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이외의 모든 물건에 책임을 가져야 한다.” 전주국제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 초청된 일본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이소미 도시히로 감독이 말하는 미술감독의 의무이다. 이소미 감독은 이시이 소고 감독의 영화를 시작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 라이프>, <아무도 모른다>, <하나>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 등의 작품에서 세밀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공간을 만들어왔다.
그의 이력은 '변칙'적이다. 회사원, 잡지사를 거쳐 신문 기자를 하던 중 이시이 소고 감독을 만나게 되어 우연히 영화 미술을 시작했다. 정석대로 미술감독이 되지 않아, 아웃사이더였다는 그는 자신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 속 세계를 만들어 왔다. 일본 동북지방 남자의 방을 만들어야 했을 때, 트럭을 가지고 동북지방에서 온 친구의 집으로 찾아가 방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세트장으로 가져가 영화 속 방을 만들었다. 이런 방식은 선배들로부터 규칙위반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하지만 그는 미술 감독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미술을 전공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의 기질이 있고 성향이 있다. 그것을 잘 파악해 필요한 곳에 잘 배치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도쿄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기도 한 이소미 감독은 그의 학생들과 미술 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영화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만드는 것이라고. “영화‘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로케이션 촬영을 할 때, 그 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일상을 해치면서까지 촬영을 강행하는 것이 바로 영화‘님’이 되는 순간이라며 이는 영화의 존재가치를 위배하는 행위라고 봤다. “물론 우리는 밤새 일하며 영화를 만들지만, 영화와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을 큰 틀로 봤을 때, 영화는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다. 착각해서는 안 된다.”