 않을까 싶더라. 만날 수 있다면 이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요즘 영화 촬영을 하고 있다고 하자) 촬영 때문에 바쁘면 내가 직접 현장에 가야지. 어떤 사람인지 꼭 한번 확인하고 싶다.
-여자 배우들 중에 눈에 들어온 배우가 있는지.
=영화배우는 아닌데 <개그야> ‘사모님’ 에 나오는 김미려를 보면서 내가 감독이면 영화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잘 다듬어서 배우를 시키면 <하녀>나 <충녀>의 캐릭터도 잘 소화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김미려의 어떤 모습이 좋았나.
=‘사모님’에서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약간 사이코 같으면서도 골빈 듯하다 귀여운 모습까지, 여러 캐릭터를 드러내지 않나. 만약 영화를 하게 되면 귀여우면서 사랑스러운 악녀를 연기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개그우먼의 이미지 때문에 변신이 힘들긴 하겠지만 누군가 김미려를 발굴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드러냈으면 한다. 우리 딸이 지금 캐나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있는데, 나중에 김미려를 캐스팅하라고 했다. (웃음) 아마 관객을 휘두를 것이다. 이제는 배우가 되려면 두 가지 모습만 갖춰도 어렵다. 3개, 4개씩 섞어서 보여줄 줄 알아야 한다. 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걸 원하지 않을까?
-아까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보니 본인도 얼마 전 김진아 감독의 <네버 포에버>에 출연했다고 하더라. 어떻게 제의를 받은 건가.
=지난해 한국에 다녀간 이후 김진아 감독이 영화사를 통해서 연락을 했다. 자기도 <이어도>를 보고 나를 너무 좋아했다더라. 남자주인공 어머니 역을 해달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다. 섣불리 다시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두어달 동안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면서 부탁을 하더라. 이야기를 들어보니 할리우드에서 촬영을 한다는데, 과연 거기서는 어떻게 영화를 만드나 궁금하기도 해서 하겠다고 했다.
-<네버 포에버>에서 맡은 배역은 어떤 역할인가.
=미국으로 이민 가서 아들을 변호사 만들고 서양인 며느리를 얻은 어머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아이를 못 낳으니까 약간 스트레스를 주는 거지. 교회를 데리고 다니면서 주님을 믿으면 아이가 생긴다고 은근히 강요를 하는 거다. 처음에는 <반금련>이나 <이어도>에서 했던 것처럼 연기를 해볼까 생각도 했었다. (웃음) 그런데 내가 잘못하면 주인공을 먹어버릴 것 같더라. 그래서 감독이 원하는 대로 엄하면서도 인자한 어머니로 보이도록 연기했다.
-<네버 포에버>가 공개되면 이후로 더 많은 캐스팅 제의가 들어오지 않을까.
=요즘은 관객이 젊지 않나. 그래서 영화도 보면 젊은 사람들의 분노나 사랑, 야망은 그려도 어른은 그들을 말리거나 배경에만 세우는 것 같다. 하지만 어른들의 인생에도 나름 재밌는 이야기가 많다. 만약 어른 캐릭터 중에서도 들러리가 아닌 그 자체로 완벽히 하나인 캐릭터가 있다면 연기해보고 싶다. 출생의 비밀을 알려주는 이런 역할 말고. 어머니도 사람이란 걸 보여줄 수 있는 배역 말이다. 예전에도 (직접 실연하며) 손으로 얼굴 싹 가리면서 쳐다보고, 이런 것만 했는데 평범한 역할은 재미없지 않나. 정말 독특하고 광기있는 역할이 있으면 개런티없이라도 출연하고 싶다. 내가 성격이 좀 굴곡진 면이 있다. 요즘 젊은 사람은 그런 걸 뭐라고 표현하나? 까칠하다? 맞다. 내가 좀 까칠한 면이 있는 것도 같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