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300명 스파르타 전사를 깨운 스타일의 시
2007-03-07
글 : 황수진 (LA 통신원)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영화화한 잭 스나이더 감독의 <300> LA 시사기 및 감독·배우 인터뷰

신화는 명예를 목숨같이 여겼고, 전쟁을 사랑했지만 오래전에 역사 속에서 사라져버린 스파르타의 전사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자신들에 대해 어떤 조각도, 그림도, 시도 만들어 남기지 않았던 그들은 오직 타자의 눈으로만 기억되었다. 기원전 480년 리오니다스왕이 이끄는 300명의 스파르타군이 크세르크세스의 페르시아군에 의해 전멸당했던 테르모필레전투를 다룬 <씬 시티>의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300> 은 출판되자마자 전세계 그래픽 노블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팬의 하나이자 뮤직비디오와 커머셜에서 감각을 인정받은 바 있는 <새벽의 저주>의 잭 스나이더에 의해 이제 300명의 스파르타 전사들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다시 눈을 뜨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잭 스나이더의 <300>은 한편의 시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그의 시는 역동적이다. 그는 ‘프랭크 프레임’ 이라고 칭할 정도로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조심스럽고 리듬감있게 원작의 비어 있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채우는 한편, 프랭크 밀러가 지면에서 가지지 못했던 사운드와 음악 그리고 움직임을 자신의 움직이는 2차면 화면에 더해 <300>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사실 블루 스크린 기법이나 카메라 스피드 램핑 기법은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그러나 정확히 기술을 이해하고 그 사용에 익숙한 잭 스나이더는 현재와 멀리 떨어진 환상적인 시공간인 자신의 스파르타에서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워 보인다. 잭 스나이더와 그의 팀이 만들어낸 개개의 전투신과 하나의 유닛 단위로 움직이는 스파르타의 전투 스타일의 재현은 ‘완벽한 전사’가 꿈꾸는 ‘아름다운 죽음’을 보여주는 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흐르는 공기 속에서 신과 교감하는 오라클의 트랜스 장면은 뮤직비디오에서부터 갈고닦은 그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가정마다 HDTV가 하나둘씩 들어서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극장 앞으로 이끌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잭 스나이더의 답변은 이제껏 맛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진짜’ 같은 경험이다. 그가 제공하는 경험은 리얼리즘이 아니다. 그는 현실과 닮은 영화를 만들기보다는 현실 속의 관객이 자신의 영화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한다. <300>을 통해 관객은 잭 스나이더의 스파르타 세계로 들어가 헤비메탈을 들으며 프랭크 밀러의 다분히 현대적인 시각을 맛보게 된다.

<알렉산더>와 <킹덤 오브 헤븐>이 박스오피스에서 고전한 뒤 수명을 다해버린 것 같은 ‘샌들과 검’ 장르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를 워너브러더스에 설득하기 위해서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부터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데이비드 핀처의 <쎄븐>, 그리고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차지한 <디파디드>를 제작한 지아니 누나리, < 배트맨>과 <맨 인 블랙>의 마크 캔톤 그리고 <매트릭스>를 프로듀싱한 버니 골드먼 등의 쟁쟁한 프로듀서들의 라인업이 필요했다. 프랭크 밀러 스스로가 제작자에 포함된 이 프로젝트는 잭 스나이더와 오래전부터 커머셜 작업을 함께하면서 호흡을 맞춰온 지아니 누나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뤄졌다. 프랭크 밀러의 감각적인 이야기와 잭 스나이더의 스타일이라는 조합은 꽤나 괜찮은 선택이었다. <300>를 보는 동안은 ‘아름다운 죽음’을 꿈꾸는 것이 스파르타 전사들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구겨질 대로 구겨지고 빛바랜 하얀 면티를 입고 나타나 인터뷰 내내 편안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정열과 비전을 분명하게 표현했던 잭 스나이더, 모래빛깔의 머리카락에 파란 눈을 가진 리오니다스왕 역의 제럴드 버틀러와 영화 속 크세르크세스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소년의 얼굴을 가진 로드리고 산토로와의 라운드 테이블과 별도로 이례적으로 공동 각본을 맡은 커트 존스타드와 지아니 누나리 외 5명의 프로듀서가 함께한 프레스 컨퍼런스가 따로 이루어졌다. 그 현장에서 나눴던 대화를 여기에 싣는다.

감독 잭 스나이더 인터뷰

“프랭크 밀러의 원작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를 전달하고 싶었다”

-<씬 시티>의 성공이 <300> 제작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
=<씬 시티>가 성공해서 스튜디오를 설득하는 게 쉬워졌다는 점은 사실이다. 분명한 비즈니스 모델 성공 사례가 있으니 투자대비수익 계산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니까.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스타일을 스크린 위로 옮길 수 있다라는 생각 자체가 이제 먹힌다는 것이다.

-긴 작업 기간이었을 것 같은데 언제 영화가 이제 드디어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던가.
=영화는 절대로 안 끝난다. 계속 고치고 싶고, 다시 하고 싶은 부분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스튜디오에서 이제 그만해라고 할 때까지 붙들고 또 보고 또 본다. 돈을 쏟아붓는 것은 이쯤에서 끝내고 돈을 벌 때가 되지 않았나.

-<300>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나 .
=나는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 <300>이 불러일으키는 정서를 전달하고 싶었다. 영화는 스파르타인의 시각에서 그려지지만, 실제 역사에서 그들의 문화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벼랑 끝에 던져버리고,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들을 매질하지 않는가. 사실 스파르타가 민주정을 위해 싸웠다고 보기도 힘들다. 어쩌면 테르모필레전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냥 우연하게 그냥 그때 터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전쟁터에서의 ‘아름다운 죽음’을 최고의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스파르타인들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존재라고 생각했다. 리오니다스가 “Prepare the glory!”라고 외칠 때 그 소리는 결국 죽을 준비를 하라는 소리이지 않는가. 그들의 그런 광기는 분명히 자극적인 데가 있다. 실제 역사 속의 리오니다스는 영화에서보다 나이가 많은 50대 왕이었다. 당시 50대에 전쟁터에서 죽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는 어쩌면 의도적으로 300명만을 데리고 나갔을 것이다. 이 전투는 그에게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절호의, 그리고 마지막 기회였다. 그들의 여정은 이미 죽음을 향해 있었다.

-프랭크 밀러의 원작에는 사운드가 없다. 사운드에 대한 컨셉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일단 크세르크세스를 맡았던 로드리고의 목소리에 수정이 가해졌다. 그의 목소리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크세르크세스라는 존재의 스케일 문제였다. 화면에서의 크세르크세스는 너무나 거대했는데, 그런 그가 정상적인 목소리로 말하니 이상하게 느껴졌다. 영화에 내레이션이 있는데, 데이비드 웬햄의 목소리다. 프랭크 밀러의 그래픽 노블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가 프레임마다 그림과 더불어 배치된 시적인 지문이다. 정교하게 배치된 그 지문들을 전달하기 위해 내레이션을 넣었다.

-크세르크세스로 새로운 얼굴인 로드리고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율 브린너가 마음에 두었던 이미지였다고 들었다.
=율 브린너… 맞다. (웃음) 로드리고는 아름답다. 그런데 거기에는 단순히 아름다운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사려 깊은 눈을 가진 그의 얼굴에는 한순간 잔인한 폭군으로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래서 선택했다.

-제작 과정에서 스튜디오와 마찰하는 부분은 없었나.
=거의 없었다. 있었다면 등급에 관한 시각 정도? 처음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부터 나는 분명히 이 영화는 섹스와 폭력으로 점철된 R등급이라고 못박고 들어갔다. <300>은 삐죽하게 튀어나온 가시가 있는 작품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 가시를 떼어버리는 순간 본연의 색을 잃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이 영화를 존재하게 했던 팬들이 돌아서버린다. 그럼 이제 어느 누구의 작품도 아닌 게 되고 만다. 영화가 진정한 팬을 제대로 만족시킨다면 바로 그때부터 다른 사람들도 끌어당기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제럴드 버틀러와 로드리고 산토로 인터뷰

“부드러운 흐름을 따라갈 때 강함이 제대로 발산된다”

제럴드 버틀러
로드리고 산토로

-영화를 보니 액션신 때문에 고생이 많았을 것 같았다. 어떻게 준비했나.
=제럴드 버틀러: 영화에서는 외모가 많은 것을 말하고 감정과도 바로 직결된다. 그래서 촬영 전 4개월부터 하루에 6시간씩 전문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아 몸을 만들었다. <300>의 액션은 발레에 가깝다. 강해보이기 위해 힘을 주면 화면에서는 오히려 둔하고 약해 보인다. 중력의 중심에 서서 어떤 부드러운 흐름을 따라갈 때 화면에서 그 강함이 제대로 발산된다는 것을 이번 작품을 통해 깨달았다.

-리오니다스와 자신이 어떤 점을 공유한다고 생각하는가.
=제럴드 버틀러: 몇달 전 같았으면, 전혀라고 대답했을 텐데 내 안에도 어떤 사자가 있다는 것을 요즘 깨닫기 시작한다. 내 속에도 자기파괴적이면서 폭력적인 성향이 깊은 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다. (웃음)

-크세르크세스 역을 위해서는 따로 많은 준비가 필요했을 것 같다.
=로드리고 산토로: 역사 공부를 나름대로 많이 해야 했다. 크세르크세스의 동상에는 ‘그는 아버지가 선택한 아들이다’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늘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고 내세우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에게는 형제가 둘 더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그가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스스로 신으로 군림하는 거대한 존재 이면에는 자신의 자리에 대해 끊임없이 회의하는 한편, 제멋대로인 아이의 모습으로 그 캐릭터를 이해했다. 사실 <300>에서 크세르크세스는 실제로 살아 숨쉬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그냥 말로 꼭 집어 나타낼 수 없는 실체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잭이 내게 최대한 낮은 목소리로 연기하라고 주문했을 때 이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섰다.

-브라질에서는 오래전부터 스타였다고 알고 있다. TV시리즈 <로스트> 출연으로 달라진 것이 있다면.
=로드리고 산토로: 이제 하와이에 산다는 점 정도? 매일 서핑을 하며 살고 있다. 이전까지 하던 역과는 달라서 무척 새롭다.

-영어를 빠른 시간 안에 마스터한 것 같다. 비결이라도.
=로드리고 산토로: 영어를 배운 지 4년이 된 것 같다(그의 영어 실력은 아주 미미한 악센트가 간혹 들릴 정도이다). 처음에는 할리우드에 진출하기 때문에 영어를 따로 배워야겠다고 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캘리포니아에 놀러왔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특히 포루투갈어와 영어는 어순도 달라서 문법을 익히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지금도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많이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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