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스코프]
엄마는 마지막으로 한 게 언제야? <동거, 동락> 촬영현장
2007-04-03
글 : 장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트럭 짐칸에 올라탄 배우들을 목격하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 의외의 상황에 지나가는 차들도 슬금슬금 속도를 줄인다. 3월25일 경기도 포천의 어느 국도. 조윤희, 김동욱, 김청과 정승호가 트럭에 나란히 몸을 실은 채 담요 속으로 몸을 우겨넣었다. 싸늘한 바람에 구경꾼들도 절로 몸이 떨리는데 달리는 트럭 뒤의 배우들은 얼마나 추울까. 서서히 출발하는 트럭을 보고 있자니 멀어지는 그들이 반대편 차선을 달리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또 얼마나 민망할지 궁금해진다. 배우에게 이런 고난을 요구한 자라면 분명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일 터. 그러나 안일한 예상을 깨려는 듯 “한번 더 가죠”를 외치는 앳된 목소리가 들려온다. <동거, 동락>으로 처음 장편상업영화에 도전하는 25살 김태희 감독의 것이다.

“섹스없이 이뤄질 수 없는 게 가족인데 가족 내에선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다. 거짓말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섹스, 사랑, 가족간의 갈등 등 꺼내기 쉽지 않은 소재를 김태희 감독은 편하게 내뱉는다. <동거, 동락>은 그가 영상원 재학 중에 찍은 단편영화에서 출발한 작품. “딸이 혼자된 엄마에게 딜도를 선물한다는 컨셉”에 실패한 사랑에서 자라난 상처와 미련, 요즘 세대의 솔직한 성담론 등을 덧붙인 이 영화는 쇼박스에서 주최한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감독의 꿈’ 공모전에 당선됐다. “장편상업영화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촬영에 임하진 않는다. 그저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노출 수위가 만만치 않은 새파란 신인감독의 영화에 누군들 쉽게 출연을 약속했을까. 자유로운 사고방식의 미대생 유진 역을 맡은 조윤희 역시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털어놨지만 김태희 감독의 열정은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을 만큼 진득했다. 설득에 설득을 거듭한 끝에 아직 때묻지 않은 면이 남아 있는 유진의 엄마 정임, 유진의 학교 동기이자 남자친구인 병석, 병석의 아버지지만 정임의 첫사랑이기도 한 승록 역을 위해 김청, 김동욱, 정승호가 모여들었다. <동거, 동락>은 4월3일 촬영을 마무리할 예정. 네 배우의 기묘한 조합은 2월 중순 극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간을 통해 캐릭터의 겹을 만든다

안성현 미술감독

“굉장히 다른 캐릭터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보여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예산이 적으니 소품을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한층 적극적인 방법이 흥미로울 것 같았다. 그래서 각 캐릭터들의 특성을 그들이 머무는 공간에 드러내는 방식을 고심했다. 예컨대 유진과 정임이 함께 사는 집은 모녀의 공간으로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다. 아버지가 없는 부재의 공간이다. 그런 느낌은 특히 채워지거나 덜 채워진 모양새로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정임의 방은 휑하게, 유진과 병석의 방은 꽉 차게 만든 건 그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유진은 시나리오상 작업 공간과 결과물이 자주 드러나는 인물이라 작가들을 섭외해 드로잉부터 작품까지 신경을 많이 썼다. 정통 구상을 하는 유진에 비해 병석은 트렌드의 변화에 민감한 인물이다. 자신이 사는 옥탑방 벽면에 벽화를 그려넣기도 하는 등 그래피티를 비롯한 다양한 작업에 관심을 쏟는다. 처음에는 모호한 면이 많은 캐릭터였지만 이런 설정을 통해 캐릭터를 조금 더 입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었다. 한때 ‘가슴시각개발연구회’라는 디자인회사에 입사해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복수는 나의 것> <양아치어조> <서울공략> 등의 미술 작업에 참여했다. 영화가 힘들어 뛰쳐나왔지만 결국은 그 즐거움이 가장 크고 만족스러운 영화 일로 돌아오게 되더라. (웃음) 현재는 영화는 물론 무대, 인형극, 뮤직비디오 등의 미술을 담당하는 회사인 ‘즐거운 크리에이티브 그룹’을 만들어 활동 중이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