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대로 죽으면 한이 남을 것 같아 소설을 썼다
2007-02-28
글 : 문석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카메오 출연차 방한한 <검은집>의 원작자 기시 유스케

황정민이 주연하는 미스터리 공포영화 <검은집>(제작 CJ엔터테인먼트, 감독 신태라)의 원작자인 소설가 기시 유스케가 한국을 찾았다. 1997년 출간된 이 소설은 제4회 일본 호러소설 대상을 받은 데 이어 일본시장에서 100만부가 넘게 팔렸으며 국내에서도 번역돼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스터리, 호러, SF 등의 지향이 분명한 그는 그동안 <검은집> 외에도 <13번째 인격-ISOLA> <푸른 불꽃> <유리망치> 같은 작품을 써왔으며 이중 <13번째 인격-ISOLA> <푸른 불꽃> <검은집>은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판 <검은집> 촬영현장을 방문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은 기시 유스케는 전직 보험회사 직원답게 단정한 모습이었지만, 그동안 자신의 작품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모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엉뚱한 면모도 품고 있다. 그의 카메오 출연 행진은 한국영화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네 번째 작품이자 첫 외국영화 출연을 마친 그는 현장의 흥분을 간직한 듯 약간 상기된 표정이었다.

-촬영현장을 방문해서 출연까지 했는데 느낌이 어땠나.
=연기라고 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감독님이 호의를 베풀어주셔서 한 장면에 출연했다. (웃음) 일본판 <검은집>에서도 한 장면 출연했는데, 내가 만들어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세계에 한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어떤 역할을 맡았나. 그 배역은 직접 선정한 것인가.
=일본인 관광객 역할을 맡았다. 보험회사 창구에서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뿐 아니라 한국판 시나리오를 쓴 이영종 작가가 통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 역할은 감독님이 마련해줬다.

-일본에서도 <검은집>이나 <푸른 불꽃>처럼 본인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에 출연했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는 뭔가.
=예전부터 자신의 영화에 항상 출연했던 히치콕 감독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다. 영화는 소설과 달리 감독, 배우, 스탭들이 만들어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 한몫하고 싶다는 마음에 출연했다.

-현장에서 주인공인 황정민을 만나봤을 텐데 원작자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황정민이 한국에서 인기도 많고 연기파 배우라는 말은 들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정말 존재감있는 배우라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에서도 ‘아우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런 아우라가 있었다. 뿔테 안경을 쓰고 양복을 입은 것을 보니 정말 보험회사 직원 같은 느낌이 들어 어떤 역을 맡아도 그 역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배우라는 인상이 들었다.

-한국판 <검은집> 시나리오를 읽어본 것으로 아는데 원작자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나.
=처음에 한국에서 영화화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라도 다르고 보험 시스템도 다르기 때문에 원작과 굉장히 차이나는, 새로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더욱 원작과 가깝고 원작의 정신을 살려준 것 같아 오히려 일본판 영화보다 원작에 가까운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 <검은집>은 작가 본인이 보험회사를 다녔던 경험이 녹아 있다고 들었다. 혹시 본인이 직접 그런 사건을 겪었던 것인가.
=<검은집>은 결국 경험에서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소설에서처럼 생명의 위험을 겪은 적은 없다. (웃음)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창구에서 이런저런 손님들이 트러블을 일으키는 것은 직접 경험했다.

-<유리망치>라든가 <푸른 불꽃> 같은 다른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이 소설 또한 현대인 내면의 불안을 다뤘다. <검은집>은 어떤 생각에서 구상을 시작했나.
=나는 항상 현대인의 불안이나 마음의 병 등을 모티브로 해서 글을 쓰고 있다. <검은집>은 이런 모티브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내가 회사에서 일할 때 계속 느껴왔던 마음의 불안 같은 것을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할 수 있도록, 그것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구상했다.

-보험회사를 다니다가 전업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
=예전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 생각에 소설가라는 것은 현실적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소설가의 길을 일단 포기하고 가장 안정적인 회사에 들어가자는 생각에 보험업체에 들어갔다. 그런데 보험회사는 죽음이라든지 위험 같은 일을 주로 다루지 않나. 게다가 입사 동기가 어느 날 사망했다. 그런 것을 보면서 나도 이대로 죽으면 뭔가 한이 남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소설을 쓰게 됐다. (웃음)

-책을 쓰기 전 꼼꼼하게 취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는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항상 독자의 오감을 충족시키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묘사뿐 아니라 소리, 촉감, 냄새 등을 풍부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꼭 현장에 가서 그 공기를 직접 느끼고,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쓴다.

-<검은집>도 취재가 필요했나.
=<검은집>은 다른 작품과 달리 취재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쓰자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내가 살던 곳, 다니던 곳, 알고 있는 곳을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특별히 취재를 하지는 않았다.

-소설에서 중요 공간인 ‘검은집’은 어떤 모델이 있었나.
=<검은집>은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오래되고 허물어지는 집의 이미지를 갖고 썼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그 집이 이 집을 모델로 한 거 아니냐’면서 소설 속 검은집과 비슷한 곳이 있다고 말하더라. 그래서 친구를 따라 그곳에 가봤는데, 소설에서와 비슷한 곳에 비슷한 이미지의 집이 있어서 굉장히 섬뜩했다.

-<검은집>은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소설이 담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나 불안감이 비슷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 소설을 쓰던 당시 생각했던 현대 일본사회의 문제는 무엇이었나.
=흉악범죄가 늘어나고 있는데, 하나하나의 엽기적인 사건들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일본사회 전체의 모럴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회사 창구에서 일할 때도 느꼈지만, ‘돈이 전부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살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등 사회의 모럴이 없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 문제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국에 이틀 동안 체류하면서 느낀 것은 그래도 일본에 비하면 한국에는 사회적 모럴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조금만 더 살아보면 꼭 그런 생각을 가지지는 않을 텐데.
=그런가. (웃음)

-당신은 현대인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데, 일본사회가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나.
=아까 말한 모럴의 붕괴다. 예전에는 종교처럼 인간을 버티게 하는 확고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빈부 격차도 심해지고 동정심도 없어지고…. 사람이 사람으로서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이렇게 모럴이 붕괴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음…. 일단 특효약은 없는 것 같다. 시대착오적인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게 급선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단 사람들이 사회 변화의 필요성과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고, 그 관심에서 시작해 많은 사람들의 참여로 변화를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은집>은 결국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인간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나는 유령이나 귀신이 무섭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말한 대로 살아 있는 사람이 가장 무서운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은 아직도 엄숙주의가 문학계를 지배하고 있어서 장르 문학은 무시당하는 편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장르 문학이 발전하는 듯하다. 어떤 차이가 있다고 보는가.
=소설가도 독자가 있어야 존재한다. 장르물도 그에 대한 독자가 있어야 존립할 수 있다. 연애물이건 추리물이건 공포물이건 결국 일본에는 다양한 수요를 가진 독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다양한 장르의 문학이 나올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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