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k by Me]
[Rank By Me] 최고 혹은 최악, 어쨌건 잊을 수 없는 가족을 뽑아라
2007-03-09
글 : 이다혜
아부지, 우리 가족이 최고래요!

가족은 아군일까 적군일까. 인생 최저질의 순간에도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일반적으로 가족뿐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가족은 아군이 확실하다. 하지만 가족만큼 당신의 약점을 많이 아는 사람들이 또 있던가! (있으면 큰일난다, 가족 말고도 약점잡힌 데가 많다면, 당신 인생을 재설계할 것을 심각하게 권한다.) <괴물>에서처럼 세상 사람 모두 등 돌려도 똘똘 뭉쳐 희망을 잃지 않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심슨 가족>처럼 옆에서 보나 위에서 보나 아래에서 보나 콩가루 집안 같아도 정말 재미있고 사랑스러워서 마니아를 낳는 가족도 있다. 가장 잊을 수 없는 최고의(혹은 최악의) 가족. 누가누가 있을까?

공동 4위 <조용한 가족>
이 가족에 조용하다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분명 신의 장난(아니면 감독의 장난)일 것이다. 바람 잘 날 없는 가족, 콩가루 가족,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는 가족이 바로 이 <조용한 가족>이다. 산장을 운영하게 된 한 가족이 겪는 우여곡절을 그린 이 영화는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으로, 최민식과 송강호, 박인환과 나문희같이 지금은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의 비교적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손님이 들지 않는 외딴 산장에 첫 손님이 찾아온다. 하지만 다음날 그 손님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손님이 끊길까 걱정한 가족은 첫 손님의 시체를 암매장하는데, 산장에 투숙한 커플이 이번엔 동반자살을 한다. 서로 너무 잘 아는 가족들이 서로 놀리고, 때로 불신하고, 가끔은 서로 믿기도 하는 다양한 코믹한 상황들이 마치 시트콤처럼 펼쳐진다.

공동 4위 <바람난 가족>
바람났냐? 나도 바람났다. 지루한 일상, 별볼일없는 시추에이션의 연속인 일상에서 발견한 유일한 출구가 바람이라는 것만으로 한 가족의 평온함은 박살날 지경인데, 이 가족은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바람을 피운다. 정의로운 변호사 영작(황정민)은 나이 어린 여자와 한창 연애 중이다. 그의 아내 호정(문소리)은 전직 무용수로, 동네 무용학원에서 춤추며 소일하다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연하라고 하기보다는 조카뻘인 고삐리와 바람이 났다. 영작의 어머니 병한(윤여정)은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은 내팽개치고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못다핀 불꽃을 활활 태우느라 여념이 없다. 바람을 피우는 게 옳고 그르고를 판단하고 삿대질하는 게 이 영화의 주요 목적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휩싸여 살던 사람들이 ‘나’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그려 보이는 쪽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삶의 단편이다. 하지만 마냥 나 좋다고 쿨하게 살 수 없는 현실,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고 고통에 휩싸인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살 수 있을까? 아니, 대체 제대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3위 <심슨 가족>
애니메이션을 애들이나 보는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심슨 가족>을 보면 더더욱 그렇다. 황달에 걸린 듯한 샛노란 이 가족의 이야기는 인생의 쓰고 단 맛을 본 어른들이 보면 볼수록 단맛이 우러나는 개그의 총집합이다. 아버지는 무력하고, 어머니는 가족을 잘 보살피지만 가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고, 아들 바트는 말썽부릴 생각을 할 때가 아니면 무념무상으로 살아가며, …가끔은 말 못하는 젖먹이가 가장 현명하고 지각있게 행동하는 게 아닐까 싶은 이 기이한 가족. 아버지 호머는 옆집에서 케이블TV를 설치한 것을 보고 부랴부랴 케이블TV를 설치한다. 그리고 24시간 바보상자 앞에서 떠날 수가 없다. 다른 가족이라고 다를 게 없다. 말썽부리기 9단인 바트는 아이들에게 돈을 받고 19금 영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체 이 가족의 폭주를 누가 막을 것인가. 이 가족의 특성은 기껏 정신차리고 제대로 살아보려 발버둥칠수록 더욱 심각한 삶의 구렁텅이에 빠진다는 점.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우리 인생 자체라고도 볼 수 있는 각종 허무한 상황과 수습할수록 커져가는 문제점들을 보며 웃다 보면, 결국 웃음의 대상은 우리 자신, 그리고 사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2위 <가족의 탄생>
미라(문소리)는 혼자 분식집을 운영하며 살아간다. 5년간 소식을 끊고 살았던 동생 형철(엄태웅)이 찾아오자 미라는 나름 반갑게 맞는데, 동생에게는 동행이 있었다. 바로 스무 살 연상의 연인 무신(고두심). 어머니뻘 여자와 사랑에 빠진 동생을 보는 복잡미묘한 심정이란. 연애는 무신. 정말 한대 콱 쥐어박고 싶지만 동생은 그러거나 말거나다. 채현(정유미)은 얼굴이 예쁜 건 물론이고 사실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은 마음만 먹는다면 흠잡을 데 투성이다. 여자친구가 몹시 인기가 좋다 보니 경석은 이래저래 속만 상한다. 어째서 그녀 곁에 있어도 외로운 건가! <가족의 탄생>은 잔뜩 엉킨 실타래같이 꼬인 삶을 잘라내거나 불태우지 않고 어떻게 살살 풀어보려고 노력하다가 좌절하고, 때로 웃고 때로 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족이 좋다, 가족은 별로다, 가족은…. <가족의 탄생>은 가족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인 동시에, 보고 나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많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다.

<괴물>

1위 <괴물>
2006년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괴물>의 가족은 아마도 오랫동안 잊을 수 없는 한국의 가족상으로 남을 것이다. 한강 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변희봉), 그의 장성하다 못해 노쇠할 기미마저 보이는 노랑머리 백수 아들 강두(송강호), 강두의 동생으로 한때 운동권이었으나 지금은 술 마시는 재주밖에 없는 남일(박해일), 그리고 또한 강두의 동생이며 전국체전 때 머뭇거리다가 활시위 놓는 타이밍을 번번이 놓치는 남주(배두나)… 그리고 야무지고 사랑스런 강두의 딸 현서(고아성). 한강 둔치에서 등장한 괴물에게 현서가 납치당한 뒤 이 가족은 남들이 믿어주지 않는 현서의 납치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독하고 처절한 싸움을 시작한다. 한강이라는 무대, 한국적이고도 또 한국적인 면면을 가진 가족 구성원, 그리고 괴물이라는 막강한 적과 벌이는 사투로 구성된 <괴물>은 돈도 빽도 없는 소시민이 결국 포기하지 않고 지켜내려는 가족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준다. 가족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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