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거침없는 이팔청춘, <괴물> <즐거운 인생>의 고아성
2007-03-15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이팔청춘이도다.” 고아성 미니 홈피 맨 위에 보니 그렇게 쓰여 있다. 자기의 화양연화를 이미 정했다는 말투 같다. 그러고 나서 보니 몇장의 사진들과 몇개의 메모들, 사진이나 메모나 성숙하다. 때아닌 눈바람이 날리던 초봄의 어느 날 <즐거운 인생>의 리딩 연습을 마치고 온 이 소녀는 과연 예상을 뛰어 넘는 깊은 심상으로 말할 줄 안다. “별로 기분이 안 좋아요. 제 신경을 건드리는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날에는 날씨나 냄새나 소리에 민감해지거든요.” 눈이 온 참에 친한 척 운을 한번 떼보려고, 참 이상한 날 만났다, 봄에 눈오는 날이라고 너스레를 떠는 기자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녀의 어록. “좋아하는 소리요… 음… 무거운 물건 끄는 소리. 서랍 여는 소리, 사진기 셔터 소리요. 사진은 원래 할아버지가 그쪽에서 일을 하셨고요,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배)두나 언니가 카메라를 사주면서 찍게 됐어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게 뭔지 전 잘 모르겠어요.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가 제 주위에 나타나주는 것 같아요.” 이런, 거의 대가의 깨달음이도다. 그냥 영화 이야기나 물어보자.

고아성이 지금 선택한 영화는 <왕의 남자>와 <라디오 스타>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즐거운 인생>이다. 늙수그레한 아저씨들 몇명이 오랫동안 심심하고 빈약한 삶을 살다가 분연히 일어나 자신들의 열정을 불태운다는 노장 음악 밴드에 관한 이야기다. 오늘은 바로 “이병우 음악감독 콘서트 때 멀리서 한번 보며 <왕의 남자>에서 열연하던 모습을 떠올렸던” 정진영과 “너무 감명깊게 봐서 다음날 그 영화만 생각했다”는 <타짜>의 김윤석, 김상호를 모두 처음 만난 날이다. 그들과 함께할 영화에서 고아성은 기영(정진영)의 딸 주희로 나온다. 사실 역할이 그다지 크지는 않다.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다. “너무 극대화해 기사화됐는데, 사람들은 제가 <괴물> 하고 나서 인지도가 높아졌으니 주연을 하라고 하는데 저는 왜 그래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는 게 좋아요. 주인공은…. 저는 흥미가 생기면 그걸 깊게 파고들다가 그게 질리면 다른 쪽으로 가는 편이에요. 그때쯤에나….” 먼저 궁금한 건 어떤 딸인가 하는 것인데, 드라마 <떨리는 가슴>이나 <괴물>을 보면 이번에도 역시 아빠를 응원하는 씩씩하고 어른스러운 딸 역할일 것 같다. 물론, 처음에는 “철없는 아빠에게 무관심하고, 친구 오니까 아빠에게 비켜달라고 하는 친절하지 못한 딸”로 시작하겠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저를 보면 행복하게 살겠다는 이미지가 있나본데 저는 잘 모르겠어요. 주희 역할을 보면 저랑 닮은 것도 아니거든요. 제가 더 궁금해요. 왜 저한테 시나리오를 주셨는지. (웃음)” 이준익 감독과 처음 만났을 때도 아저씨와 소녀는 특별히 영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이야기 많이 했어요. 영화를 제외한 제 생활이요. 그리고 저는 사람을 처음 만나러 갈 때 예상을 하거나 하진 않아요. 만나고 나서, 아 이런 분이시구나, 해요. 생각해보면 <괴물>의 봉준호 감독님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하기 힘든 정신세계를 지닌 분이에요. 다른 사람들과 언어의 순서가 달라요.” 언어의 순서가 다르다, 이것 참 숙성의 표현이도다. 그렇다면 이 표현력의 소녀가 들려주는 자기 이야기는 어떨까.

세 자매 중 막내딸인 고아성은 가족의 ‘관심거리’다. “가족들은 저를 굉장히 불안하게 생각해요.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제가 가끔 어딘가 슝슝 여행을 갔다 오기도 하거든요. 그런 생각이 드는 절묘한 타이밍이 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혼자 여행 갔다 온 적도 있어요. ***로요. 하지만 (저쪽을 가리키며) 엄마가 알면 안 돼요. (웃음)” 그러니까 이 어른스러운 이팔청춘 소녀는 우리가 보는 영화 속 소녀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싶어하고 지금 뭔가 강제되는 것을 반대하고, 정해진 상투의 의식들을 싫어한다. 그게 지금 고아성이 보여주는 좋은 연기의 본능이 되는 것 같다. “연기가 좋은 건 거짓말이라서요. 왜 좋은지 알면 질릴 것 같아요. 가끔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대화할 때 학교, 나이, 친구 이런 거 묻잖아요. 재미없잖아요. 있는 상태로 이야기하는 거니까. 그럴 때 살짝 거짓말하고 싶어요. 나이 몇살이니 그러면, 서른여덟이오, 이렇게요. (웃음)” 당분간 이 소녀가 서른여덟이라고 자기 나이를 소개해도 우리는 놀라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과연, 이팔청춘의 생생함이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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