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중 감독은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주위 지인들이 반 농담처럼 ‘인터내셔널 감독’이라고 부르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베이징영화학교에서 공부한 뒤 한국에서 연출부를 잠시 거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다. 그의 영화 <허스>는 미국의 세 도시에서 살아가는 같은 이름의 세 여자에 관한 에피소드 형식의 여행기인데, 이국에서 한국인으로 혹은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그들 마음의 여정을 섬세하게 묘사해낸다.
-중국과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했다.
=베이징영화학교를 다닐 때 지아 장커와는 친구였고, 왕 샤오 슈아이는 약간 선배였다. 6세대 젊은 감독들에 대한 다큐도 만들었다. 5세대 초기 영화를 좋아해서 중국에 가게 됐지만 사실 그 때도 미국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돌아와 한국에서 잠깐 박철수 감독의 연출부를 하고 나서 98년 즈음 미국에 갔다. 가서 얼마간은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영화를 못했다. 그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이 지금 영화에 많이 반영됐다.
-<허스>의 구상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이 영화는 이미지에서 시작됐다. 가령 처음 도착한 L.A에서 강렬하게 나를 끈 것은 팜트리다. 나도 처음에는 열매가 열리는 야자수인줄 알았다. 캘리포니아 드림을 담은 포스터를 보면 그런 그림 있지 않나. 그런데 팜트리는 열매가 없고 고독하고 꿋꿋한 이미지가 있더라. 그게 화려한 도시에서 고통 받는 마이너리티들의 현실적 메타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혹은 L.A는 과잉노출의 도시처럼 느껴져 실제로 영화도 그렇게 찍었다. 그리고 아까 말한 아르바이트가 투어 관광 가이드였다. 중국말과 한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을 구하길래 갔더니 중국인 도박 전문 관광가이드였다(웃음). 자연스럽게 라스베가스라는 도시 이미지도 알게 된 거다. 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도박에 빠진 가난한 마이너리티일 뿐이었다. 그 대조를 생각하면서 라스베가스의 이미지는 ‘컨트라스트’라는 개념으로 가자고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이건 일종의 로드무비가 된 거다. 과연 이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까 생각했고, 알래스카를 떠올렸다. 그래서 일부러 가서 보았고 그곳으로 결정했다. 이 이미지들, 세상의 여정을 보여줄 수 있는 화자로서 여자 주인공들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을 한 사람의 일대기처럼 따라가지만 각기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처럼 만들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그런 군상들이라는 의미에서.
-에피소드 구성이다.
=에피소드로 되어 있으니 무엇보다 배우들이 조급해했다. 자기들로서는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들었겠지. 그래서 항상 이 영화는 한 에피소드가 다음 에피소드와 이어지면서 그리고 영화전체를 놓고 봐야 이해되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삶의 고단함이 연속된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지 스토리텔링에 매달리는 영화가 아니라고. 그 대신 분위기는 가볍고 동화적으로 혹은 우화적으로 간다고 했다. 사실 이 번 상영 버전은 완성본이 아니다. 완성본에는 각 에피소드를 연결해주는 매우 중요한 꿈 시퀀스가 있다.
-영화제에서 관객들에게 들은 품평 중 인상적인 것은?
=나름대로 여러 메타포들을 많이 교차시켜 심어 놓았는데 관객들이 생각했던 대로 그것들을 가져가더라.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영화의 균형'이 맞춰진 것 같아 좋았다. 한편, 이 영화를 여인 참혹사로 보지 않을까 내심 우려도 했는데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관객 평론가와 인터뷰를 했는데, 네 명중 셋이 여성이었다. 그런데 그 분들 모두 좋아하더라. 우울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동화적이고 또 예뻐 보인다고.
-차기작은?
=<허스>보다 먼저 시작했던 작품이 하나 있다. 시나리오도 나와 있다. 한국과 미국 공동제작으로 준비 중이다. 지금은 구체적으로 밝힐 상황이 아니지만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이게 된 L.A 한인 자녀 셋의 이야기다. L.A 버전의 <축제> 혹은 <학생부군신위>라고 할 수 있을거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 또는 아시아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할 생각인가?
=내가 남들보다 더 잘 알고 잘 할 수 있는 게 그거다 보니 당분간은 그 부분들이 반영되지 않을는지. 내가 생각하는 아시아적인 것을 미국에서 한 번 펼쳐 보이고 싶은 나만의 비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