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뒷북스러운 얘기다 싶긴 하다만 그럼 좀 어때, 본 코너가 남보다 한 시간 빠른 뉴스도 아니거늘이라는 핑계로 뒷북 한번만 더 치고자 한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개봉되었어야 했다. <아버지의 깃발>과 함께 말이다. 아니다. 이건 이렇게 고쳐서 얘기하는 편이 맞겠다. <아버지의 깃발>은 <이오지마에서…>와 함께가 아니라면 개봉되지 않는 편이 나았다. 사실 필자는 <아버지의 깃발>을 보고 난 뒤, 막판에 제대로 끊지 못하고 나온 숙변자의 찝찝함을 떨쳐낼 수 없었더랬다. 그 정체 모를 찝찝함을 문장으로 바꾸면 ‘아냐, 분명 뭔가가 더 있을 텐데…’쯤이 될 텐데, 여기에서 말하는 ‘뭔가’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오지마에서…>였던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깃발>은 그 자체로도 훌륭무쌍한 영화다. 하나 따지고 보면 <아버지의 깃발>은 그 하나만으로는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얘기를 온전하게 담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왜냐. 전쟁은 그 승패와 관계없이, 그것에 관여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에 준하는 상처를 입히는 괴물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 미국 병사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전쟁만으로는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쪽인 일본군의 시각에 의해 채워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런 면에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는 각기 반대편에 서 있는 두 영화가 아니라, 두개의 거울에 비친 한 영화인 것이다.
하나 이런 얘기는 아무런 쓸데없는 공허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뭐 <이오지마에서…>가 개봉이나 됐어야 말이지. 필자가 워낙에 정보수집 이런 거 할 만큼 근면성실하지 못한지라 <이오지마에서…>가 국내 개봉되지 않은(또는 못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는 없으나, 추측건대 이런 두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비스무리한 두 영화를 한꺼번에 걸면 장사가 안 되니까’ 또는 ‘국민정서를 고려해서’. 만일 첫 번째 이유라면 필자는 이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우리 관객도 이제 그런 호사 정도는 누릴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영화 관객이 니들한테 벌게 해준 돈이 얼마인데 그 정도도 못해주는가 이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라면 앞에 적었던 이야기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이 두 영화(사실은 한 영화)는 이오지마 전투라는 전투가 아닌 전쟁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 위한 영화였고, 그러므로 이는 미군의 영화도 일본군의 영화도 아닌 것이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영시간을 줄이려고 수입업자 꼴리는 대로 필름을 잘라내는 일(<제5원소> 사건을 기억해보시라)이나, 각종 국가기관의 검열로 영화를 상영하지 못했던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잡스런 일들이 거의 사라진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만, 여전히 멀쩡한 영화를 은근히 반쪽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문제다. 특히나 클린트 대인의 영화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