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비밀보다 매서운 춘삼월 칼바람 속에서, <가면> 촬영현장
2007-03-21
글 : 김민경
사진 : 오계옥

슛 사인이 떨어지자 ‘턴테이블’이 서서히 돌아간다. ‘턴테이블’이란 일명 ‘시소’라 불리는 긴 널빤지가 고정된 원형 트랙의 촬영 장비다. 카메라와 피사체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화면에는 배경만 빙글빙글 도는 효과가 난다. 주위 360도가 모두 화면에 잡히는지라 스탭도 기자도 카메라 사정권 밖에 재간껏 숨어야 한다. 턴테이블 위에서 심각한 감정 연기를 하는 김강우의 발치엔 수명의 스탭들이 달라붙어 발소리를 죽이고 시소를 돌린다. 기습적인 함박눈이 펑펑 내린 3월7일 밤 분당, 즉석에서 신이 눈 오는 장면으로 수정됐지만 야속하게도 장비 세팅이 끝나자마자 눈은 그쳤다. 서울에서 급히 호출된 특수효과팀이 눈발을 뿌린 뒤에야 촬영이 속행됐다.

<가면>은 <리베라 메> <바람의 파이터> <홀리데이>의 양윤호 감독이 오랜만에 도전하는 스릴러다. 사생활이 문란한 젊은 스포츠 재벌이 잔인하게 살해된 현장에 강력반의 조경윤(김강우), 박은주(김민선) 형사가 투입된다. 조경윤은 오토바이를 즐기고 연애에도 성실한 강력반 기대주이고, 박은주는 분석력 뛰어난 프로파일러형의 우수한 형사다. 첨단 기술을 동원해 수사가 진행되지만 혐의자들은 용의선상을 잇따라 벗어나고, 사건이 점점 미궁으로 빠지면서 조 형사는 묻어뒀던 어두운 과거를 다시금 들춰보게 된다. “<리베라 메> 때는 스릴러를 잘 몰랐다”는 양윤호 감독은 이번에야말로 본격적인 스릴러를 선보일 각오라고. “공부를 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됐다. 평생 스릴러만 찍을 수 있을 만큼. (웃음) 장르의 공식이 극을 지배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 녹여넣을 수 있는 것 같다.” 이정섭 디알엠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가면>의 차별점은 반전 장치가 아니라 ‘진심이 있는 스릴러’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는 두대였는데, 이유가 따로 있다. “핸드크랭크카메라라고, 국내에선 처음 도입하는 것이다.” 모터가 초당 프레임 수를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일반 카메라와 달리 사람 손으로 크랭크를 돌리기 때문에 몽환적인 느낌의 독특한 효과가 가능하다는 제작진의 설명이다. 다루기가 쉽지 않은데다 모니터 화면으로는 정확한 프레임 속도와 노출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에 핸드크랭크카메라 촬영분에선 항상 일반 카메라를 함께 돌린다. “매우 감각적인 비주얼을 보게 될 것이다. 다른 영화 제작진들도 우리 결과물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촬영 때 감정이 북받쳐 올라 곤란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김민선은 촬영 기술 홍보에도 열심이다. 오늘 촬영분은 수사 중 혼란에 빠진 조경윤이 여자친구 차수진(이수경)이 운영하는 네일숍을 찾은 장면. 3월10일 모든 촬영을 마무리한 <가면>은 올 여름 관객에게 맨 얼굴을 공개할 예정이다.

백동현 촬영감독

“핸드크랭크카메라로 인물 심리를 만들어갈 거다”

“<각설탕> <조폭마누라3> <마파도>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등에서 작업했다. 촬영감독 일이 쉽지 않은 이유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품보다는 감독과의 호흡이 중요한데, 양윤호 감독님과는 그런 점에서 아주 잘 맞는 것 같다. 핸드크랭크카메라를 처음 말씀드렸을 때도, 사실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제안인데도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사실 핸드크랭크카메라를 생각한 지는 오래됐다. 내가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서. 원래는 누아르 장르를 할 때 시도하려고 마음에 담아둔 건데, <가면>의 시나리오를 보니 이 작품에 이 카메라가 잘 맞겠다 싶었다. 슬슬 다른 데서 이 카메라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하기에 얼른 먼저 선점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웃음) 핸드크랭크카메라는 장점이 많다. 인물 심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때 CG에 의존하지 않고 현장에서 카메라로 만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연기하는 배우만큼 촬영도 인물의 감정선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다중노출을 비롯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서 촬영감독으로서 아주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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